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칼럼] 능력주의의 파탄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23884.html
요즘 이언 모리스의 <가치관의 탄생>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 칼럼이 인상적이다. 모리스는 가치관의 구분을 에너지 생산방식과 연결짓는다. 수렵채집과 농경, 화석연료라는 생산방식에 따라 공정함, 사랑, 도덕, 신성함의 가치기준이 달라진다. 가령 수렵채집 문명은 평등하고 재산을 공유하며, 폭력성이 높다. 반면 농경문명은 이와 정확히 반대다.
-
나는 수렵채집 챕터를 읽는내내 북유럽 문명이 떠올랐는데, 그들의 높은 세금과 성평등, 그리고 특유의 폭력성이 과거 수렵채집 시절에 기반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화석연료 시대에 그들의 방식은 상당히 선진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도 이들이 농경문명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역설적 상상을 하고 있다.
-
중국 문명, 우리나라는 고도의 농경문명이었다. 로마도 그랬다. 위계질서, 부의 불평등, 반폭력성은 이들의 특징이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북유럽 기반의 혁명정신이 어색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 우리 시대의 가치판단 기준이라면 기를 써서 도달해야할 목표인 것을. 즉 우리는 북유럽보다 2배 3배 더 노력해야 한다.
-
별도로 내가 이언 모리스를 읽는 이유는 이 도식을 미술사와 연결시키고 싶어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세계사와 미술사를 연결하려면 인류학적 지식이 좀 필요한데, 우연히 그의 접근이 다소 역사인류학이라는 점에 끌렸다. 아무튼 새로운 디자인사를 쓰고 싶은 지난 수년의 노력이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다. 성과가 나오려면 아직 멀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