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길 29, 세월아 네월아 산티아고 순례길 29.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에서 테라디오스 데 로스 템플라리오스까지(26.4k

by 지구 소풍 이정희
20240930%EF%BC%BF074405.jpg?type=w773 수도원 알베르게 새벽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Carrión de los Condes)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는 도시로, '산티아고 순례의 심장'이라고 불린다. 자상한 수녀님의 밤 인사에 이어 아침 7시 자원봉사 할머님의 아침 청소로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의 1박 2일은 끝이 난다.

열린 마음으로 대해주는 수녀님과 봉사자 노인들에게 마음이 열리며 밝아진다. 잊고 있는 겸손함이 생각나고 노화에 대한 두려움이 옅어지며 또 다른 희망이 보인다.

image113038695069052785520240930%E7%AB%8A%EF%BF%BD080424.jpg?type=w773
20240930%EF%BC%BF080217.jpg?type=w773
산 소일로 왕립 수도원(지금은 고급 호텔)

이 도시도 넉넉하게, 아니 귀하고 아름답게 순례자들을 배웅했다. 이 도시에 도착하기까지 단조롭고 햇볕을 가릴만한 가로수 한그루 없어 지쳤던 순례자들에게 왜 이 길을 걸어야 하는지 이유를 선물한다.

유서 깊은 문화유산을 소중하게 지켜내는 사람들로 이 멋진 도시를 거쳐가는 순례자들에게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을 준다.


20240930%EF%BC%BF081030.jpg?type=w773
20240930%EF%BC%BF081506.jpg?type=w773



며칠 내내 대평원을 걸어도 매일이 다르다. 어제는 사막 같은 평원이고 오늘은 큰길 나란히 자동차와 밀밭과 가끔 그늘이 있는 여유 있는 길이다.


20240930%EF%BC%BF105638.jpg?type=w773
20240930%EF%BC%BF103440.jpg?type=w773
78세 미국 할머니 순례자

멕시코에서 온 부부와 자주 만난다. 나는 멕시코와 쿠바 여행을 한 적이 있고 멋진 칸쿤 해변과 테오테우칸 유적 이야기를 짧게 했다.


내가 말하는 것보다 그들은 한국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 배낭에 멕시코 국기를 가리키며 너는 왜 너의 나라 국기가 없느냐고 말한다. 굳이 할 말이 없었다.

1727714518685.jpg?type=w773 68세의 뉴질랜드 여인

뒤에서 보니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 부지런히 걷기에 빨리 걸어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뉴질랜드에서 혼자 왔고 68세인데 두 번째 산티아고 순례길에 왔다고 했다. 나는 25년 1월 17일부터 4박 5일 뉴질랜드 밀포드 트레킹을 예약했고 보름 정도 남북섬을 렌터카로 여행하고 호주에서 보름 있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나의 나이를 물어보며 며칠 전부터 나를 보았다며 62세에 에너지가 굉장하다며 칭찬을 한다.

그리고 4박 5일 밀포트 트레킹은 예약하기 힘들어 자기도 아직 못했다며 굉장하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린다.

1727714428419%EF%BC%8D8.jpg?type=w773 자갈길 위의 자갈 산티아고길 표시

며칠째 지루한 메세타 지역을 걷다 보니 사람이 다르게 보이고 같은 듯 다른 것들이 많이 보인다. 공장 제품이 아니면 세상에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살아있는 생명과 변화무쌍한 자연이 가치 있고 위대한 것이다.


1727714378496%EF%BC%8D0.jpg?type=w773 오아시스 같은 푸드 트럭(빨간 잠바 나)

이제 3~4시간을 걸어도 마을이 없는 대평원에 익숙하다. 운이 좋아 작은 마을이나 푸드트럭을 만나면 오아시스를 만난 듯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지 모른다.

1727714484816%EF%BC%8D8.jpg?type=w773 미국 베짱이와 한국 개미

12시가 넘어 햇볕이 가득한 오르막을 걷는 것은 힘든 일이다. 나무그늘 밑에 쉬고 있는 미국 젊은이를 만났다.

자전거를 누워 놓고 작은 기타를 치고 있었다. 어찌나 여유 있고 즐거워 보이는지 함께 어울리자고 했다.

미국 젊은 베짱이는 기타 치며 노래하고 한국 62세 개미는 춤을 추었다. 41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한 개미는 산티아고 순례길 대평원에서 미국 젊은 베짱이 덕분에 오늘 27km 걷느라고 피곤한 마음이 확 달아났다.

젊은이에게 사과를 주었더니 너무나 고마워한다. 베짱이가 준 즐거움과 교훈에 대한 개미의 보답이다.

20240930%EF%BC%BF134838.jpg?type=w773 레디고스 알베르게

어디선가 들은 우화 '개미와 베짱이' 한국, 일본, 프랑스, 미국 버전이 생각났다.

우리나라는 베짱이는 추운 겨울 먹을 것이 없어 개미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일하지 않고 놀기만 하여 비웃음과 배고픔에 죽었다는 이야기이다.


일본은 측은하게 생각한 개미가 베짱이에게 먹을거리를 나누어 주어 개미의 나눔 정신과 베짱이의 노동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이야기이다.


프랑스는 힘들게 일하는 개미를 위해 베짱이가 노래를 불러주어 생산성을 높여 개미에게 적당한 식량을 배분해 주었다는 이야기이다.


미국에서는 개미와 베짱이가 동반자 입장이 되어 서로를 인정하며 소질을 계발하여 각자 열심히 사는 것이 서로에게 유익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어릴 때 배운 대로 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세상이 변하는 줄 모르고 우둔하게.

작은 우화의 여러 버전에서 삶의 다양성을 알게 된다.


급격히 변하는 세상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것들에 관심을 갖고 노력해야 함께 어울릴 수 있다. 그래서 주어진 시간을 의미 있고 즐겁게 지내려고 한다.


하고 싶은 것은


개미처럼 열심히,


좋아하는 것은


베짱이처럼 즐겁게


아침 7시 반에 출발하여 12세기에 설립된 템플 기사단의 영지였던 테라디요스 데 로스 템플라리오스에 2시 반에 도착했다.

20240930%EF%BC%BF201240.jpg?type=w773
20240930%EF%BC%BF202319.jpg?type=w773


현재 마을에는 로봇 모양의 현대식 기사 동상이 있는데 밤에는 조명이 반짝거려서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마을의 이름에 끌린 많은 순례자들이 일부러 마을을 찾아 묵기도 한다고 한다. 나 같은 거북이는 앞선 마을 레디고스 숙소가 만실이라 오늘 무리하여 27km나 걸어 이곳에 머물렀다.


세월아 네월아


산티아고 순례길


777km에서 386km 걸어서


이제 391km 남았다!

Screenshot%EF%BC%BF20240930%EF%BC%BF221937.jpg?type=w773







저작자 명시 필수 영리적 사용 불가 내용 변경 불가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가을길 28, 세월아 네월아 산티아고 순례길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