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족(蛇足) 편 — 기억의 벽

신뢰가 낳은 비극

by 최호림

“네가 내 돈을 훔쳐 갔지?”

어머니의 말이 날카로운 비수처럼 내 마음을 찢고 지나갔다.


“넌 어머니 집을 빼앗은 철면피야.”

이어진 형의 말에 머리가 멍해지고, 어지럼증이 몰려왔다.


그 순간 오래전 기억이 되살아났다.

형이 가정을 버리고 떠났을 때, 근심 가득한 어머니가 내게 말했다.


“네가 좀 형을 찾아와라. 바람난 그 애를 그냥 둘 순 없지 않겠니?”

그 한마디에 나는 모든 일을 제쳐두고 서울로 올라가 형수님을 만났다.

그녀는 눈물로 호소하며 적게는 몇 십만 원 많게는 백만 원 이상이 결제된 형의 개인카드로 결제된 술집 영수증을 내게 보여줬다.


“그 사람, 아직 사랑해요. 제발 집으로 데려다주세요.”

그 말과 조카들의 얼굴이 교차되며 가슴이 미어졌다.

결국 형을 어떻게든 집으로 끌고 오겠다는 생각에,

그가 출입한다는 술집과 회사 앞에서 며칠을 차 안에서 숨어 기다렸다.


수많은 생각이 스쳤다. 이런 상황에서도 얼마 전 어머니 생신이라고 형수가 보내온 택배가 하나 있었다.

어머니 생신을 축하하는 작은 카드와 함께 들어있던 여성용 점퍼였다. 그러나 그 옷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어떤 댓구도 없이 다시 재포장해서 형수에게 반송시켰던 어머니의 신경질적인 모습이 떠올랐다.


형수에게 그리고 조카들에게 너무 미안한 맘이 들어 내가 서울애 머무는 동안에는 아침 일찍 죽을 포장 해 아파트 입구에 놔두는 일로 하루를 시작했고 마침내 형을 마주했을 때, 주먹이 떨렸지만 꾹 참았다.


억지로 끌고 가기보다 스스로 돌아가겠다는 그의 말을 믿었던 건,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은 일이었다.

형은 당시 내게 어머니보다 자기 자식만 위하는 형수가 너무 싫어 버릇을 고치려 한다고 내게 말했다.

너무 많은 교육비를 부담하는 것도 불만이라 했다.


믿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형이 하는 말이니

그래도 믿었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 신뢰가 지금의 비극을 낳았고 이제 그는 나를 원망한다.

“어머니를 이렇게 만든 건 네 탓이야!”


나는 숨을 고른다.

신혼 시절, 암 투병하던 아버지의 기저귀를 갈았고,

암 수술받던 어머니 병실에 배어 있던 소독약 냄새가 아직도 코끝에 남아 있는데,

그 모든 시간은 형과 어머니의 기억에서 깨끗이 지워진 듯했다.


나는 그저 치매가 의심되는 어머니의 건강이 더 악화되지 않길 바랐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내 마음을 곡해하며 욕을 한다.


결국,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갈 생각조차 없는 형 대신해 나는 입원 중인 병원에 외출증을 끊고 어머니의 집으로 향했다.


어머니를 마주한 순간,

눌러왔던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형이 나더러 어머니 집을 빼앗은 철면피라 했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 어머니가 날 몰아세웠다.


“그러게, 왜 나를 쫓아냈냐!”

순간, 황당했다. 지금 어머니가 두 발 딛고 서 있는 이 집을 마련해 드린 사람이 바로 아내와 나인데,

형의 욕설도 모자라, 어머니까지 나를 막장 드라마 속 인물로 몰아세웠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그들은 한통속이었다.

이 작품은 작가의 기억이 배경이 되었지만 모든 인물, 사건, 지명은 저자의 창작적 산물이며 현실과의 유사성은 우연일 뿐입니다. - 최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