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의 1월의 언제
운동도 하며 나름대로 군생활에서 재미를 찾으며 지내고 있던 시기에
여느 때와 다름없는 참모님의 호출에 참모실에 들어갔다.
평소에는 내가 편집하는 곳으로 참모님이 오셔서 일을 주시거나 참모실로 가더라도 이거 이거 필요하니까 만들어라 하고 빠르게 대화가 끝났는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참모님이 소파에 앉아보라고 하며 차를 따라주셨다.
난 순간적으로 이상한 이 분위기에 긴장을 하게 됐고 이내 참모님의 첫마디는
범수 니, 한동안 고생 좀 하자!
(참모님은 경상도분이시다)
난 뭐 어디 갑자기 팔려가는 줄 알았다.
참모님의 비장함에 비해서 내용은 별거 아니었다.
대충 뭐 들어보니, 예비군 훈련교육영상을 만들어야 하는데 원래는 사령부에서 만들어야 하는 건데 하필 지금 사령부에서 영상을 만들 수 있는 간부나 병사가 없어서 그걸 참모님이 하겠다고 가져오셨고 이제 나보고 그걸 만들라고 하셨다.
정훈보좌관이나 문화장교는 영상편집은 잘 못하니 너를 도와줄 TF를 꾸려줄 테니 네가 책임지고 팀장이라고 생각하고 잘 이끌어서 해보라고 하셨다.
그렇게 참모님과 이야기가 끝나고 참모실에서 나오는데, 내가 꽤 오랫동안 있던걸 본 정훈보좌관님은 나한테 참모님이 무슨 얘기하셨냐고 물어보셔서
"아, 무슨 예비군 교육영상? 만들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하니,
보좌관님은 이미 알고 계신 내용인 듯 씩 웃으며
"아 그래? ㅎㅎ 그래 범수야 형이 도와줄게! 쫌만 고생하자. 다 하면 참모님이 휴가도 주실 거야!"
(보좌관님은 가끔 자신을 형이라고 칭하셨다.)
진짜 몰랐다. 내가 뭘 하게 될지.
본부대장님이 나를 호출하더니 "연대에서 파견인원들이 올 건데 너희 생활관에 같이 살면 되지?"라는 말을 하시고 (사실 이걸 나한테 왜 물어보시는지 이해가 안 갔었다.)
갑자기 하급부대 이곳저곳에서 3명의 아저씨들이 우리 생활관에 오고 나랑 같이 정훈으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 우리 부대로 파견 오신 아저씨분들은 다행히도 나와 잘 지냈다.
두 명은 프리미어를 조금 다룰 줄 아셨고, 한분은 캐드가 가능하셨다.
애프터이펙트나 포토샵으로 해야 하는 작업은 내가 했고
갓 들어온 영상병 맞후임을 포함한 우리 5명은 나름대로 손발이 잘 맞았다.
그리고 지옥의 시작이었다.
거창한 이름의 시작아래 우리는 영상편집하는 공장이 되었다.
두 달 정도의 기간 동안 예상보다 많은 수정이 있었고 생각보다 많은 개수의 영상을 만들어야 했다.
정훈보좌관님과 참모님은 어디선가 끊임없이 촬영본이나 영상자료들을 계속해서 가져오셨고, 참모님의 컨펌은 평소와 다르게 많이 디테일했다.
물론 군대에서의 영상은 모션이 화려하고 디자인 퀄리티가 높은 것은 아니다. 그 무엇보다 가시성이 중요했고, 어차피 참모님이 허락하신 폰트와 색상의 범위는 정해져 있었다. (HY헤드라인)
사실 좀 특이했던 점은, TF기간 동안 모든 근무와 생활규칙에서 열외였다. (이건 진짜 댕꿀이었다.)
불침번이나 당직근무에서 갑자기 열외 됐고, 아침저녁 점호에서도 열외 됐다.
심지어 혹한기 기간과 겹쳤는데, 혹한기 훈련도 열외 되었다.
그냥 컴퓨터 앞에서 잠을 자고 야간순찰 간부님이 새벽에 오셔도 아무 꼬투리를 잡지 않으시고 오히려 힘내라고 하고 가셨다. 우리 5명의 병사들은 온갖 생활규칙에서 완전한 열외의 느낌으로 특혜(?)의 기분을 누리고 있었기에 두 달 동안 큰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간부님들이 야식도 자주 사주셔서 좋았던 것 같다.
연대에서 파견 오신 아저씨들도 사단에서의 생활에 만족도가 매우 높아 보였다.
그들도 함께 혹한기 훈련 열외를 받아서인지 밤샘 야근에도 표정이 매우 밝고 열정이 넘쳤다.
사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때 혹한기를 가고 싶었다.
내 군생활에는 유격 2번 혹한기 1번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갓 일병을 달았을 때 정훈실에 큰 행사를 준비하느라 참모님이 유격훈련을 열외 시켜주셨다. 참모님께 충성을 다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물론 몸이 힘든 훈련은 최대한 피하는 게 좋지만, 조기진급을 하면서 상병도 빨리 달고, 분대장도 빨리 넘겨받았던 터라 이번에 혹한기까지 열외 된다면 우리 생활관 인원들한테 너무 미안할 것 같았다.
(근데 뭐 어차피 내가 훈련을 가고안가고는 나에게 선택권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범수야 전역하고 꼭 우리 다시 만나자!
그렇게 2달 조금 안 되는 기간 동안 파견병들하고도 정이 많이 들었고, TF가 끝날 때쯤에는 서로 나중에 전역하고 연락하자는 약속을 남기고 그들은 본인들의 부대로 돌아갔다.
그리고 영상을 제작할 당시에는 그 영상이 대체 어디에 쓰이는지 관심도 없었지만 그 영상의 행방은 내가 전역을 하고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게 된 2023년에 예비군 훈련을 가서 5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경기도에서 학생예비군을 해서 못 봤던 것 같다.)
예비군 훈련을 가면 틀어주는 교육영상의 인트로에 52사단 부대마크가 회전하며 등장하는 인트로가 나왔고, 내가 만들었던 인트로와 함께 5년 전에 만들었던 영상이 아직도 예비군 훈련에 쓰이고 있었다.
시퍼런 저 PPT 같은 화면을 대체 왜 영상으로 만들어야 하는지 불평했던 기억도 나면서 이 영상들이 아직까지 쓰이고 있다는 점이 괜히 뿌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