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끝에서 보내는 편지 | Remorse
이제야 모든 것을 알 것 같다.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알츠하이머'라는 가혹한 유산 앞에,
내 마지막 순간까지 얼마나 많은 기억을 도둑맞게 될지 알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치매 판정을 받으셨을 때, 어머니가 얼마나 두려우셨을지를.
삶의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나는 깨달았다.
형제란 가까울수록 더 쉽게 서로를 등지고,
또 더 깊게 아프게 할 수 있는 존재였음을.
이 짧은 세상을 살아보니,
형제 사이의 모진 분노는 결국 후회라는 지워지지 않는 상흔만을 남길뿐이었다.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저서에서 '이기적 유전자'를 말하며 생명은 그저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한 생존 기계에 불과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냉철한 이론조차 형제라는 이름 앞에 놓인 진정한 이타심 앞에서는 길을 잃고 만다.
유전자의 계산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서로를 향한 가여움과 끝내 놓지 못하는 마음.
그것은 생물학적 본능을 넘어선 인간만의 거룩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건강만 해치지 말고 무조건 살아있는 동안 행복해라. 싸움도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도 모두 부질없다. 무조건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거라. 그것만 하고 살아도 인생은 너무 짧다.
어쩌면 나 또한 내 아들들에게 어머니가 그러했듯 이 잔인한 병을 유산으로 남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들들아, 부디 두려워하지 마라.
사람의 기억이란 파도 앞에 쌓은 모래성처럼 쉽게 무너질 수 있지만,
누군가를 향해 내밀었던 다정한 손길과 묵묵한 헌신은
시간을 넘어 영원히 흔적으로 남는다.
뇌의 기록은 지워져도, 가슴이 기억하는 온기는 결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살면서 누가 더 많이 베풀었는지,
누가 더 오래 참고 견뎠는지를 두고 아쉬워하지 말거라.
형제란 때로는 서로에게 가장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결국 힘든 세상 속에서 서로를 가장 단단히 지탱해 줄 존재 또한 서로임을 잊지 말거라.
너희가 서로에게 망설임 없이 친절하고,
서로의 약함을 말없이 안아주며,
아무 이유 없이 함께 웃을 수 있다면,
세상 그 어떤 것도 부럽지 않은 가장 값진 유산을 이미 가진 것이다.
부디 살아 숨 쉬는 동안 더 자주, 더 솔직하게 서로에게 다가가 주기를 바란다.
이 아빠가 남기는 마지막 부탁이다.
이제 천천히 눈을 감는다.
내 손을 잡고 서럽게 울고 있는 저 여인이 누구인지,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저 젊은이들이 누구인지 이제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하지만 괜찮다. 그들의 슬픔에서 깊은 사랑을 느끼고,
그들의 시선에서 따뜻한 위안을 얻는다.
그간 너무나 보고 싶었지만 잘해드리지 못해 마음 한구석이 시렸던 장모님,
그리고 애증으로 점철되었던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이제 나도 그 모든 감정의 짐을 내려놓고 당신들을 만나러 떠난다.
슬픔과 기쁨 좌절도 모두 담긴 내 기억은 잃었으나,
사랑만은 품에 안고서.
그동안 <어머니의 장례식에 가지 않기로 했다>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