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길 26, 세월아 네월아 산티아고 순례길 26.

오르니요스 델 카미노에서 카스트로 헤리스까지(19.3km)

by 지구 소풍 이정희


버려진 트레킹 신발에 생명이 피다

알베르게 마을 '오르니요스 델 카미노는 순례자들이 지나가는 쉼터 같은 곳이다.


바람을 피하고 다시 길을 나서자 추위와 바람이 어제보다 더하다.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의 오래된 전설에 따르면 샤를마뉴가 이곳 강변에서 오르노(Horno; 화덕)를 발견하고 군대가 먹을 빵을 구우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의 이름이 화덕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어제 비바람은 춥지는 않았는데 오늘은 문을 나서자 대문 앞 온도계가 13도로 칼바람이 분다. 겨울 패딩을 안에 입고 얼굴 가리개와 모자를 이중으로 썼다.


어제 보다 더한 고지대 평원의 자갈길을 오르락내리락한다. 함께 걷던 길 친구가


"여기는 소설 '폭풍의 언덕'에 등장하는 황량한 언덕 같아. 아무것도 없는 황폐한 자갈 언덕에 바람 소리만 가득하잖아. 저 바람 소리가 캐서린이 사랑하는 사람을 부르는 애절한 소리 같지 않아?"


"나는 거친 바람에 신나게 돌아가는 풍력 발전기들만 보이는데---"


'친구는 소설과 종교에 나는 사회과학에 더 관심이 많아 화제가 다를 때가 많다. 뭐 사람이 다른데 당연 하지---'


며칠 전부터 스페인의 풍력발전기들을 무수히 보며 거꾸로 가는 우리나라 환경 걱정과 제주 월정리와 신창리, 강원도 선자령을 많이 생각했다.


스페인은 황폐한 메세타 지역에 농사를 짓는 대신 바람을 이용한 전기 에네지를 많이 얻는다. 세계적 흐름인 재생에너지가 아닌 다시 원자력에 의존하려는 우리나라가 걱정되었다. 나이가 들었는지 뭐든 미래를 생각하며 걱정이 점점 늘어간다.

끝없는 메세타 황무지길

바람을 피하거나 앉을 수 있는 곳이 하나도 없었다. 자갈 황무지 길만 걷다 보니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났다. 어제처럼 앞만 보고 걷다 자주 멈추어 뒤를 보며 걷기도 했다.

나의 흔적이 깃든 지나 온 길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사는 게, 인생이 다 그렇다!'


앞서가던 젊은이가 거친 바람에 흔들거리던 순례길 표지 기둥에 무거운 돌을 옮겨 고정시킨다. 뒤에 오던 백발의 부부가 얼른 다가가 함께 붙잡고 균형을 맞춘다. 그런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들을 향해 엄지 척을 하고 찬사를 보낸다.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다!


세 시간 반, 계속되는 자갈 평원의 굽이길이 지루해질 무렵 내리막길 끝에 처음으로 작은 마을이 보인다.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온타나스 마을이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재빨리 뛰어갔다. 마을 입구 스페인 국기와 나란히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내가 잘못 보았나?'


스페인의 카페나 알베르게에 다른 나라 국기와 함께 태극기가 걸린 것은 몇 번 보았어도 큰 게양기에 폼 나게 휘날리는 것은 처음 보았다.

온타나스 마을이 한국의 어느 도시와 자매결연을 하였나 보다 생각하며 검색을 해보아도 알 수 없었다.


일부러 카페 주인에게 물어보았더니 얼마 전 한국 단체 손님이 많이 와서 숙박을 하며 대형 태극기를 주고 갔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인들의 호의에 감사하며 계속 달겠다고 했다.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 대형 태극기를 미리 준비하여 선물하다니 역시 대단한 것 같다.

몇 시간 동안 날씨가 정말 변덕스럽다. 먹구름 사이 비가 눈물처럼 내려 우산을 폈더니 칼바람이 우산살이 휘어질 정도로 분다.

그러다 고개를 들면 하늘에 햇빛이 나며 옥색 하늘에 솜사탕 같은 하얀 구름이 몽실몽실하여 선글라스를 꺼낸다.

잠시 후 다시 귀를 아프게 하는 곡소리 나는 바람이 다시 분다.

하루가 다 산 인생 같았다.


