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웅을 두고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목소리들에 대해
배우 조진웅을 둘러싼 논란 속에서 정작 빠져 있는 것이 있다. 그의 죄와는 별개로, 그가 어떤 시대적 조건 속에서 성장했고 왜 그런 비행에 이르렀는지를 묻는 '사람에 대한 질문'이다.
지금 조진웅을 두고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목소리는 수없이 많다. 그러나 특정 목적이나, 특히 정치적 프레임을 모두 걷어낸 뒤 그를 한 인간으로서 안타까워하거나 분노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러니까 죄의 무게와 별개로, 그는 왜 청소년기에 그런 비행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그저 너무 쉽게 말하고, 정치적으로 같은 편이라는 이유만으로 피상적인 동정을 SNS에 흩뿌리는 이들을 보며 나는 말문을 잃곤 한다.
1975~76년생들은 유난히 운이 없는 세대였다. '88만 원 세대'의 마지막을 관통한 전형적인 낀세대였고, IMF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온몸으로 맞았다. 게다가 학력고사 마지막 세대이자 수능 1세대로서, 공부 방식과 교육 환경이 급격히 바뀌는 혼란도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다. 무엇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그 시절은 지금처럼 문화·예술인이 사회적 존중을 받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어릴 적 가수나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하면 "딴따리가 되려 하느냐"는 핀잔이 돌아오던 시대였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그래 가끔은 하늘을 보자' 같은 영화들이 청춘의 고통을 쏟아내던 것도 그만큼 압박이 심했기 때문이다. 일본 문화 개방조차 이루어지지 않아 당시 유행하던 안전지대, X Japan, 일본 애니메이션 등을 정식으로 접할 수도 없었다. 피 끓는 청춘이었지만,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는 시대였다.
소년범 논란의 한가운데 선 1976년생 조진웅 역시 그 시대를 버텨낸 청춘이었다. 그리고 성공한 배우가 되었다. 일단 그 시기를 버티고 문화·예술인이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박수를 보낼 만하다. 당시 1975년생인 나 또한 가수가 되고 싶어 두문불출하다 현실에 절망했고, 작은 일탈이 반복되었다. 일탈이라고 해봐야 지금 기준에서는 미미하게 보일 술과 담배 정도였지만, 당시엔 그것이 비행 청소년과 일반 청소년을 가르는 경계였다.
그때는 지금처럼 멘토·멘티 제도나 우리 사회가 아이들의 일탈을 붙잡아 주는 시스템이 없었다. 그렇다고 누군가를 바른길로 이끌기 위해 따뜻한 상담이나 지도가 존재했던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갱생'이라 하면 결국 법의 테두리 안에서 단죄되는 방식뿐이었다. 그래서 공부해야 할 시기 유달리 친구들보다 더 펄펄 끓는 감정을 분출할 곳 없던 몇몇 청소년들이 거리와 사회를 배회했지만, 그 방황을 받아 줄 제도적 장치와 사회적 시선은 턱없이 부족했다.
조진웅을 둘러싼 논란은 단순히 한 배우 개인의 과거를 넘어서, 특정 세대가 반드시 겪어야 했던 구조적 결핍과 시대의 그늘을 돌아보게 한다. 그의 죄는 죄대로 판단해야 하지만, 누군가의 과거를 손가락질하고 또는 동정하려면 그가 지나온 시대 또한 함께 바라보는 성숙한 시선이 필요하다. 그 시대의 청춘들이 겪은 상처와 방황을 이해할 때 비로소 더 깊은 논의가 가능하다.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것은 결국 '사람에 대한 질문'이다.
물론 그를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조진웅이라는 사람을 둘러싸고 난무하는 동정과 비난이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느껴져 화가 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