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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Dec 18. 2017

일반의지 2.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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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중간을 넘기고 있긴 하지만, 민중=개돼지론을 이렇게 멋지게 포장할 수 있구나... 감탄하게 된다. 루소와 정보화를 가로지르는 이 책을 읽으며 어쩌면 미래의 중앙집권사회는 이런 방식으로 출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이런 방식이란 엘리트=오타쿠의 민중 지배이다. 저자의 다른 대표저서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과 데리다의 재해석도 사뭇 짐작이 된다. 이 저자는 아주 유용하면서 동시에 아주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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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의지 2.0>을 거의 읽어간다. 뒤쪽에 예상대로 리처드 로티가 나온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계속 로티가 연상되었기에 "역시 그렇군" 생각했다. 히로키는 계속해서 '의사소통'을 강조한 하버마스를 자신의 대척점에 놓았다. 그는 무의식의 정치를 말하지만 정치이론을 말하면서 '의사소통'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버마스를 부정한다면 남은 것은 로티뿐이니, 이렇게 귀결되는건 다행이다. 담론에 앞서 이론을 강조한 로티의 실용주의는 오타쿠에 근거한 히로키에겐 아주 매력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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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정치를 '공론'으로 보는듯 하다. 저자는 이 공론의 과정을 더 탄탄히 하고 싶은 의도에서 루소의 일반의지를, 알렉산더의 패턴랭귀지를, 프로이트의 무의식을, 구글의 데이터베이스(=빅데이터)를 끌어들인다. 정보화 사회, 어른이 사라지는 미성숙 사회, 네트워크 사회에서 시의적절한 지적이자, 어찌보면 당연한, 자연스러운 접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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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치의 목적은 공론이 아니다. 저자는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정치에 있어 공론은 목적이 아닌 수단일 뿐이다. 정치의 진정한 목적은 '분배'이다. 정치학자들이 정치? 하면 처음 떠오르는 문장도 "가치의 권위적인 분배" 아닌가. 정치에서 공론장은 가치 분배에 권위를 부여하는 형식적 과정이다. 그런데 이 책에는 분배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사실 공론은 분배를 어떻게 할 것이냐에 따라 구성되기 마련인데. 즉 정치는 '정치경제'의 약자라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항산(恒産)과 항심(恒心)이 늘 함께 다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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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안천)가 해제에서 '무지의 베일'로 이 책을 마무리하는 방식은 아주 적절하다. 공정한 분배를 진지하게 성찰한 롤스의 <정의론>이 이 책의 근거를 탄탄하게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정작 저자는 롤스를 거의 인용하지 않았다. 노직과의 대척점 정도로 살짝 언급할 뿐이다. 참고문헌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 점은 조금 이상했다. 노직보단 롤스가 더 이 책의 논지에 합당할 법한데... 번역자도 그걸 의식했을까. 해제에서 분배의 본질을 정확히 관통하는 '무지의 베일'을 끌어온 것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번역자가 완성도를 높였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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