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할 수 없는 자식의 도리

열지 말아야 할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by 최호림

어머니는 매일같이 SNS에 글을 올리셨다.

“오늘은 따뜻한 햇살 덕분에 고맙다.”

“작은 꽃 한 송이에도 감사하다.”


내가 보기엔 어머니는 노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소녀 감성을 지녔다’는 말을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듯 보였다. 관심을 받고 싶어 했고, 그 욕구를 숨기지 않았다. 심지어 페이스북이 내 글을 관리해 주며 나에게만 특별한 혜택을 준다는 말까지, 서슴없이 내게 말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안쓰러움과 함께 묘한 불편함이 밀려왔다. ‘관심 속에서 살아가려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동시에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피는 속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뇌경색 발병 이후, 나는 어머니와의 갈등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결국 연락을 끊었다. 그럼에도 혼자 지내는 고령의 어머니는 늘 마음 한편에 불안으로 남아 있었다.

‘어머니의 SNS’는 어찌 보면 내가 당신의 생존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글이 올라오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며칠 소식이 끊기면 불안이 밀려왔다.


그러던 어느 날,

“물이 새는 집에서 사는 게 괴롭다. 그래도 감사하며 살아야지.”

이런 글이 어머니의 SNS에 올라왔다. 며칠째 반복되는 그 문장은 지인들마저 걱정하게 만들었고 결국 아내와 함께 작은 아파트를 마련해 새로 인테리어를 마친 뒤 어머니를 그곳에 모셨다.

이곳은 예전에 아내가 어머니와의 분가를 염두에 두고 점찍어 놓았던 아파트였다.


당시엔 어머니께 이 집을 보여드리니 화를 내시며 거부하시곤 당신 홀로 부동산에 가셔서 결정하신 집을 계약하셨다. 얼마 후 어머니는 당신이 소유했던 땅 일부를 내게 증여하셨다. 입구조차 없는 맹지, 증여세도 없는 그런 값어치가 크지 않은 땅이었다.


대신 그곳에 모신 조상 묘를 파묘하라는 조건이 붙었다. 몸이 불편한 나에겐 힘든 일이었지만 배알도 없이 그 순간만큼은 어머니에게 인정받는 듯해서 마음 한편이 따뜻해졌다.


하지만 그곳애 도착해서 일을 진행하려 하자 마을 주민들의 텃세를 겪어야 했다. 파묘를 하려면 ‘통행세’라며 50만 원을 내라는, 어이없는 요구였다.


“무조건 마을 회관으로 지금 당장 50만 원 현금으로 들고 오 시 요잉~! ”


더 황당했던 건 그들이 돌아가신 아버지의 지인임을 자부하듯 말하던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몸이 아픈 와중에 그런 일들까지 겹치자, 내 건강은 눈에 띄게 악화되어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는 없었다. 아무도 조상을 돌보지 않는 상황에서, 증조부 내외와 할머니까지 결국 내가 모셔야 했다.


파묘를 위해 찾은 날,

출근한 아내 없이 홀로 인부들과 현장에 갔다.

세 구의 조상묘가 갈라지고 유골이 드러나는 순간,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슬픔인지 안도인지,

혹은 오래 방치해 둔 조상의 묘에

대한 죄책감의 눈물인지, 분간할 순 없었다.


그때 파묘업체 사장이 조용히 말했다.

“사정은 모르겠지만… 가족이 아무도 없으시네요.

제가 옆에 있겠습니다.”

핏줄 아닌 타인의 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장례를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파묘를 도와준 사장이 내게 조심스레 말했다.


“누구든 조상을 잘 모시면, 장남이든 차남이든, 복을 받더군요. 그건 제가 잘 압니다.”

그 말은 마치, 나에게 주는 위로의 선물 같았다.


얼마 뒤,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파묘를 잘했는지 확인하는 전화일 줄 알았는데,

내 예상과는 달랐다.

어머니는 또다시 형의 가족과 해외여행을 떠난다며,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내게 말했다.


“비용은 전부 네 형이 낸다더라.”

그 말을 애써 무시했다.

그리곤 그저 내 할 일은 다 했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렇게 장기간 여행을 떠난 어머니를 대신해,

나는 병원에 외출을 신청하고 어머니 집을 찾았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방을 정리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그 작은 집안일조차 감당하기 힘들어,

거친 숨을 내쉬며 한쪽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자 숨을 고르던 순간,

방 한쪽에 놓인 어머니의 태블릿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볼까 말까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화면을 열어보고 말았다.

그러나 보지 말았어야 했다.

그 문자들을 확인하는 순간,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고 말았다.


어머니 스마트폰과 연동이 된 태블릿 화면 속에는

어머니와 형의 대화가 끝없이 이어졌다.

스크롤을 올릴수록 내 심장이 조여왔다.


어머니가 당신 소유의 큰 땅을 팔아 형에게 송금한 기록이 있었고

해외여행 경비를 형이 전부 냈다던 어머니의 말은,

사실 그 반대였다.


나는 한동안 화면을 내려보지 못했다.

속이 뒤틀리고 구역질이 치밀었다.

돈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었다.

문제는 두 사람은 나를 철저히 배제한 채,

자신들만의 비밀을 만들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나에게 얼마 전 주어진 맹지는 ‘형에게 해준 만큼은 너에게도 해줬다’는 명분이었다는 사실을… 서운함이 밀려왔다.


얼마 전, 어머니가 사실 집 인테리어를 하면서

새시 설치비가 백만 원이 모자라 좀 도와달라 했을 때 어머니는 단호하게 말했었다.


“내가 무슨 돈이 있냐.”

그런 어머니께서는, 당신의 암 투병 중에도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워 집을 떠난 형에게

내가 부탁드린 새시 비용의 수 십배에 달하는 돈을 건네셨던 거다.

그리고 그 돈으로 여행을 다닌 거였다.


정말, 유전자 검사를 해봐야 하는 걸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을 휘몰아쳤지만

결국, 어머니의 사랑은 처음부터 선택적이었고

나는 그 선택에서 늘 제외된 자식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결정적 한방은 따로 있었다.

이 작품은 작가의 기억이 배경이 되었지만 모든 인물, 사건, 지명은 저자의 창작적 산물이며 현실과의 유사성은 우연일 뿐입니다. - 최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