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길 27, 세월아 네월아 산티아고 순례길 27.

카스트로 헤리스에서 프로미스타까지(25.2km)

by 지구 소풍 이정희
어둠 속 순례길 출발

어두운 아침 7시에 알베르게 오리온을 나섰다. 스페인은 요즘 아침 8시에 해가 뜬다.

다음 숙소를 미리 예약하지 못해 프로미스타에 있는 공립 알베르게에서 자야 한다.

오후 2시 전에 도착해야 해서 오늘은 하루 내 서둘러 걸어야 한다.

별들과 초승달

카스트로 헤리스 기온은 아침 영상 6도, 낮에는 영상 18도 맑음, 어제보다 추운 날씨이다.


오랜만에 검은 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들과 초승달을 보았다. 생각해 보니 지난 1월 요르단 와디럼 사막에서 밤새 쏟아질 듯한 별들을 보고 처음이다.

어둠 속의 성당

서울에서 새벽 5시면 일어났는데 별도 안 보고 그 시간에 무얼 했을까?

새벽 줌 글쓰기 모임하고 주말에는 뒷산 걷기를 했었다.


'내가 별을 안 본 것일까?'


'서울 하늘에는

저런 별들이 없는 것일까?'


'아니, 별은 많은데 내가 보지 않았던 거야!'


새벽 순례길 안내 화살표 조명

소설 <순례자>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이 멋스러운 마을에서 머물며 글을 썼다고 한다.


어제 오후 마을 산책을 하며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곳의 시원한 풍광이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중심이 되는 평사리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박경리 선생님의


'늙어서 참 좋다'


는 말이 갑자기 생각난다.


'나도 그렇다'


작은 마을을 벗어나 순례길을 계속하려면 대관령 같은 굽이 길을 오른다.

해발 940m 모스테라레스 언덕 정상은 나무가 거의 없는 메세타 지역이다.


어느 사이 카스트로 해리스 작은 언덕 마을에 별들은 사라지고 어둠을 가르는 해가 솟을 준비를 하고 있다.


시시각각 구름과 해의 색깔과 모양이 달라진다.

너무 아름다워서, 더 보기 위해 고갯길을 오르며 뒤를 돌아보다 아예 거꾸로 걸었다.


아침 햇살을 받으니 기운이 나며 이곳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밤새 긴 어둠을 지키던 별이 사라지고 하루의 시작인 해가 뜨는 것은 금방이다. 지나 보니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좋은 시간들도, 나쁜 시간들도 생각하기 나름이다.

지루한 메세타
길이 지루해서 혼자 놀고 있음

며칠 계속되는 삭막한 평원에 오늘은 바람이 그리 불지 않고 냉랭한 공기가 가득하다. 순례자들의 옷차림이 두툼해지고 걸음이 더 빨라지고 있다.

바람이 없는 것 같은데 풍력발전기의 날개는 어제처럼 부지런히 돌아가고 있다.

옛순례자 병원

11시가 되어도 마을이 없어 쉴 곳이 없다. 점점 햇살이 강해지며 발바닥이 뜨거워진다. 저 굽이 길 너머에 마을이 있겠지 하며 서둘러 걸어도 다시 똑같은 길이 되풀이한다. 길에 속은 것 같다가 성급한 자신을 탓한다.


'그냥 가다 보면 언젠간 모퉁이가 나올 거야!'




다행히 순례자 병원 지나 돌다리를 건너자 팔렌시아 경계표지가 보인다.


'흥, 그래서 뭐가 달라지는데?'


모퉁이를 지나자 농작물이 자라는 녹색 평원이 펼쳐졌다.

대규모 물을 공급하는 기계시설들이 보이고 수로에 물이 가득하다. 회색빛 자갈 땅만 보다 짙은 흙들을 보니 우리나라 땅들이 생각났다.

스페인에 와서 포도밭과 가뭄에 마른 해바라기 밭을 본 이후 농사를 짓는 곳은 처음 본 것 같다.


가까이 가서 보니 무밭인데 제주 무보다 엄청 크다. 스페인 와서 무 요리를 먹은 적이 없는데 저 많은 무들이 어디에 쓰이는 걸까?


걷다 보니 어느새 물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사진에서 보던 자그마한 까스띠야 운하였다.

운하

'아, 그럼 오늘의 종착지 프로미스타가 저 끝에 있겠다. 그럼, 끝이 없는 길이 어디 있겠어?'


저 멀리 작은 유람선이 오고 있어 깜짝 놀랐다. 이렇게 작은 수로에 유람선이 다닐 수 있다니.


배 안은 대부분 노인 관광객들인데 수로변을 걷는 순례자들을 보며 부엔 카미노를 외치며 손을 흔든다.

쉬지 않고 빨리 많이 걸어 힘들었는데 기분이 좋아졌다.

카스티야 운하

포로미스타는 곡식이라는 뜻이다. 도시 입구에 오래된 카스티야 운하 시설과 하루 네 번 운행되는 유람선을 타는 곳이 있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밀평원의 작물들을 배에 실어 운반하려고 18세기에 건설하였다고 하여 또 한 번 놀랐다.

성마르틴 성당

시내에 들어오자 유명한 산마르틴 성당의 종탑이 보였다. 11세기 스페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가장 빛나는 건축물이다.

부드럽고 정갈한 느낌이 다정하게 다가선다. 실내에 들어서니 화려하지 않고 기도에 집중할 수 있는 간결한 모습이 참 편안하다.

프로미스타를 상징하는 로고와 함께 마을 중앙에 위치하여 많은 순례자들의 산책 모습을 볼 수 있다.

와우, 1시 반에 문을 여는 프로미스타 공립 알베르게에 1시 20분, 1등으로 도착했다.

프로미스타 공립 알베르게

산티아고 순례길 시작하여 제일 일찍 출발하여 제일 빨리 많이 걸은 날이다.

뭐 5시에 출발하여 많이 걷고 여행계획이 많은 사람도 있지만 세월아 네월아 지구소풍은 대서양 만나는 피스텔라까지 걸으려고 조금씩 조금씩 서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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