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소체 치매 - 망각의 길 위에서
황소고집 같은 어머니를 설득하는 일은, 마치 달걀로 바위를 치는 일과 다를 바 없었다.
“어머니, 제발 병원에 한 번만 같이 가시죠.”
간절히 건넨 내 말끝마다 돌아오는 것은, 노망 난 노인네 취급은 질색이라는 듯한 어머니의 단호한 거절뿐이었다.
그러던 중,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형이었다.
어제저녁 통화에서 내가 퍼부은 말들이 아직 그의 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는지, 이번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거친 말을 쏟아냈다.
“나중에 통화하자.”
어머니가 몇 차례 말을 돌렸으나, 형은 멈출 줄 몰랐다.
결국 어머니는 전화기의 전원을 꺼버렸다.
방 안을 채운 고요는 안도감이 아니었다.
귀를 먹먹하게 죄어오는, 묵직한 막막함뿐이었다.
나는 다시 설득을 시도했다. 그러나 내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
아침 일찍 서둘러 나오느라 뇌경색 약도, 혈압 약도 챙기지 못한 탓에 머리는 납덩이처럼 가라앉고, 심장은 불규칙한 박동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던 어머니가, 잠시 흔들린 듯 입술을 꼭 깨물었다.
“내가 치매가 아닌 걸 직접 보여주겠다.”
마침내 어머니는 병원행을 받아들이셨다.
검사가 길게 이어졌다.
한 시간 남짓 지나자 병원장이 우리를 호출했다.
그의 얼굴에는 안쓰러움이 깊게 드리워져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이미 치매가 진행된 상태입니다. 단순 알츠하이머형 치매가 아니라, 파킨슨병으로 연결될 수 있는 ‘루이소체 치매’로 보입니다.”
숨이 멎는 듯했다. 차라리 형의 말대로, 어머니의 주장대로 단순한 경도인지장애이길 바랐다. 그러나 내 예감대로 치매라는 확정 진단이 떨어지자, 그 사실은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내 마음을 때렸다.
충격 속에서, 아주 작고 어두운 안도감이 피어올랐다. 그래, 나는 틀리지 않았다. 어머니의 그 모든 이해할 수 없던 행동은 병 때문이었다. 내가 미친 게 아니었다. 그 끔찍한 사실을 증명했다는 씁쓸한 위안이 눈물과 함께 흘러내렸다.
하지만 더 큰 충격은 따로 있었다. 이미 이 병원에 어머니의 진료 기록이 남아 있었다. 얼마 전 ‘도둑이 들었다’며 불안을 호소해 신경안정제까지 처방받으셨다.
그러나 정작 어머니는 그 기억조차 없었다.
병원장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전도사님이 당시에 도둑이 들었다는 상황을 너무 디테일하게 설명하셔서 저도 처음엔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게 바로 루이소체 치매의 대표적 증상이지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거기다 이 병원 원장은 당신이 과거 시골교회에서 사역하실 때 알게 된 분이셨다는 사실에 더욱 기가 막햤다.
눈앞에 앉아 계신 어머니는 여전히 숨 쉬고 계셨지만, 기억과 시간 속에서는 이미 멀리 떠나버린 듯 보였다.
치매 확정 판정만으로도 버거운데, 기억조차 놓쳐버린 채 망각의 길 위를 홀로 걷고 있는 어머니.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머니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형이었다.
“엄마, 스피커폰으로 바꿔주세요.”
그렇게 삼십 분 넘는 고함 속에서,
나는 이미 말할 힘조차 잃고 있었다.
“네가 어머니 집을 빼앗고 골방에 가뒀잖아!
그래서 어머니가 치매에 걸린 거야.
내가 고소할 거다!”
형의 말은 날 선 칼처럼 내 가슴을 찔렀다.
형의 욕설이 이어지는 동안,
어머니는 묵묵히 창밖을 바라보셨다.
그 눈빛이 내 마음을 가장 아프게 찔렀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행동은
꼭 살아 있는 이를 앞에 두고 치르는 장례식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았어.”
체념 섞인 그 한마디 뒤에, 어머니는 형이 한심스러웠는지 휴대폰의 녹음 버튼을 눌렀다.
치매의 안갯속에서 아주 잠깐,
내가 알던 단단했던 어머니가 돌아온 것만 같았다.
마침내 형은 마지막 말을 하며 일방적인 통화를 끝냈다.
“네가 뭘 안다고 설쳐.
너는 가만히 있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 ‘알아서’라는 말.
나는 그 말에 속아 십 수년을 버텼다.
아버지가 암으로 투병하실 때도,
어머니가 암 수술을 받으실 때도 그는 자리에 없었다.
그날 밤, 나는 한참 동안
어머니가 보내주신 통화 녹음을 되풀이해 들었다.
형의 욕설, 형의 협박, 형의 냉소.
피는 섞였으나,
형제의 정은 이미 사라진 목소리였다.
이 작품은 작가의 기억이 배경이 되었지만 모든 인물, 사건, 지명은 저자의 창작적 산물이며 현실과의 유사성은 우연일 뿐입니다. - 최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