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도심 뒷산에서 마주한 새끼 고라니

야생의 배고픔, 전주 도심에서 마주한 고라니

by 최호림
전북특별자치도 전주 도심의 평범한 산행길에서 야생과 눈이 마주쳤다. 신기하게도 어미 고라니는 먼저 능선을 달려 내려갔고, 새끼는 잠시 숲 가장자리에 멈춰 섰다. 그 짧은 침묵의 순간, 도심으로 내려온 야생의 이유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사진 설명)


전주 완산구 근영여중 뒷산을 오르던 중이었다. 근처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알게 된 등산로로, 늘 오르내리던 도심 산행길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면과 마주했다.


과장 조금 보태 말하자면, 숲 속에서 예전 서부영화에서나 들릴 법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고, 이내 내 시선 끝에는 커다란 어미 고라니가 먼저 능선을 달려 내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눈을 의심하던 찰나, 잠시 뒤 새끼 고라니 한 마리가 숲 가장자리에 멈춰 섰다. 그 순간, 나와 새끼 고라니의 눈이 마주쳤고, 이내 녀석은 어리둥절해하며 순간 몸을 돌려 도망쳤다.


눈이 마주친 순간 새끼 고라니는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놀란 듯했지만 섣불리 달아나지 않았다. 몇 초간 이어진 침묵 끝에, 새끼는 어미가 내려간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몸을 옮겼다. 도심 한복판에서 자연이 잠깐 모습을 드러낸, 진귀한 순간이었다.


고라니는 사람의 기척에 매우 민감한 동물이다. 특히 새끼를 동반한 어미는 경계심이 더욱 강하다 전해진다. 그런 고라니가 학교와 주택가가 인접한 도심 뒷산까지 내려왔다는 사실은, 이 만남이 단순한 우연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이 장면을 보며 ‘야생의 배고픔’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이 짐승들은 먹이를 찾아 내려온 길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삶이 윤택해지고 편리해지면서 야생동물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지만 결국 고라니는 배고픔에 사람 사는 공간 가까이까지 내려올 수밖에 없었고, 그 경계에서 나와 잠시 시선을 나눴을 것이라 짐작해 본다.


도심과 자연의 경계는 점점 흐려지고 있다. 산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인간의 생활 반경은 깊숙이 자연 속으로 들어왔다. 동시에 야생동물들 역시 살아남기 위해 사람 사는 공간 가까이로 이동하고 있다. 우리가 무심코 걷는 산책로가, 야생에서는 생존을 위한 이동 경로가 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진귀한 장면을 목격했으니 오늘 하루는 운이 좋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크게 다가온 것은, 이처럼 특별해야 할 장면이 도심에서 점점 낯설지 않게 목격되는 현실에 대한 씁쓸함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야생동물과의 ‘조우’는 이제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변화된 환경이 보내는 일종의 주의 신호일지도 모른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 이 특별한 경험의 여운에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반가움과 놀라움, 그리고 묘한 책임감이 뒤섞여 나를 감쌌다. 이제 배고픈 야생을 우리는 어떤 태도로 마주하며 살아가야 할까.


https://youtube.com/shorts/stPMEq5ASqQ?si=d8-YpxUZvC-wi6l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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