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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길 14, 세월아 네월아 산티아고길 14.

산솔에서 노그로뇨까지(21km)

by 지구 소풍 이정희
산솔의 일출

스페인 새벽 5시, 닭의 울음소리와 성당의 종소리는 어둠을 깨우고 순례자들을 분주하게 한다.


7시가 넘어도 해가 없어 하루가 시작되지 않은 듯한 고요한 길거리에는 순례꾼 행렬이 줄을 잇는다. 세상은 쌀쌀한데 발바닥은 후끈거리며, 길을 여는 고통이 시작된다.

토레스 델 리오

세계에서 온 사람들의 몸에 밴 긍정의 말과 행동에 고개를 위아래로, 옆으로 흔들곤 한다. 더 낮아지고 더 무거워지고 생각이 많아진다.


나도?'

'나는?'


붉은 해를 머리에 이고 구불구불 산길과 들판, 큰 도로를 걸었다.

산등성이마다 돌집들이 모여있는 작은 마을 "토레스 델 리오"를 통과한다.

태극기가 들썩들썩한 알베르게와 바를 돌아서면 침묵하는 공동묘지가 기다린다. 순례꾼들의 바램이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가 보인다. 한국인들의 적극성이 드러난 낙서와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하여튼 유별나다!'


큰 도로 곁으로 한참을 걸으니 작고 예쁜 마을 비아나에 도착했다. 이곳도 언덕이 많아 힘이 들고 지친다.

비아나의 축제

순례자를 환영하듯 음악소리가 들려 뛰어가보았더니 축제가 열리고 있다.

마을 사람들도, 지친 순례자들도 함께 어깨를 들썩이며 행진을 했다.

길을 걸으며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모르던 사람들과 반갑게 미소를 나누며 말을 한다.


"부엔 카미노",

"올라",

" Are you ok?"


보고 따라 하며 배우고 달라지며 사랑을 주고받게 된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제 나도 먼저 인사를 하고 작은 도움이라도 주려고 늘 준비하고 있다.

오늘 만난 길천구들

오늘은 혼자 날렵하게 걷는 나이 많은 여성과 미국 단체 여성들을 만났는데 인상적이다.

하얀 머리에 평범한 얼굴이지만 눈빛이 반짝이며 진중하다. 젊어 미국으로 건너가 살았다는 72세 교포 여인이다.

함께 걸으며 이야기하는데 생각의 그릇과 세련된 말솜씨가 어찌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함께 걷던 한국의 20~60대 여인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


"나도 저 언니처럼 72세에,

이 힘든 산티아고 순례길을,

저렇게 무거운 가방을 메고,

스틱도 없이,

저리 가볍게 오래 걸을 수 있을까?"

멋진 언니들

"아이코, 저 미국인 단체 할머니들은 60이 넘어도 반바지에 배낭 메고 1년에 한 번씩 이 길을 완주하고 있어!"


"네? 우리는 배낭 안 매고 걸어도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몸관리를 하는 거지?"


우리는 몸관리를 약과 미용으로 하지만 저들은 체력관리와 도전으로 하는 것 같다.


오늘은 6시간 내내 걸으며 한국 사람들과 여러 가지 이야기했다.


"살아온 시간과 살아갈 모습들---'


뜨거운 태양과 세찬 바람에, 힘들고 지쳐도 어느 사이 로그로뇨를 내려다볼 수 있는 포도밭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포도도 지처보였다.

환영해주는 이정표

역사의 도시 로그로뇨!


즐거운 연박의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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