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세대 아저씨, MZ세대의 눈물 앞에서 무너진 편견 하나
아내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지난 일요일 영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를 관람했다.
2025년 제46회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 2024년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수정곰상(제너레이션 K플러스 작품상)을 수상한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를 연출한 김혜영 감독의 작품이라고 아내는 설명했다. 주연은 추영우와 신시아.
하지만 나는 되물었다.
“주연배우가 누구라고? 추성훈이라고?”
아내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고, 나는 괜히 더 농을 던졌다. 격투기 선수 추성훈이 교복을 입고 멜로 연기를 하는 장면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며 혼자 웃음이 났다.
솔직히 말하면 영화에 대한 큰 기대는 없었다. 원작이 일본 청춘 멜로라는 점도 그랬고, 제목부터 어딘가 감성 과잉일 것 같다는 선입견이 먼저 들었다. 그럼에도 포털 사이트의 실관객 평점은 10점 만점에 9.26으로 생각보다 꽤 높았다.
극장에 도착해 좌석에 앉는 순간, 나는 괜히 자세를 고쳐 앉아야 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른바 ‘MZ세대’라 불리는 중·고등학생들로 객석이 가득 차 있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아이들이 유치원생이던 시절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러 갔을 때 보호자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서인지 50대 중년 남성인 나는 그들 사이에서 유난히 튀는 존재였다. 괜히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영화 시작을 기다렸다. 이야기가 전개되자 자연스레 대학생이 된 두 아들이 떠올랐다. 영화 속 고등학생 주인공들의 말투와 행동, 감정 표현이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내 아들들과 묘하게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그동안 아이들을 이렇게 생각해왔다. 사랑하고 정말 눈에 넣어도 안아픈 존재지만, 감수성이라곤 1도 없고 옛말로 하면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만큼 무뚝뚝한 세대라고 말이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이 극장 안에는 바로 내 아들들과 같은 연배의 아이들이 가득 앉아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진짜 놀라움은 영화가 클라이맥스로 향하면서 찾아왔다.
극장 안 어둠 속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앞좌석의 아이들은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히 코를 훌쩍이며 울고 있었다.
그 순간, 내가 가지고 있던 MZ세대에 대한 편견이 와장창 무너졌다. 감정 표현에 서툴고 무심해 보였던 아이들이 이 감성적인 영화를 보며, 감수성 살아있다 자부했던 내 어린 시절 그 어떤 누구보다도 더 솔직하게 슬퍼하고 깊이 공감하고 있었던 모습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같은 영화를 보고도 X세대 중년으로서 그들의 감성에 동참하지 못하고, 함께 울어주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워졌다. 오히려 감정에 무뎌진 쪽은 중년이 된 나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과 이별, 기억과 상실 앞에서 그들은 결코 무감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섬세했고, 솔직했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졌을 때,그동안 세대가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의 감성을 몰라줘서 미안했다고 조용히 사과했다. 그저 행동의 단면만 보고 차갑다, 무뚝뚝하다고 쉽게 단정 지은 나는 결국 그들이 말하는 꼰대가 맞았다.
이 영화는 일본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국내에서도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 누적 관객 36만 명을 돌파하며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꾸준한 호응을 얻고 있다. 화려한 볼거리나 자극적인 설정 없이도,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건드리는 이야기의 힘이 관객을 극장으로 이끌고 있는 셈이다.
얼마 전 러닝타임이 3시간을 넘는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대작 〈아바타: 불과 재〉 를 재밌고 흥미롭게 관람했다.
압도적인 스케일과 기술력, ‘역시 아바타’라는 말이 나올 만한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이 조용한 청춘 영화가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물론 화려한 액션도, 압도적인 영상미도 없었지만 기성세대인 내가 무심코 품고 있던, ‘요즘 아이들’에 대한 오해 하나를 내려놓게 해준 순간. 그 작은 깨달음에 감사한 이 영화가 내게 남긴 가장 큰 여운이었다 자평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