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하우스 교육의 한국적 변용

by 윤여경

SKY캐슬과 바우하우스_디자인평론 6호 바우하우스 특집 윤여경


‘대학’이라는 절대적 존재

“지구는 둥근데, 세상은 왜 피라미드야!” 최근 유행한 드라마 ‘SKY캐슬’의 대사이다. 같은 반 친구 김혜나(김보라 역)의 죽음으로 혼란스런 상황이었다. 차기준(조병규 역)은 ‘이때가 등급을 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분노해, 아버지가 평소 아끼던 피라미드를 가져와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외친 말이다. 피라미드는 아버지가 믿는 세상의 모형이다. 경악한 아버지는 화를 내며 ‘지금은 어려서 모르겠지만 세월이 지나면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고 아들을 설득하려 했지만 오히려 아내와 아들들은 아버지를 밖으로 내쫓는다.

‘SKY캐슬’은 자녀교육을 중심으로 인간의 다중성을 잘 풀어낸 드라마다. 주요 테마는 ‘입시’다. 극중에서 부모들은 자식이 얼마나 공부를 잘 하는지, 어떤 대학에 갔거나 갈 가능성이 있느냐에 따라 서로를 평가한다. 극의 주인공 예서 엄마인 한서진(염정아 역)은 무조건 의대를 고집하고 차민혁(김병철 역)은 딸이 하버드에 다닌다는 이유로 의기양양하다. 물론 나중에 거짓임이 밝혀졌지만.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 열광한 이유는 비현실적인 극중 상황이 현실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과거 조선사회도 비슷했다. 집안 누군가가 과거에 합격하면 온 집안의 격이 올라갔다. 거꾸로 3대째 과거 급제가 없으면 양반 집안은 향반으로 등급이 내려갔다. 이런 문벌계급사회는 근대에 들어와 배척되었고 반상(班常)의 사회적 계급도 사라졌다. 하지만 인간 사회가 어디 쉽게 바뀌겠는가. 혈통에 근거한 ‘문벌’은 학교에 근거한 ‘학벌’로 바뀌었고 자본은 보이지 않는 계급을 만들었다. 그리고 과거는 입시가 되었다. 학벌(문벌)과 자본(계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면 반드시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했다.

드라마에는 두 세대가 공존한다. 어려운 시절을 산 부모세대는 대학을 통해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었다. 자녀들도 좋은 대학을 가야 좋을 삶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반면 이미 풍족한 아이들은 좋은 대학만큼이나 현재의 삶도 중요하다. 아이들에게 성적은 미래보다는 현재의 성과다. 이 차이는 크다. 부모는 미래의 자신을 위해 공부했지만, 아이들은 현재의 자신과 부모를 위해 공부한다. 즉 부모는 자식의 미래를 위해 공부를 독려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공부하는 셈이다.

결승점은 입시다. 두 세대는 모두 ‘대학’이라는 절대적 존재를 믿는다. 대학은 학문의 상아탑인 동시에 직업교육의 장이다. 이제 대학을 빼고 고등교육을 상상하기 어렵다. 고등직업을 갖기 위해선 반드시 대학을 거쳐야 한다. 그래서 대학은 사람을 평가하는 보편적 잣대가 되기도 한다. 반면 대학에서 어떤 교육을 받았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대학에 들어갔냐’이다. 특히 한국에서 더욱 그렇다. 그러니 입시만 치열할 뿐 정작 대학 교육 문제는 거론되지 않는다. 당연히 대학 교육이 제대로 될 리 없다. 학부모와 학생, 선생 모두 짐작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선택할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당장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학부모와 학생들 입장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대학의 현실을 뻔히 알면서도 대학에 가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해야만 한다니. 아이러니다. (1)


길드에서 아카데미로

최초의 대학은 11세기 볼로냐에서 시작되었다. 공부를 하고 싶은 학생들이 모여 조합을 만들고 선생을 초빙했다. 학생조합을 기반으로 수많은 분야의 선생들이 초빙되면서 형성된 대학이 ‘볼로냐 종합 대학’이다.

당시 유럽사회는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도시화는 새로운 사회적 기회와 분위기를 만들었다. 왕을 중심으로 새로운 관료 귀족이 등장했고 이들은 실용적인 교육 시스템을 요구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대학이 형성되었다. 도시가 커지자 상인과 장인이 급부상했다. 상인과 장인들을 서로의 정보와 기술을 교류하기 위한 조직이 필요했다. 이들은 귀족에게 세금을 내겠다는 조건으로 자치권을 확보했다. 이를 ‘길드’라 불렀다. 스스로 조직화된 길드는 규약을 만들고 기술을 전수하기 위한 교육 체제를 구축했다.

