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의 길목에서

브레이크 없는 내리막길

by 최호림

형 가족과 그들의 식구들과 함께 떠난 해외여행 중 어머니가 뇌경색으로 쓰러졌다는 문자가 왔다. 긴박한 그 문자는 나에게가 아니라 아내에게 보내져 있었다.


너무 놀란 아내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내 건강을 염려해 차마 바로 말하지 못하다가, 결국 그 문자를 내게 보여주었다. 불안이 밀려와 곧바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차례 수신 거부 끝에 연결된 통화에서, 어머니는 거의 죽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치료 중이라고 말했다. 여행 중에 쓰러졌고,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위독한 상태라고 그 말을 어머니 스스로 전했다.


걱정과 걱정이 꼬리를 물었다. 답답한 마음에 나는 어머니의 SNS를 열어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애써도, 그다음에 마주한 장면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병실 사진이 올라와 있었고, 그 아래에는 장문의 글이 적혀 있었다.


“나는 뇌경색 환자다. 하지만 하나님의 힘으로 살아났다.”

더 혼란스러웠던 건, 평소 페이스북만 사용하시던 어머니가 거의 사용하지 않던 인스타그램에 그 글을 올려두었다는 사실이었다. 혹, 내가 당신의 SNS를 보는 걸 의식해서 이런 행동을 한 것일까?

아무리 긍정적으로 해석하려 해도, 이 모든 상황은 위기의 기록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의 관심을 향한 연출처럼 느껴졌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어머니는 아주 건강한 몸으로 돌아왔다며, SNS에 잔잔한 감사의 글을 남겼다. 그렇게 지인들과 일상적인 소통을 이어가던 어머니의 SNS에 어느 날 갑자기 집에 도둑이 들었다며 분노에 찬 글이 게시가 되었다. 위기와 안도, 평온과 분노가 아무런 예고 없이 번갈아 등장했다.


정말 불안했다. 내 몸 하나 추스르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어머니의 돌발적인 말과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까지 겹치자 숨이 점점 막혀왔다.


나는 직접 어머니 집을 찾아가 관리사무소장을 만났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그는 이미 상황을 잘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에도 비슷한 일로 경찰이 다녀갔고, CCTV까지 확인했지만 도둑의 침입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해 보려 애썼다. 불안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혼자 사는 노인의 두려움일 수도 있겠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러다 문득, 인터넷 검색창에 ‘도둑 의심’이라는 단어를 입력해 보았다. 무엇을 알고 쳐본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과 반복되는 이상 행동 앞에서, 어머니가 왜 그러시는지라도 알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다.


그러자 화면에는 수많은 사례가 쏟아졌다.

‘도둑 의심’은 치매의 전형적인 증상이라는 내용까지 나왔다.


“에이~ 설마…”

그러나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왔다.

그러나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리곤 지금껏 어머니의 이상한 행동이

점 점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를 알려야 했다.

하나뿐인 혈육이자 형에게 말이다.

내 건강이 허락되었다면

절대 의지 하지 않았을 사람.

그러나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형은 이혼 이후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날도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나는 형과 함께 사는 여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내 어머니를 ‘엄마’라 부르며 해외

여행까지 함께 다니던 사람이었다.

전화는 뜻밖에도 바로 연결됐다.


“여보세요?”

내 번호를 모르는 모양이었다.

내가 사정을 설명하자,

그녀의 목소리가 싸늘해졌다.


“근데 왜 저한테 전화를 하시죠?”

나는 반사적으로 말해 버렸다.


“엄마라면서요.”

그녀는 코웃음을 치곤 전화를 형에게 넘겼다.

정말 오랜만에 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전화를 안 받아?”

형은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네가 나쁜 의도로 문자 보냈잖아.”

나는 이를 악물었다.

아픈 나를 대신해 어머니에게 신경 좀 써 달라는 말이, 도대체 뭐가 그리 나쁜 말인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형, 내가 뇌경색으로 아파,

그러니 어머니랑 병원에 같이 가 줘.”

하지만 형은 잔인하게 답했다.


“네가 뇌경색으로 아프든 말든, 난 상관없어. 앞으로 나한테 연락하지 마.”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그간 쌓여온 내 모든 감정을 담아 욕설을 했다.


“네가 형이냐! 사람 같지도 않은 놈!!”

화가 난 형도 소리쳤다.


“어머니를 방치한 철면피”

다 녹음 중이니 고소하겠다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잠시 뒤, 형에게서 문자가 왔다.


“엄마는 경도인지장애야. 뭘 알고나 말해라.

너! 고소할 거야.”

비참했다. 그러나 그 말이 사실이길 빌었다.


다음 날, 보건소와 연계된 병원으로 어머니를 모셔 가기로 했다. 입원 중이던 병원에서 외출 허가를 받고 이른 아침 어머니 댁으로 갔다.


“치매는 브레이크 없는 병,

한 번 굴러가기 시작하면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진다. “


지인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내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어머니는 간병비나 실비 보험 하나 없으니, 요양 등급이라도 서둘러 받아야 했다.


집에서 만난 어머니는 환한 얼굴로 나를 맞았다.

거기다 총명하고 또렷한 눈빛까지였다.

그러나 대화가 길어질수록

방금 한 말을 잊고 같은 질문을 반복하셨다.

그리고 세 번째 같은 질문이 흘러나온 순간,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어머니가 브레이크 없는 내리막길,

그 시작점에 내가 서 있다는 사실을…

이 작품은 작가의 기억이 배경이 되었지만 모든 인물, 사건, 지명은 저자의 창작적 산물이며 현실과의 유사성은 우연일 뿐입니다. - 최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