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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Dec 06. 2017

디자인은 '생각'이다

디자인의 어원을 추적하면 이탈리아어 디세뇨가 나온다. 르네상스 시기 디세뇨는 '머리로 하는 작업'을 의미했다. 이 디세뇨를 표방한 예술학교가 등장할 정도였으니, 디세뇨 개념이 당시 예술계에 상당한 영감을 준듯하다. 그런데 디세뇨 학교에서 주요 과목은 데생이었다. 데생은 '손으로 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생각할수록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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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는 자신이 하는 일은 '머리로 하는 작업'이라고 배운다. 그러나 정작 필드에서는 '손으로 하는 작업'만 하게 된다. 많은 분들이 디자이너는 자기 생각을 대신 표현해주는 '손'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를 고용하는 이유도 머리가 아닌 손을 빌리기 위해서다. 어쩌면 이 도식은 이미 르네상스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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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머리로 하는 작업'이란 무엇일까? 일상어로는 '계획'이다. 이 말은 뭔가 심심하다. 그래서 다른 학문들은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한다. 가령 철학에서는 '사유'라고 말하고, 정치에서는 '이념', 종교에서는 '명상', 역사에서는 '상상'이라고 말한다. 마케팅부서에서는 '기획'이고, 비지니스를 하는 사람에겐 '경영'이다. 이렇듯 머리로 하는 작업은 멋진 이름을 갖고 있다. 그렇담 디자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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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은 그 자체로 말 뜻이 '머리로 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디자인씽킹'은 뭔가 어색하다. 동어 반복을 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디자인이 그 자체로 씽킹인데 왜 또 씽킹을 붙이지...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디자인은 동사이면서 명사이기도 하기에 이런경우는 '명사'로 쓰였거니 한다. 한편으로 '명사'로서 디자인은 뭐지? 하는 의문이 들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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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는 일종의 개념이다. 추상적인 명사는 여러 층위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 즉각적인 표상이 가능한 바나나도 일종의 추상어다. 이보다 더 추상은 '과일'이고 이보다 더 추상은 '식물', 더 추상은 '생명', 더 추상은 '우주', 더 추상은 '신?' 모르겠다. 이렇듯 추상에도 여러 층위가 있다. 층이 올라갈수록 생각의 깊이도 더해진다. 고도의 사고력이 요구된다고 할까. 그렇담 디자인은 어느 정도 층위일까? 과일? 식물? 생명? 우주? 어쩌면 그 사람이 생각하는 디자인의 수준도 이 층위에 걸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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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디자인은 추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손으로 하는 작업'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작업'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하곤 한다. 그것이 사유든, 기획이든, 명상이든, 상상이든 뭐든 불리든 상관없다. 일단 위로 올라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위로 올라가자고 하면 다들 내려오라고 아우성이다. 머쓱해진 나는 다시 내려오면서 생각한다. 아직 우리는 올라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구나... 오늘도 윗층을 보며 입맛만 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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