길드 교육은 작업에 직접 참여해 배워가는 도제식이다. 먼저 길드의 도제로 들어가 허드렛일부터 시작한다. 노력을 통해 능력을 인정받으면 직인이 되어 독립할 수 있다. 직인에서 더 성장하면 마스터가 되는데, 마스터는 길드의 지도자이다. 누구든 일단 길드에 들어가면 직업이 결정되고 평생직장이 보장되었다.

서양 중세에는 대학과 길드 같은 다양한 교육 기관이 존재했다. 귀족이 되는 길, 성직자가 되는 길, 학자가 되는 길, 상인과 장인이 되는 길이 모두 달랐다. 다만 넘지 못할 사회적 계급이 존재 했기에 직업의 귀천이 분명했다. 주로 태생에 따라 직업이 정해졌다. 길드에서 아무리 최고의 실력자인 마스터가 된다 해도 귀족 같은 사회적 권력을 누릴 수는 없었다.

14~15세기 전쟁과 전염병으로 중세의 안정된 기반이 무너졌다. 동방에서 새로운 문물이 유입되면서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 르네상스는 그리스 로마 문명에 대한 향수다. 이때 ‘아카데미(academy)’라는 새로운 형태의 교육 체제가 등장한다. 아카데미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만든 교육기관, ‘아카데 메이아(Akadē meia)’에서 나온 말이다. 플라톤은 ‘아카데 메이아’를 통해 완전한 인간을 양성하고자 했다. 르네상스는 이후 유럽의 고등교육은 이 ‘아카데 메이아’를 지향했다. 현재까지도 고등교육기관과 학술단체를 아카데미(academy)라 말한다.

르네상스 시기는 새로운 기술이 발명되고 신대륙이 발견되는 등 변화가 극심했던 시기다. 화약으로 무장한 대포가 등장하면서 전투방식도 변했다. 특히 공성전의 양상이 달라졌는데, 왕과 영주들은 도시의 방어를 위해 기존 성벽을 더 튼튼하게 쌓아야 했기에 기술자들에 대한 대우가 달라졌다.

일부 길드에서 기술적으로 탁월한 인재들이 등장했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는 공성기계 기술자이자 과학자였다. 그는 다양한 분야에 왕성한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심지어 라틴어로 된 책도 읽을 수 있었다. 그가 그린 유명한 스케치인 ‘비트루비우스 인간’은 로마의 유명 건축가 비트루비우스(Marcus Vitruvius BC 1세기)의 <건축 10서>를 읽고 그린 것이다. 다빈치는 이탈리아만이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유명했다. 길드 출신이더라고 능력만 있으면 존중받는 시대가 되면서 귀족도 길드에 들어갔다. 대표적인 인물이 미켈란젤로(Michelangelo 1475-1564)다. 몰락한 귀족 출신인 그는 조각과 회화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다. 출신과 능력 덕분에 사회적 처우도 대단했다. 르네상스 인재들 덕분에 길드 출신의 건축가와 장인들은 남다른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였다.

15세기 이탈리아에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지적인 교류를 위한 ‘아카데미아’라는 학술모임이 만들어졌다. 아카데미 모임이 많아지자 이 용어의 사용은 점차 확대되었다. 예술분야에서도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 1511-1574)는 당대 유명한 예술가들과 함께 아카데미 미술학교(Accademia Del Disegno, 피렌체, 1563)를 설립했다.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메디치 가문이 이를 후원하였다. 교육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유럽 왕조들은 앞 다투어 왕립미술아카데미를 만들고 왕가를 선전할 미술가들을 양성했다. 왕립아카데미에 들어간 도제나 직인들은 출세가 보장되었다. 길드를 대체한 새로운 미술 교육 제도가 등장한 것이다.

아카데미가 등장하자 탁월한 건축과 조각, 회화는 순수 예술로 승격되었다. 작품의 주요 고객은 귀족과 성직자였다. 아카데미의 예술가들은 귀족들과 어울렸다. 비록 귀족이 될 순 없었지만 귀족의 인정과 존중을 받을 순 있었다. 아카데미는 성장을 거듭하며 길드 교육을 대체했다. 초기에는 건축과 조각, 회화에 국한되었지만 시간이 가면서 새로운 예술 분야에도 아카데미 교육이 적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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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서 바우하우스로

19세기까지 많은 길드가 아카데미와 공존했다. 직물과 가구 등의 길드는 20세기 초까지 존재했다. 도제 교육은 여전히 가장 보편적인 직업교육이었고 산업혁명을 주도한 영국에서조차 공고했다. 점차 가내수공업이 공장기계공업으로 대체되고 시장이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면서 수공업 중심의 길드 교육은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영국은 대영박람회(1851년)을 기점으로 국가적 차원에서 교육 제도를 개편할 필요성을 느꼈다.

