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미스타에서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18.7km)
처음으로 경험해 보는 프로미스타 공립 알베르게의 하루는 일찍 시작한다.
새벽 5시부터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7시면 청소가 시작된다. 덕분에 오늘도 아침 해 뜨는 것을 볼 수 있어 행복했다.
어제는 950m 산 위에서, 오늘은 드넓은 평원에서 일출을 맞으니 어제와 아주 다른 모습이다.
'사람처럼 참 다양하다.'
프로미스타에서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 가는 길은 대평원을 가로지르는 큰 도로를 따라 걷는 18km 정도의 아주 짧은 길이다.
길가의 집들도 우리나라 시골 마을을 지나는 것처럼 흙담에 기와지붕, 소나무 숲도 보인다.
포블라시온 데 캄포스에서 두 가지 길로 나뉜다. 왼쪽은 대평원을 지나는 길이고 오른쪽은 조금 우회하여 나무가 심어진 길로 가는 길이다.
잠시나마 지루한 길을 피하려고 우회하는 길을 선택했다. 뒤이어 오는 많은 순례자들이 멈추어 고민하더니 표지가 크게 되어 있어 많이 선택한 사람들 길인 왼쪽으로 갔다.
내가 걸은 길은 휘어지는 길이라 별로 선택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나무 그늘에 한적하여 좋은 선택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이 정답이라고 따르는 사람과 자신의 선택을 걷는 사람 중 나는 후자에 속하는 편이다.
오십 오 세가 되기 전에는
'다른 사람들처럼, 다른 사람들보다 더---'
하는 생각으로 살았던 것 같다. 그러다 생각이 바뀌니 생활이 바뀌고 삶이 바뀌었다.
'이제 이런 삶이 참 좋다!'
지루하고 햇빛을 피하기 어려운 길이지만 갈림길이 없이 길게 뻗어있는 길이어서 지나가는 순례자들을 관찰하며 여러 생각을 하였다.
햇볕을 챙이 넓은 모자로 가리고, 선글라스를 쓰고, 얼굴 가리개로 가려도 어느 사이 얼굴이 뻘게지고 손이 까맣다.
하지만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햇볕에 그을리는 것이 당연한 듯 기쁜 마음으로 피곤함도 잊어버리고 즐거워한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들이다. 참 부럽다!
순례자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재미있는 야외 바를 발견했다.
모두들 소풍 온 듯 웃옷을 벗고 와인을 마시며 일광욕을 하고, 탁구게임을 하고, 만들기 체험을 하며 쉼을 즐기고 있었다.
몸이 힘들 텐데 정말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사람들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색다른 것들을 많이 보고 생각이 바뀌어 간다.
매일이 고생길이 아니라
나날이 새로운 길이 좋아진다.
조그만 언덕을 몇 번 오르니 중세 모습의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가 보이는 내리막길이다
드넓은 하늘과 대평원은 맞닿아 평화롭고 여유롭다. 어제와 또 다른 여린 옥빛 하늘에 무심한 구름은 사람의 마음을 넓게 한다.
대평원을 걷고 있는 것이
평화이고
내 인생의 선물이다.
다른 날보다 거리도 짧고(18km), 평원 길을 걸어 오늘의 숙소인 '알베르게 에스피투 산토'에 5시간 걸려 12시 반에 도착했다.
왓츠앱으로 예약하였는데 알고 보니 산타마리아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다.
수도원 건물과 붙어 있는 알베르게는 순례길 시작한 후 시설이 제일 깨끗하고 싱글 침대인데 10유로 밖에 되지 않았다.
어제 잔 시설이 좋지 않은 공립 알베르게 14유로 보다 훨씬 싸다.
수녀님이 직접 접수를 하시며 예쁜 기도 목걸이를 걸어주시며 여러 가지 설명을 해주신다.
"이곳은 순례자를 위한 좋은 시설이니 편히 쉬고 순례길을 마치기 바라. 그리고 6시에 15분 동안 기도모임이 있어요. 한국 사람 좋아요. 감사합니다."
자부심과 친절함이 몸에 배어 있는 노수녀님이시다.
입구 대문에 멋진 순례자 그림이 있어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사무실에서 뛰어나와 그림 설명을 재미있게 하시며 여러 가지 자세를 가르쳐 주며 사진을 찍어 주신다.
주방시설도 훌륭하여 마트에서 장을 보아 음식을 하는데 냄새가 좋다며 손을 흔드신다.
모두들 외출하고 혼자 방에서 블로그 글을 쓰고 있으니 두 번이나 오셔서 관심을 보이신다.
"왜 혼자 있니?"
"괜찮니?"
"도움이 필요하니?"
5시 50분 음악이 울리고 6시에 기도실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수녀님과 6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수녀원의 봉사에 기도에 참석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다.
수녀님은 한국 사람이 와서 참 좋다고 환영하시며 한글로 된 주보를 주셨다. 일일이 나라를 물으시며 기도를 해주신다.
"이탈리아, 브라질, 프랑스, 알바니아, 아르헨티나, 한국 2명'(한국 사람 20명 넘음)
산티아고 순례길 오면서 보았던 벽화들에 대해 그림을 보여주시며 열정적으로 설명해 주셨다.
지난번 비 오는 날 감동을 주었던 시골 작은 성당 수녀님에 대해서도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수녀님은 밤 9시 40분 내일 산티아고 순례길을 위해 잘 자라며 방마다 다니며 인사를 했다.
우리 아이들에게 했던 것처럼. 수학여행에서 아이들에게 했던 것처럼.
'엄마 같은 마음으로'
지금까지 보았던 규모가 크고 역사적이고 화려했던 성당들보다 오늘 알베르게 봉사로, 친절함과 자부심으로, 열정적인 기도모임으로 또 한 번 종교에 감동을 받는다.
산티아고 길이
☆제가 지금 트레킹 중(25.1.7~2.7)인 뉴질랜드 밀포드 사운드 지역은 인터넷이 되지않아 매주 일요일 올리던 블로그와 브런치글을 못올리고 쉬고 있어요.
매일 열심히 손글씨는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