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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거스냅 Jul 22. 2019

복(伏)날엔 보양식?

개고기 애호가의 마음을 돌린 애견훈련사 강형욱의 대화법

  중복을 앞둔 지난 토요일, 을지로3가와 4가 사이쯤을 걷고 있었다. 화려하고 높은 현대식의 빌딩과, 허름하고 오래된 노포가 주는 멋이 어우러져 서울의 대표적인 힙플레이스로 거듭나고 있는 힙지로. 원체 이런 느낌을 좋아하는 편이라 너무도 즐겁게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中伏에 엽니다"


  굳게 닫힌 셔터에 붙어있는 한 장의 종이였다. 한자 급수는 없지만 나름 사학전공자로서 웬만한 3급 한자 정도까지는 감으로 때려 맞추는 실력 정도는 되는지라, 무심결에 지나치다 읽었다. 중....복? 중복? 엎드릴 복?


헐!


외마디 비명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이윽고 "그 복이 그 복이야?" 하는 말이 뒤따랐다. 갱상도에서 '가가 가가?', 즌라도에서 '거시기가 거시기하네' 하는 사투리 수준의, 다시 생각해도 문맥 없이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질문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복날의 복 자가 복 받는다는 의미의 복(福)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아주 사소하지만 큰 충격이었다. 복(伏) 이란 글자는 사람 인(人) 변에 개 견(犬)자이다. 사람 앞에 개가 엎어져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데, 한자를 통해서 그 뜻을 풀이하면 가을의 시원한 기운이 여름의 뜨거운 기운 앞에 굴복했다는 뜻이라나.


초복(初伏)에 먹은 보양식의 대명사, 삼계탕


  어쨌거나 우리나라에서는 복날에는 누구라도 보양식을 먹는 날로 각인되어있다. 닭을 갖은 한약재와 함께 푹 삶아 이열치열을 느끼며 먹는 삼계탕이 주를 이루지만, 요새는 닭고기라는 재료로 포커스가 맞춰져 복날에도 치킨의 판매량이 급증한단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좀 더 어릴 때만 해도 보신탕도 적지 않게 먹었던 것 같다. 혹시 복날의 복(伏)에도 사람이 개고기를 잡아먹는 날이었다는 의미라도 들어있었던 걸까. 예전에는 그래도 동네마다 하나씩 보신탕집, 영양탕집이 있었는데 이제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잘은 모르지만 오행사상에 비추어보면 여름은 불(火)의 기운이 너무 강해 가을을 상징하는 쇠(金)의 기운이 쇠퇴하기 때문에, 쇠(金)의 기운이 강한 개고기를 먹음으로써 부족함을 채우는 것이 전통이었다고 한다. 수라상뿐만 아니라 제사상에도 올라갈 정도로 시대를 올라갈수록 개고기 식용 문화가 더 도드라졌던 모양.


(참고 : 개고기 문화에 관한 글 https://blog.naver.com/opb12/221293708063)




  나는 개고기를 먹는다. 좀 더 강하게 얘기하면 아주 맛있게 먹는다. 먹는 것도 가족이나 지역의 문화이자 습관이듯이, 시골이 강원도의 산골짜기 인지라 우리 친척 일가의 대부분은(아닌 사람도 있지만) 개고기를 즐겨 먹는다. 어릴 적 여름 휴가철이면 시골 마을 앞을 흐르는 강가 다리 아래에서 개장국을 끓여 3박 4일 동안 먹기도 했다. 8살엔가, 개 도살장에서 개를 허공에 매달아 무시무시한 둔기로 3-4차례 내려쳐서 기절시킨 후 곧바로 파이어뱃마냥 대형 토치로 개을 꺼멓게 그을리는 장면을 차 안에서 목격했다. 그 개를 잡아다오기 위해 아빠인지, 삼촌이었는지를 따라갔다가 차 안에서 전면유리를 통해 생생하게 지켜봤다. 그리고도 맛있게 먹었다. 그런 정도였다.


  그런데 복날이 다가오는 여름철이면 항상 나를 불편(?)하게 하는 주제가 있다. 다름 아닌 개고기 식용 문제다. 내가 불편한 이유는 내가 개고기를 먹는다는 사실이 떳떳하지 못하거나 부끄러워서가 아니다. 개고기 식용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이기심 때문이다.


