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이 지워진 자리에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할 수 없던 삶

by 최호림

결혼 서약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

내 인생의 항로는 송두리째 뒤집혔다.


모든 것의 시작은 아버지였다.

위암 말기 선고. 이미 큰 수술을 마치신 뒤였고, 병실에는 늘 소독약 냄새가 가득했다. 앙상하게 마른 얼굴로 침대에 누워 계신 아버지를 바라보는 일은, 그 자체로 현실을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수술 뒤에 이어진 항암 치료는 지독했다.

아버지의 육신은 매일 부서지듯 고통에 시달렸다.

그 모습을 자식으로서 외면할 수는 없었다.


나는 아내에게 충분한 상의조차 하지 못한 채 결단을 내렸다.

막 신혼의 단꿈이 뿌리를 내리려던 순간이었다.

우리는 함께 살던 보금자리를 정리했고, 나는 아버지의 고향으로 내려가 병든 부모를 모시겠다고 아내에게 털어놓았다.


아내의 얼굴에 스친 짧은 침묵과 흔들림.

그마저도 나는 애써 외면했다.

장남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식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단호한 명분이, 내 모든 망설임을 가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는 아버지가 편히 지내실

큰 평수의 아파트를 살만한 돈이 없었다.

아버지 역시 젊은 시절 잘 나가는 사업가였지만

군사독재시절 야당 대선 후보에게 정치자금을 주었다가

회사가 부도가 나고 큰 빚을 지고 있는 상태였다.


어머니가 시골에 가지고 있는 땅을 다 팔아도 집을 사기엔 어림없는 액수였다.

거기다 동네에 돼지막사가 있는 땅이라서 살 사람이

쉽게 나오지 않는 그저 돈분 냄새만 가득한 땅이었다.


결국 아내가 시집오며 가져왔던 자금 그리고 신혼집 전세금으로 나는 내 인생 첫 중대형 아파트를 구매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집을 구했다는 기쁨도 잠시 우리는 이삿짐을 풀 새도 없이 부모님의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순간, 우리 삶에서 ‘신혼’이라는 단어는 조용히 지워졌다. 마치 존재한 적조차 없었던 꿈처럼, 흔적은 남지 않았다.


아직 부부라는 이름이 어색했지만, 아내는 단 한 번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녹초가 된 내 등이 매일 밤 침대 위에 쓰러지면, 그녀는 말없이 손바닥으로 내 등을 쓸어주었다. 말 대신 전해지는 그 온기가 없었다면, 나는 버텨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믿었다. 아픈 부모를 모시겠다는 내 선택이 가족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될 것이라. 그러나 그 믿음은 결국 나와 아내, 두 사람이 함께 짊어져야 할 십자가였다.


형은 바쁘다는 핑계 뒤로 숨어버렸고, 나는 장남 아닌 장남의 길을 홀로 걸어야 했다. 그 길에는 박수도, 대안도 없었다.


희생 또 희생… 특히 아내는 임신한 몸으로 중병으로 투병 중인 시아버지와 까탈스러운 시어머니를 시중을 드느라 더욱 힘이 들었을 거다.


4월 1일 만우절. 긴 투병 끝에 아버지는 거짓말처럼 우리 곁을 떠나셨다. 긴병에 장사 없다고 속된 말로

이제 해방인가? 싶었지만 홀로 남겨진 어머니는 형이 아닌 우리 부부와 함께 살기를 바라셨고, 우리는 또다시 그 시간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운명은 잔인했다.

아버지를 데려간 그 암세포가, 이번에는 어머니의 몸속에서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하라.”


마음속에서 되뇌던 성경의 구절이 떠올랐지만, 가슴은 그 말씀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했다. 반복되는 절망 앞에서 나는, 신을 향한 원망을 거두지 못한 채 서 있었다.


두 분의 수술과 회복, 그리고 끝없이 반복되는 병실의 풍경 속에서, 나는 끝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째서 이 지긋지긋한 굴레는

언제나 나와 아내의 몫으로만 돌아오는 것인지.


신앙을 붙들고 기도하면 구원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성경 구절을 되뇌면 마음에 평안이 깃들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내 입술이 기도를 반복하는 동안에도, 가슴은 끝내 따뜻해지지 않았다.


우리 부부가 이 모든 것을 운명이라 받아들이기에는,

삶은 너무 오래, 집요하게 우리를 시험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작가의 기억이 배경이 되었지만 모든 인물, 사건, 지명은 저자의 창작적 산물이며 현실과의 유사성은 우연일 뿐입니다. - 최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