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디오스데로스템플라리오스에서 페르시아노델레알카미노까지(23.2km)
아침 해를 등지고 하루를 시작한다. 평원의 하늘이 너무나 곱고 시시각각 변하여 자꾸 뒤를 보게 된다.
지난 시간들, 사람들도 그렇다.
첫 번째 마을인 모레티 노스는 상당수의 건물들이 헐거나 무너진 것을 보게 된다. 우리나라 비어 가는 시골마을처럼 휑하지만 피폐하지 않고 나름 운치가 있다.
대부분의 건물들은 진흙과 짚을 섞어서 만든 소박한 벽돌로 만들어져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처럼 변한다.
'어제는 덥고 지루한 평원길, 오늘은 지금 내가 가고 있는 노년의 길'
900년이나 된 이러한 건축은 스페인에서 발달한 이슬람풍의 그리스도교 건축양식이라고 한다.
멀리서 우리나라 고분처럼 생긴 토분이 보여 설명을 보았더니 토굴 형태의 와인 저장고였다. 계단 10개를 올랐는데 끝도 없이 넓은 빈 말밭과 옥수수밭이다.
'역시 스페인은 넓다!'
그 옆에 멋진 와인 레스토랑도 분위기가 좋아 보이지만 아침 9시도 안 되어 문을 닫아 아쉬웠다.
어제 알베르게에서 함께 빨래하고 저녁식사를 했던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브라질에서 온 사업가는 키도 크고 미남인데 한국 사람들과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어제도 알베르게에서 한국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구석 의자에 앉아 블로그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큰소리로 말했다.
"너는 한국인인데 왜 구석에서 핸드폰만 하고 있니?"
"핸드폰으로 글을 쓰고 있요"
"직업이 뭐니?"
"나는 한국에서 41년 교사를 하다 지난달 말 은퇴하였고 몇 년째 매일 블로그에 글을 쓰고 브런치에 연재하고 있어"
얼른 번역기 앱의 도움을 받아 천천히 영어로 말했더니 모두들 일어나서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수고했어요. 대단해요!"
그는 교육이 제일 중요하고 교사가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올리며 윙크를 했다.
오늘 첫째 마을을 지나 모퉁이에서 다시 브라질 남자를 만났다. 나를 보자마자
"코리아 티처, 작가!"
반갑게 인사하더니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한다. 자기는 65세이고 사업차 한국과 일본에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함께 있던 78세 미국인 피터도
"한국에서 온 교사, 다리에 모터가 달린 사람"
으로 기억하며 악수를 청했다.
몇 시간을 걸어 두 번째 마을인 사하군에 도착했다. 제법 도시 같은 마을이다. 약국과 발마사지 간판이 참 반갑다.
작은 마을을 멋지게 장식하는 순례자 환영 벽화가 참 따뜻하다. 성당처럼 멋진 건물에 주민들의 문화시설과 공립 알베르게가 있었다.
한 번쯤 머물고 싶은 격조 있는 건물을 호텔이나 관공서가 아닌 공공에게 개방한다니 주민들의 높은 수준이 부러웠다. 마을사람들이 순례자들을 향해 인사를 하고 손을 흔든다
'사하군은 아득하고 멋진 곳이랍니다!'
캐나다 교포 아저씨들과 며칠째 만나게 되어 이야기를 하며 걷고 있다.
한국을 떠난 이유가 아이들 교육 때문이고,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보니 잘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교육이 기본인데 한국은 가정교육부터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교사들 걱정을 많이 한다. 갑자기 멀어졌던 학교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한국의 교육은 문제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드디어 아침 7시 반부터 23.4km를 걸어 2시에 Bercianos del Real Camino 입구에 있는 Alberge LA Pera에 도착했다.
체육관처럼 규모가 크고 꽃밭이 아름다운 리조트 같은 곳이다. 일찍 온 사람들은 풀밭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모두 5인실 싱글 침대에 전용 욕실이 있는데 1인당 14유로이다. 이 알베르게의 절반이 한국 사람들이다. 젊은이들 절반과 갓 은퇴한 중년들이다.
어제 보았던 사람들을 거의 오늘 알베르게에서 다시 만났다. 모두들 걸음걸이가 비슷한가 보다.
'한국, 프랑스, 브라질, 미국, 우크라이나, 캐나다, 대만, 독일---'
명배우 김혜자 님의 오로라 광고 멘트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