  개고기 반대론자들에게 개고기 찬성론자는 야만인이다. 하지만 반대 이유는 실상 부실하기 짝이 없다. 육식주의자이면서 개고기 섭취만을 반대하는 사람들(채식주의자는 논외다) 중에는 개는 애완견이기 때문에 먹으면 안 된다던지, 식용견이 다른 동물에 비해서 좋지 못한 환경에서 길러지기 때문에 개의 권리와 위생 상의 문제로 때문에 반대한다는 식의 의견을 가진 이가 대다수이다. 정말 논리로만 따지자면 닭이나 돼지를 애완용으로 기르는 사람들의 입장은 어떻게 고려할 것인지, 법이 제정되어(현재는 불법도축 관련 내용이 아니면 없다시피하다.) 식용견이 최고의 환경에서 길러진다면 먹어도 되는 건지 등의 질문에 다다르면 '웅앵웅' 모드로 돌변한다.


  물론 다들 한 번씩 들어봤을 법한 첫 개고기의 추억(어른이 맛있는 소고기라고 해서 먹어보니 개고기였다...) 따위 역시 있어서는 안 될 폭력이자 반존중이라고 생각한다. 개고기를 먹건, 먹지 않건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되 강요하지 않는 선에서 존중했더라면 참 좋았을 것을, 어쩌면 을의 입장(요즘은 개고기를 안 먹는 사람이 70% 이상이라는 통계에 따른 수치 상의 의미이자, 항상 다굴 당함)에서 경험해온 바로는 참 아쉬운 점이 많았다. 이렇게 지겹게 봐온 무논리에 대한 반감작용이었을까, 나는 계속해서 개고기를 찬성한다.


자기 입장에서, 자기 할 말만 하는 사람들은 결국 다 비슷한 것 같다


  그런데 며칠 전 애견훈련사 강형욱 씨가 한 인터뷰를 봤다. 제목이 얼추 '개고기를 반대하는 이유'였다. 나는 강형욱 씨를 정말 좋아한다. 한 분야의 최고 전문가라는 사실이 존경스럽기도 하거니와, 개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진심으로 전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아서이다. 그럼에도 이미 기사의 제목을 보는 순간 살짝 기분이 언짢았다. 무작정 내 의견과 달라서였기보단 앞서 말한 경험들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전한 내용은 내 예상과 달랐다.


"너무 죄송하게도 저에게는 논리가 없어요. 제가 (개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뭐라고 하거나 항의하지 않습니다."


"단지 저는 강아지가 얼마나 멋진 친구들이고 이 친구들하고 얼마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를 계속 즐거운 방식으로 긍정적인 방식으로 표현할 뿐입니다."


  아, 이 사람 대단하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구나.

  개고기를 좋아하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개고기를 안 먹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당분간은. 여전히 개고기를 찬성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은 없지만.


  분야의 권위자가 한 말이라서? 내가 강형욱 씨에게 개인적으로 호감이 있어서? 단연코 아니다. 1) 솔직하게 인정했기 때문이다. 2) 상대를 존중했기 때문이다. 3) 진심으로 호소하여 감정을 흔들었기 때문이다(진심으로 호소했다는 말은 결코 '개는 불쌍하니까 먹지 말자'는 식의 떼쓰기와 같지 않다.) 가령 드라마에서 "도의적으로 잘못된 줄은 알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 라는 식의 대사가 나올 때면(대게는 뻔한 러브스토리...) 틀린 줄 알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감정과 비슷하달까.


뽀야


  점차 동물의 권리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다양한 이유로 채식주의를 지지하는 운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존중한다. 때때로 동물농장도 보고, 동물의 권리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보며 울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육식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뒤늦게 밝히자면 나는 애견인이다. 현재의 반려견과는 5년째를 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무조건 개 식용에 반대해야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어차피 어느덧 개고기를 먹어본 지 3년쯤 된 것 같다. 별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점점 주변의 보신탕집이 사라지고 있고, 함께 먹으러 갈 사람도 점점 줄다 보니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사람들이 물어보면 개고기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이따금씩 그 부드럽고 담백한 맛이 그립기도 하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앞으로 개고기를 되도록이면 먹지 않아보려 한다. 무논리 웅앵웅 말마따나 개고기 아니어도 먹을 게 많은 건 사실이니까.


  요즘 뉴스에 '동물의 권리'를 두고 존중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환경운동 사례들이 종종 나온다. 작년 '배달의민족 치믈리에 현장에서의 육식 반대 시위', 얼마 전 '대형마트 정육점 코너에서의 육식 반대 시위' 등.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는 이야기는 설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개고기를 반대한다고 무작정 시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정녕 상대방을 설득하려거든 먼저 인정하고, 존중하고, 진심으로 부탁하는 게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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