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에게 쓰지 못한 편지

결코 그들처럼 살지 않으리…

by 최호림

거의 반년을 병실에 누워 지내시며, 통증과 싸우시던 장모님. 항시 퉁퉁 부은 발을 주물러 드리면 나에게 우리 아들 우리 아들, 냄새나고 썩은 발, 만지면 안 되는데.. 하시던 내 사랑하는 장모님이 돌아가셨다.


수많은 근조 화환 앞에서도 그리고 입관식을 하며 지켜봤던 당신의 시신 앞에 서서도, 그 사실이 좀처럼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슬픔보다 죄송함이었다.


그러나 내 식구 중 그 누구도 장례식장에 찾아오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이제는 화조차 나지 않았다. 감정이 닳아버린 뒤에 남는 무감각에 더 가까웠다.


장모님을 떠나보낸 뒤 내 병은 악화되었고, 나는 일부러 장모님이 입원해 계셨던 병원에 입원을 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계시던 그 병실을 선택했다. 그 공간에 남아 있는 장모님의 온기와 기억이, 그나마 나를 버티게 해 줄 것이라 믿었던 것 같다.


그런 와중에도 내 가족이라는 사람들은 내 아내를 공격했다. 나에게 너는 신경도 쓰지 말라며 폭언을 일삼던 어머니와 형이 이제 자신들의 타깃을 어머니를 잃고 상심하고 있는 며느리로 삼고 있었다.


늦은 밤 전화를 해서 내가 요양원에 가야 하니 집을 내놓으라 하셨고 아내에게 시아주머니라고 불리는 내 형은

술에 취한 밤마다 아내에게 전화를 해댔다.


과거 형이 술집 여자와 바람이 나서 이혼을 했을 때도 형수에게는 핀잔만을 줬고 당신의 큰 아들을 감쌌던 어머니의 모습은 여전했고 이제는 당신 땅 팔아서 준 큰돈을 모두 탕진하고 술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형과 함께

내 가족을 괴롭히고 있다.


얼마 전까지 SNS에 장기간 큰돈을 불쌍한 아이들을 위해 후원을 했다 자랑하시던 어머니지만 이제는 돈이 없다며 나와 내 아내를 도둑으로 모는 모습이 허무하기만

했다.


심지어 모태 신앙이라 자부하던 나는 종교도 버렸다. 이유는 어머니가 생각나서였다. 오히려 명리학이나 샤머니즘에 의지하며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마음으로 버티고 또 버텼다,


어머니는 끝내 루이소체 치매로 인한 파킨슨병으로 투병하시다 생을 마감하셨다. 형은 어머니 장례식장에서 내게 화를 내며 15년 만에 처음으로 먼저 연락을 해왔지만 나는 그곳에 가지 않았다.


차마 그 자리에 설 자신이 없었고 살아 계실 때 아무리 설명하고 설득해도 끝내 닿지 않았던 말들이,

그리고 그들의 횡포의 기억이 아직까지 마치 보이지 않는 벽처럼 우리 사이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아내는 그들의 폭언에 상처를 받아

마음의 병까지 생긴 상태였다.


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그래도 어머니인데, 마지막 인사는 해야지.”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자리에 서는 순간 혈연이란 사람들에게 철면피라 불리고 도둑이라 손가락질을 받게 될 것임을… 거기다 나뿐 아니라 내 아내와 아이들까지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형이 이혼하고 현재 살고 있는 그들. 내 가족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한참 어린 사람에게 형수라고 불러야 할 사람과

그의 자녀를 단지 혈연이라는 이유로

장례식장에서 마주하고 며칠을 함께하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순간 나는 프란츠 카프카가

<아버지에게 편지>를 쓸 때의 심정을 떠올렸다.

끝내 전해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지난 세월 속 억눌린 말들을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가야 했을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온

여원여소(如怨如訴)와 같은 고백을.


그리곤 나 자신을 떠올렸다.

가족의 외면 속에서

어린 시절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그들의 긴밀한 관계를 부러워하던 소년의 그림자.

그 모순된 감정들은

끝내 나 자신을 벗어나지 못한 채,

스스로에게조차 솔직할 수 없는 날들을 이어왔다.


가족이라 불렸지만, 정작 가족일 수 없었던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옭아매면서도

한 발짝 다가서면 곧장 상처가 되고,

뒤로 물러서면 외면이라 불리는 그곳에서

나는 늘 길을 잃은 채 서 있었다.


어머니의 눈길 앞에 서면,

나는 언제나 한없이 작아지는 아이였다.

억울함을 쏟아내고 싶으면서도

그 시선을 마주하는 순간,

내 목소리는 변명처럼만 들릴까 두려워

끝내 삼켜야만 했다.


그렇게 내 안에 말하지 못한 수많은 문장들이

어머니에게 전하지 못한 편지로 남았고,

나는 집에서 조용히

검은 양복을 꺼내 입고 장례를 준비했다.

국화와 어머니의 영정을 마련하고 향을 피웠다.

그리곤 한참을 울었다.

두 아들과 아내가 곁에서 말없이 내 손을 잡아주었다.

그 손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날 밤 완전히 무너졌을 것이다.


한때나마 그들을 가족이라 믿었기에 붙잡았고,

사랑이라 여겼기에 버텨보려 했지만,

알츠하이머라는 질병 앞에 남은 것은 오해와 상처,

그리고 끝내 건네지 못한 사과와 미안함뿐이다.


지금도 밤에 눈을 감으면 어머니가 내 이름을 부르는 듯하다.

그 부름이 원망인지 용서인지 나는 아직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목소리조차

이제 시간이 흐르니

점점 낯설어져 있고 내 기억 속에서

자꾸만 흐려져 간다는 거다.


물론, 그들에 대한 서운함과 억울함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마저 희미해지고 있다.

가장 뜨거웠던 분노도, 가장 깊은 원망도

그래서 억눌렸던 내 감정도…

짧지만 그러나 한없이 길기만 한 인생 속,

시간이란 조각가의 손길 아래

둥글게 모난 곳 없이 깎여 나갔음을 이제야 느낀다.

그리고 그 깎여 나간 자리는

내 곁을 묵묵히 지켜준 아내와 아이들의

자리하고 있다.


나는 이 이야기들을 통해 누가 옳았고,

누가 잘못했는지를 밝히려는 것이 아니다.

끝내 어머니께 건네지 못한 나의 편지를 글로 남기며,

그 속에서 평생 지워져야 했던 나 자신을 되찾고자 할 뿐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기억이 배경이 되었지만 모든 인물, 사건, 지명은 저자의 창작적 산물이며 현실과의 유사성은 우연일 뿐입니다. - 최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