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작가와 젊은 기획자의 동행 … 황석영 작가와 송성진 대표가 만든 기적
KTV(한국정책방송원) 리포트 취재차 원로 문인 황석영 작가를 만나기 위해 군산 영화동을 찾았다.同行한 송성진 대표와 황 작가는 오랜 친분을 이어온 사이이며, 기자 역시 그의 소개로 이번 뜻깊은 인터뷰가 성사됐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군산 영화동은, 적산가옥의 시간의 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골목이었다. 붉은 벽돌과 목재가 교차하는 건물들 사이로 스며드는 초겨울 햇살은, 낯익으면서도 어딘가 낯선 이 도시의 정서를 담고 있었다.
일본 식민시절 지어진 적산가옥들이지만, 그 흔적을 흑역사로서 단죄하는 대신 문화의 옷을 입히려는 노력들이 곳곳에서 감지되었다. 마치 한 시대가 손때 묻은 채 고스란히 남겨 새로운 세대의 사람들에게 다시 말을 걸고 있는 듯한 풍경이었다.
송 대표가 운영하는 재즈클럽에 먼저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는 동안, 문득 이 좁고도 깊은 골목들이 작은 베네치아를 연상케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송성진 대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스스로를 소개하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단 한순간도 정적이 흐르지 않을 만큼, 소년 같은 열정이 말과 표정에서 넘쳐났다.
“여기는 과거 흑인과 백인이 함께 재즈클럽을 운영하던 거리였습니다. 근대문화가 뒤섞이고, 또 새로운 것이 태어나던 현장이었죠.”
초겨울, 추운 바람에 그의 긴 머리가 흩날렸다. 송 대표는 서울 예술의 전당 인근에서 업장을 운영하다, 오랜 숙원이던 고향 군산에 15년 전 귀향을 선택했다. 그리곤 사람 없는 곳에 제대로 된 재즈클럽을 만들고 싶었다는 그의 포부는 단순한 바람이 아닌, 현실로 이어진 꿈이었다.
특히 그는 영화동 일대 적산가옥 보전과 복원에 힘을 쏟아왔다. 목조건물에 대한 까다로운 규제, 행정 절차의 장벽, 심지어 이를 이유로 내세우던 군산시의 우려까지도 그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낡은 것을 허물기보다, 역사에 문화적 생명을 부여하는 길을 택하며 보전과 보존이라는 숙제를 동시에 풀어냈다. 이는 단순한 사업적 선택이 아닌, 지역 문화와 역사를 향한 헌신에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그를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는 내게 그는 자신의 현실 또한 숨기지 않았다.
“남은 건 빚뿐인데요. 그래도 이게 다 너무 재미있어요. 후회할 시간에 이불킥이라도 하고, 다시 일어나면 되는 거죠.”
그가 말하는 ‘이불킥 이론’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경험의 일부로 흡수하는 태도에서 출발한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1970년생인 그는 기성세대의 권위적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그의 공간에는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들었고, 웃음과 열정이 끊이지 않아 보였다.
오로지 지역 예술가들이 성장할 환경을 마련하는 데 집중하는 모습에 그가 꿈꾸는 ‘파라디소’는 멀리 있지 않았다.
약속된 시간이 다가오자 황석영 작가가 도착했다. 백발이 된 노장의 모습과 눈빛에 자연스레 기자의 고개가 숙여졌다. 그러나 황 작가는 도착과 동시에 송 대표를 향한 칭찬을 먼저 쏟아냈다.
“이 친구는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재주가 있어요. 요즘 흔치 않은 친구입니다.”
황작가와 송대표는 꼭 아버지와 아들처럼 대화를 이어갔다. 황 작가는 만주에서 태어나 해방 이후 영등포, 그리고 삼포 가는 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여정과도 맞닿은 장항과 인접한 군산에 자리 잡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우리 역사와 분단의 기억을 안고 살아온 작가에게 이만한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이곳에 송성진이라는 친구가 있으니 말 다했죠.”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군산에는 전혀 연고가 없는 사람이 아닌 꼭 이곳이 당신의 고향처럼 편안하고게 여기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문득 떠올랐다.
최근 전 세계적 화두가 되고 있는 ‘챗GPT’.
황 작가가 어떤 주제든 말 만하며 청산유수처럼 풀어내는 모습이, 인공지능의 언어 능력과도 흡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말에는 인공지능이 따라올 수 없는 삶의 롤러코스터와도 같았던 여정과 그에 따른 경험이란 데이터베이스가 작동, 더 감각적인 답변들이 이어졌다.
그는 얼마 전 5년 만의 신작 할머니를 탈고했다 말했다. 아직도 현역작가라며 말을 이어가는 그의 모습에 열정이 느껴졌다.
그와 충분한 대화를 나눈 뒤 황 작가를 배웅하고 다시 재즈클럽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자는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무대 위에는 한국 음악계의 거장, 기타리스트 한상원 교수가 서 있었다. 그는 밴드 멤버들과 호흡을 맞추며 리허설을 진행 중이었다. ‘지방 소도시 무대’라 가볍게 여겼던 기자의 선입견이 단번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재즈 피아니스트 지인에게 송 대표에 대해 물었더니, 이미 업계에서는 잘 알려진 인물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재즈 뮤지션들이 모두 그의 무대를 거쳐갔다며, 자신 또한 언젠가 꼭 이곳에서 연주하고 싶다는 바람까지 전했다.
하지만 정작 송 대표는 시종일관 겸손했다.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벤처 창업가처럼, 무대의 모든 일을 스스로 즐기며 도맡았다. 뮤지션들의 헬퍼를 자처해 허드렛일까지 직접 챙기는 모습에서 그의 진정성을 읽을 수 있었다.
귀가하려던 기자를 붙잡으며 그는 “한 곡만 듣고 가라”라고 말했다. 이어진 연주는 금세 마음을 사로잡았다. 음에 취한 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다시 소년의 그것이었다.
“사운드 죽이죠.”
그 말 한마디에 군산이라는 도시가 가진 잠재력이 겹쳐 보였다. 누군가에게는 군산 영화동의 적산가옥이 늘어선 구도심이 하찮아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곳은 송성진 대표에게 새로운 이야기와 꿈이 시작되는 진짜 무대였다.
낡음을 지우기보다, 시대의 흔적을 지키며 새로운 문화를 피워 올리는 일. 그 중심에 송성진 대표가 있고, 그의 곁엔 황석영 작가가 함께 동행하고 있다. 그래서 이 도시는 더욱 기대된다. 내일이 궁금한 도시, 내일이 준비된 도시.
리터닝 군산.
문화가 돌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