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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길 15, 세월아 네월아 산티아고길 15.

- 로그로뇨의 여유

by 지구 소풍 이정희
로그료노 대성당 미사

♧ 쉬면 보이고 즐길 수 있는 것들


첫째, 대성당 미사 참석


산티아고 순례길 나선 후 처음으로 로그로뇨 대성당 일요일 저녁 미사에 참석했다.

스페인은 가는 곳마다 성당이 중심이다. 천주교 신자가 아니지만 성당에 들어가 순례길이 안전하기를 기도했다.


오늘 함께 걷던 한국인들 중 신자들이 많았다. 유서 깊은 로그로뇨 성당 미사 참석은 큰 추억이 될 거라며 권유하여 마음이 많이 끌렸다.


수십 년 전 성탄 미사에 처음 참석해 본 이후 미사 참여는 처음이었다. 성당에 순례자들과 노인들로 가득했다. 간절하게 기도하는 모습들을 눈앞에서 보며 신앙의 힘을 다시 한번 생각했다.

로그로뇨 대성당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

둘째, 시내의 밤 풍경


밤 9시 대성당 주변 광장에는 쌀쌀한 날씨에도 사람들이 가득하다. 팜플로니아에서는 사람들이 맥주 마시는 모습을 많이 보았는데 스페인 최고 와인 생산지인 로그로뇨의 사람들은 와인을 마시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길거리에 카페와 바, 다음으로 많이 보이는 것이 아이스크림 가게이다.

생과일 아이스크림 두 컵이 3유로인데 정말 향긋하고 맛있다. 서울의 유명 아이스크림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 나라는 뭐든 싸고 참 맛있다.


'맥주, 와인, 빵, 식사, 과일, 아이스크림까지---'

깔끔한 숙소

섯째, 느린 아침


연박의 기쁨 중 가장 좋은 것은 쾌적한 숙소의 개인 침실이다. 이곳에서는 알베르게의 다인실 부직포 침대 덮개가 아닌 개인실에 침낭대신 하얀 면 침대를 사용한다.

'살에 닿는 살짝 빳빳한 침대 이불의 느낌이란!'


새벽 5시, 일찍 길 떠나는 순례자들의 움직임 소리에 깨지 않아도 된다. 오늘 아침은 8시까지 방해받지 않고 잠을 자서 정말 즐거웠다. 이런 즐거움이 행복이다.


보통 8 시인 체크아웃 시간에 신경 쓰지 않고 9시에 어제 까르푸에서 사 온 피자와 샐러드, 과일로 여유 있게 조식과 커피를 먹을 수 있다. 쉬는 날 같아 좋았다.


그래, 이제 인생 후반전

뭐든 천천히 열심히 하고

쉬어가며 꾸준히 하자!'

쇼핑의 즐거움

넷째, 쇼핑의 즐거움


스페인의 가게들은 보통 오전 10시나 되어 문을 연다. 1시 점심 식사를 위해 문을 닫은 후 4시가 되면 다시 문을 연다.

그리고 저녁 7시가 되어야 거리는 사람들로 활발하다.

깨끗하고 넓어서 걷기 좋은 시내를 산책하며 쇼핑을 했다.


'순례길에 시내 쇼핑이라니?'


모두들 배낭 무게를 줄이라고 하여 긴팔과 짧은 팔 얇은 옷만 가져왔다.

그런데 이곳은 작년과 달리 아침저녁 기온은 13도에 바람이 많이 불어 춥고, 낮에는 20도로 햇살이 뜨겁다.


기온 차이가 심하여 사계절 옷을 모두 입고 벗었다 입었다를 반복해야 한다.

민소매 입은 사람부터 패딩과 코트를 입은 사람까지 다양하다.

새로 산 원피스를 입고 노그료뇨 상징깃발 앞에서

오래되어 막 입고 버리려던 고어텍스 잠바는 입기가 민망할 정도가 되었다. 편하려고 가져간 원피스는 소용이 없는 물건이 되었다.


두툼한 빨간 잠바가 60유로, 쓰임새가 많은 호피 무늬 원피스가 22유로이다. 몇 번을 입어보아도 아주 잘 산 것 같다.

내일부터 환하게 바뀔 나의 산티아고 사진을 생각하니 미소가 지어진다. 당장 한국에서 가져온 옷을 버렸다.


'아, 여기는 옷도, 신발도 싸고 좋다'


햇살이 가득한 중심가 거리 카페에서 갓 구운 크루아상과 치즈케이크, 커피를 점심식사로 맛있게 먹었다. 6유로의 행복이다.

우아한 노인들이 많은 거리 카페

카페 가득 모임을 하는 스페인 노인들의 모습이 여유롭고 아름답다. 모두 70~80대이지만 고운 모습에 건강하다.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는 없지만 목소리가 작고 대화가 길고 표정이 진지하다. 서로 웃으며 번갈아 말하며 모두 공감하는 표정이 밝고 우아하다.


'나도 저렇게 고운 노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섯째, 싸고 좋은 물건


1구간 페레네 산맥을 넘는 날 엄청 비가 와서 옷과 신발 홀딱 젖었다. 도착지인 론세스바에스 알베르게에서 신발 깔창을 빼서 말렸는데 개(새끼)가 한쪽을 물고 갔다. 그래서 헤르다인까지 샌들을 신고 걸어야 했다.

낡아 가는 트레킹 신발

그래도 얇은 여분 깔창이 있어 다행이었지만 많이 걷다 보니 발바닥이 아팠다.


다행히 팜플로니아의 스포츠용품 매장 데카트론에서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두꺼운 깔창을 7유로에 살 수 있었다.

한국에서 신고 간 것보다 편한데 벌써 발바닥 앞쪽이 많이 눌려 있다. 매일 많이 걸으니까 깔창도 무척 힘든가 보다.

매장에 판매 중인 가죽 트레킹 신발이 종이처럼 가볍고 발이 편하다. 가격도 70~100유로를 넘지 않아 정말 사고 싶었지만 미루었다.


800km의 순례길을

모두 걷고 나면

8년 된 낡은 신발과 옷들을 모두 버리고

수고한 나를 위해

스페인의 품질 좋고 싼 물건들을

살 것이다.


※ 우리나라 물건이 품질이 좋다고 믿었는데, 이번에 싸고 좋은 스페인 물건에 흔들리고 있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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