'그래, 세상에 안 변하는 게 어디 있겠니?'


'변덕스러운 날씨 정도 맞추며 사는 거야 아주 쉬운 일이지. 사람보다 낫지!'

산안똔 유적지

오늘 숙소인 카스트로 해리스에 가까이 온 것 같다. 저 멀리 스페인의 고대 유적지인 산 안토 수녀원 건물이 보인다.


산 안똔 수도원은 수도원 건물과 성당 건물을 아름다운 고딕양식의 아치가 좌우로 연결되었다. 과거 이 아치는 수도원의 문 구실을 했으며 밤에 이곳에 도착하거나 문밖에서 밤을 지새우는 순례자를 위해 아치의 왼쪽 선반에 음식을 놓아두었다고 한다.


이곳은 중세의 피부병을 치료하는 병원으로 유명했으며 산티아고 순례자들을 위한 안식처를 제공했던 곳이다.

과거 유럽의 대 재앙이었던 ‘산 안똔의 불’이라는 병을 치료하는 능력 덕택에 유럽 전체에 약 400개의 병원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지금은 허물어진 벽들과 기둥 사이 예수상과 기도 제단이 남아있고 기념품과 세요(순례자 도장)를 찍을 수 있다.

멀리 산등성이 카스트로해리스 마을이 보인다

카스트로 해리스는 로마와 서고트 왕국의 유적이 많으며 무어인과 가톨릭 간의 무수한 전투가 벌어진 요새 마을로 유명하다.

중세 성곽의 흔적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도시의 형태는 능선을 따라 산티아고 순례길을 따라서 길게 뻗어있다.

많이 남아 있지 않은 성벽 안에는 오래된 유적과 수도원, 성당, 병원, 저택 등이 빽빽하게 자리 잡고 있다.


까스뜨로헤리스는 오늘날까지 중세와 흡사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어서 성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마을이다.

시간이 거꾸로 간 듯, 영화를 본 듯했다.

언덕에 마을이 있고 꼭대기에 폐허가 된 성이 보인다.

마을 입구 아주 오래되어 낡아 보이는 산토도밍고 성당 겸 박물관이 있는데 입장료가 있었다.

관람객은 없고 직원들만 서성거리고 있었다. 입장료를 왜 받는지 모르겠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들리는 카스트로 해리스 마을에 비빔밥을 식사로 주는 '알베르게 오리온'은 꽤 유명하다.

마을 곳곳에 비빔밥과 된장국을 주는 알베르게라는 간판이 있어 한국 순례자들의 발길을 이끈다.

나도 일부러 찾아서 예약을 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줄 알았는데 스페인 사장과 종업원들이 맞아준다.


한국의 짜파게티, 신라면, 진라면, 비빔라면과 김밥, 햇반, 소주, 광천 김, 김치통조림도 팔고 있어 놀랐다.


사장님에게 부인이 한국인이냐고 물어보니 아니고 친한 한국 친구가 있다고 말한다.

한국 음식 메뉴가 있다고 한국 사람이 운영한다는 생각은 소문이 되어 한국 순례자들은 모두 그렇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알베르게 오리온은 숙박비 15, 저녁식사 15, 조식 5유로에 미리 예약을 받는다. 오늘은 카드결제기가 고장 났다며 현금만 받는다. 그러나 늘 그런 것 같다.

사장님이나 직원들이 눈치 빠르게 한국말을 잘하고 친절하다.

바람 부는 폭풍의 평원을 빨리 통과하려고 점심 식사도 못 먹어 얼른 라면을 주문했다. 7유로이니까 만 원짜리 신라면을 먹은 것이다.

팜플로니아에서 라면을 먹은 이후 스페인 음식만 먹다 얼큰한 국물에 계란까지 넣으니 한 번에 폭풍 흡입을 했다.


'역시 이 맛이 내 나라의 맛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라면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 외국에 나오면 김치와 함께 참 그리운 음식이다.


드디어 7시, 저녁식사는 모두 비빔밥이다. 한국인 11명, 외국인 15명이었는데 외국인들은 고추장을 듬뿍 넣어 맛있다고 정말 잘 먹는다.

모두들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질문을 했다. 무슨 뜻인지 알고 그저 웃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아, 영어가 문제다!'

갈 길이 멀고 멀다 까미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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