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이거스냅 Jul 21. 2019

내게 작은 백반증이 생겼다

새로운 경험에도 반응이 무뎌짐을 느낄 때


  3주 전, 냉장고 정리를 하고 있던 늦은 저녁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정리를 안 하고 살았던지, 온갖 장아찌며 정체 모를 정도로 상해있는 음식물들이 가득했다. 어찌나 버릴 게 많던지 5L짜리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7장을 쓰고서야 얼추 냉장고 정리가 끝났는데, 그 외에도 음식물을 담고 있던 유리병과 플라스틱을 버리느라 무거운 것들을 들고 아파트를 4-5차례 오르내렸던 찰나였다. 원래도 좋지 않던 오른쪽 엄지손가락에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마도 무거운 것을 반복적으로 들다 보니 인대가 놀라서였던 것 같은데, 내가 발견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6/27 밤에 처음 발견 직후 화장실에서

  읭? 뭐지? 싶었다. 분명 아침 그리고 오후 내내 회사에서 일할 때까지만 해도 발견하지 못했던 오른손의 흰 피부반점을 발견했다. 아침부터 있었는데 못 본 채 지나쳤나 생각해봐도, 분명 점심에 물티슈를 쓸 때나 화장실 다녀와서 핸드크림 바를 때도 보지 못 했다. 설령 오늘 하루를 못 봤더라도 그럼 길어야 하루 이틀 전이라는 말인데, 어쨌든 내 30년 인생에 없던 피부색임은 확실했다. 내 몸에서 안 보이는 부위도 아닌 손이다. 매일 쳐다보는 데 모른다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갑자기 변해있는 피부색을 보고 엄마를 보여주니, 이상하다며 '원래는 안 이랬나?' 란다. 원래 그랬으면 퍽이나 보여줬겠다. 다음날 회사에 가서도 이렇게 되었다며 손을 보여주니 갑자기 그렇게 된 게 확실히 맞냐며, 이제사 출생의 비밀을 알아챈 사람을 만나기라도 한 듯 내게 되물었다.




"왜 아직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 이렇게나 많은 걸까?"


이 자그마한 흰 피부를 알아채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세상에 이런일이>, <그것이 알고 싶다> 그리고 <걸어서 세계속으로> 외의 수많은 TV 프로그램들만 봐도 내가 겪어보지 못한 일들 투성이이지 않나. 그래도 30년이면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하진 못했더라도, 간접적으로 겪어오며 산 것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거만도 이런 거만이 없나 보다. 큰 오산이었다. 하물며 내 손에 생기는 흰 반점조차도 언제, 왜 생겼는지조차 몰랐으니.


  얼마 전에도 손톱 끝을 뜯어서 고름이 생겨 고통스러워하며 피부과에 가봐야겠다고 호들갑인 직장동료가 있어 별거 아니니 걱정 말라고 전해준 적이 있다. 나는 손톱 주변이 갈라지면 그것을 뜯는 버릇이 있어 자주 겪는 일이라, 시간 지나면 연두색 고름이 터져 나와 짜내고 나면 아프지 않을 걸 수도 없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7명의 사무실 동료 중 이 사실을 나만 알고 있었다는 게 새삼스러웠다. 한 시간쯤 후에 그 동료가 병원엘 다녀오더니 의사가 내가 말한 그대로를 전했더랬다.


7/19 병원 가기 전 지하철에서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은 내 인생에 분명 처음 생기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별 생각이 안 들더라는 것이다. 별안간 피부가 왜 이러냐며 야단법석을 떨거나, 엄청난 문제라도 생긴 건 아닐까 걱정할 법도 한데 말이다. '이게 말로만 듣던 백반증인가?' '들었던 이야기처럼 언젠간 나도 마이클 잭슨처럼 갑자기 온 피부가 황인에서 백인이 될 만큼 하얗게 변하는 건가?' 하는 뜬금없는 상상을 해볼 뿐이었다.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자극에 익숙해진 것. 최근 몇 년 새 아픈 데가 많았다. 종자골염이라고 해서 엄지발가락 아래를 움직이는 도르래 역할을 하는 뼈에 염증이 생겨 걸을 때마다 고통스러운 2년의 시간을 보냈고, 척골신경증후군이라고 해서 양 팔꿈치의 신경이 지나가는 자리가 좁아 팔을 굽히고 조금만 지나도 팔에 힘이 빠지고 저린 지 일 년이 지났으며, 수근관증후군이라고 해서 정중신경이 지나는 손목 부위의 신경도 좁아 손바닥과 엄지 손가락의 근육이 항상 저리고 긴장된 상태로 지낸 지도 어느덧 일 년이 다 되어간다. 몸으로 직접적으로 전해지는 지속적인 고통과 자극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난생처음으로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소화불량도 무척이나 심했었다.


  남들은 평생 겪지 않고 살아갈지도 모를 이런 고질적인 질병들에 내가 너무 적응을 한 탓일까. 적어도 손등에 생긴 이 흰 반점은 눈으로 보고 있어도 시각적인 자극이었을 뿐, 아무런 통증은 없었다. 내가 애써 쳐다보거나 관심을 갖지 않으면, 남들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정도의 크기였고 고통스럽지 않았다. 어쩌면 주변의 말처럼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니, 이런 내 몸이 매일 같이 겪는 스트레스가 아마 이 피부질환의 원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했다. 그러나 내 몸에 생기는 이상하다면 이상한 변화임에도 불구하고, 병원을 가서 무엇인지 물어볼 생각조차 않은 채 무덤덤하게 3주를 보냈다.


피부자가면역에 도움이 되는 연고

  걱정이 없어서 좋은 걸까? 아니면 강한 충격이나 자극이 아니면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할 만큼 감각이 무뎌지고 있는 걸까? 잘 모르겠다. 왜 3주 동안 아무 생각 없이 가까운 피부과조차 찾지 않았던 것이었는지는. 다만 금요일 퇴근길에 이제는 한 번 가봐야겠다 싶어 백반증 검사가 가능한 병원을 찾아 진단을 받고 왔다. 우드등이라는 불빛으로 환부를 비춰 검사해야 하는데, 미용만을 목적으로 하는 피부과에는 검사하는 기계가 있지도 않다더라. 의사선생님께서 가족력이나 최근 주사투약 여부 등을 여쭤보시더니, 검진을 마치고는 백반증이 맞다 했다. 그래도 다행히 상태가 심하지 않고, 아주 작은 부위이기 때문에 연고를 잘 바르면 피부색이 돌아올 확률이 높다고 하셨다.


피부가 달라진 걸 알고도 왜 3주 동안 오지 않았냐고 물으셨다. 뭐라 대답할지 몰라서 처음 보는 사이였음에도 결국 계속 바빴다는 핑계를 댔다.


매거진의 이전글 복(伏)날엔 보양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