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에 대한 단상

by 윤여경

비트코인 현상을 보다보니 재밌는 경계가 발견되는데, 바로 기술과 인문이다. 인문학자들은 대부분 비트코인을 기술이 아닌 가상화폐로 본다. 반면 과학기술자들은 비트코인을 가상화폐가 아닌 블록체인 기술로 본다. 물론 그들이 비트코인의 양면, 화폐와 기술적 측면을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렇게 보거나 보일 뿐이다. 때문에 해법도 달라진다. 인문학자들은 규제, 과학자들은 장려를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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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도구와 관념이 합쳐진 현상이다. 도구는 그 자체로 위험하지 않다. 그 도구를 쓰는 관념이 위험하다. 관념이 도구를 지배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인문학자들은 도구를 지배하는 관념에 관심을 둔다. 물론 도구가 관념에 영향을 많이 미치기도 하지만. 이런 상황에는 이들도 과학기술자와 같이 기술을 존중하고 경외한다. 다만 인문학자들은 인간의 악한 모습을 잘 알고 있기에 그 평범한 얼굴을 한 악한 인간(=관념)을 우려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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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자동차가 있다고 치자. 만약 교통법규가 없다면 그 자동차 기술은 어떻게 될 것인가. 자동차는 그 자체로 아주 유용한 도구다. 동시에 아주 위험한 도구다. 그래서 자동차 도구는 교통법규라는 관념으로 통제된다. 운전자가 악한 마음을 먹으면 수많은 사람에게 해를 가할 수 있기 때문에 강력하고 섬세한 교통법규가 필요하다. 그렇게 통제되어도 자동차 사고로 죽는 사람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잊어서도 안된다. 자동차를 만드는 기술자와 법을 만드는 법학자,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입법자, 여기에 조언하는 인문학자들은 모두 머리를 맡대야 한다. 늘 항상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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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발표로 많은 이들이 상실감이 클 것이다. 이는 투자를 못한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미 4년전에 비트코인을 주제로 수업에서 논쟁 한 적이 있다. 작년초에도 후배와 비트코인 구입을 심각하게 논의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하나도 갖지 않았다. 그런데 현재 그런 자신을 후회한다. 아니 어떤 상실감을 느낀다. 이는 아마 나 뿐아니라 많은 이들이 그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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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으로 모두가 상실감에 빠졌다. 투자한 이와 투자하지 못한 이들 모두. 게다가 친한 이들이 이 주제로 서로에게 상처주는 말을 한다. 인간의 욕심이 빚은 참으로 안타까운 현상이다. 비트코인은 우리에게 우리의 현실을 이렇게 가르쳐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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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해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가상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을 별로도 보는 시선이다. 그런데 이미 때를 놓친듯 싶다. 상처의 골이 깊게 파이고 있다. 누가 먼저 그 골을 용감하게 건널 것인가. 이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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