비슷한 시기 영국의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1834-1896)는 미술공예운동을 조직했다. 그는 최초로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노동운동가이자 사상가다. 모리스는 당시 유행하던 순수미술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미술의 생활화를 주장했다. 여기서 미술의 생활화란 바로 공예를 의미했다. 그는 비록 산업자본가였지만, 공예만큼은 중세 시대의 길드를 롤모델로 삼아 수공업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동자들이 예술을 알면 ‘고통스런 노동’을 ‘즐거운 노동’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미술이 공예로 돌아가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영국만이 아니라 유럽 대륙의 예술가와 공예가에게 영감을 주었다.

당시 유럽에서는 왕립아카데미가 몰락하고 있었다. 프랑스혁명으로 귀족과 성직자 계급이 몰락하면서 예술가들은 클라이언트를 잃었고 산업혁명으로 장인들은 직장을 잃었다. 대형 길드도 소규모 작업장 수준으로 축소되었다. 국가 간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졌고 결국 1차 세계대전(1914-1919)이 발발했다. 독일과 러시아, 오스만투르크 왕조가 몰락했고 새롭게 등장한 정치세력은 새로운 시대에 부합하는 새로운 대중교육 제도를 도입했다. 아카데미와 길드도 변화가 필요했다. 미술공예운동에 의하면 아카데미와 길드는 융합되어야 했다.

사실 아카데미와 길드는 많이 달랐다. 고전예술에 있어 가장 중요한 소양은 소묘였기에 전통 아카데미는 주로 소묘를 배웠다. 아카데미에서는 학년이 올라가도 계속 소묘를 반복한다. 즉 아카데미의 교육은 소묘의 기량을 늘리는 과정이었다. 반면 길드는 소묘를 크게 강조하지 않았다. 소묘 외에도 배울 것이 많았다. 자신이 만들 공예품의 모든 것을 알아야만 했다. 고전예술 중요한 소양이 하나 더 있다면 원근법이다. 이 또한 인상파의 등장으로 부정되었다. 세잔과 피카소는 하나의 초점이 아니라 다양한 초점으로 그림을 그렸고, 원근법이 모호한 표현주의 미술이 현실을 더욱 잘 재현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 학교가 독일의 ‘바우하우스(Bauhaus)’이다. 바우하우스 선언문에도 언급되었듯 바우하우스는 모리스의 미술공예운동을 계승한다. 바우하우스는 큰 틀에서 학교 형식은 아카데미였지만 내용적으론 길드였다. 교육 과정에선 길드의 시스템을 수용했다. 길드에 처음 들어온 어린 도제는 아주 기초적인 것들을 배운다. 반드시 배워야하는 공통과정을 지나면 다양한 매체 기술을 배운다. 각 매체를 배우려면 마스터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이렇듯 길드 교육은 공통의 기초교육과 특수한 매체교육으로 구분되었고 기초와 매체를 가르치는 마스터가 구분되어 있었다.

바우하우스도 마찬가지다. 입학하면 처음 6개월간 기초교육을 받는다. 기초교육 후 매체 교육이 진행된다. 자신이 원하는 매체를 배우려면 마스터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각 매체의 마스터에게 약 3년 정도의 교육을 받으면 졸업을 하게 되어 직인 인증을 받는다. 졸업 후 더 많은 공부를 하면 마스터(마이스터)가 될 수 있었다. 교육 내용도 아카데미와도 달랐다. 바우하우스 기초교육에는 소묘가 없었다. 기계식 대량생산에 맞는 제품을 계획함에 있어 소묘 능력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소묘 대신 사물의 본질을 추상적 형태와 원색으로 분류하고 이를 시각적 언어로 치환해 소통하는 방식을 익혔다. 이렇듯 바우하우스는 전통 아카데미 교육 방식을 철저하게 부정했다. 바우하우스의 교사들 대부분 혁명과 이념의 영향을 받은 모더니스트였고, 이런 태도는 교육 내용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독일의 바우하우스는 1933년 문을 닫았지만 사라지진 않았다. 바우하우스 교사들 상당수가 미국으로 갔다. 바우하우스를 모방한 교육과정이 미국의 종합대학에 적용되었고 시카고에는 제2의 바우하우스를 표방한 학교가 설립되었다. 하지만 미국 바우하우스는 독일 바우하우스와는 달랐다. 독일 바우하우스에는 혁명과 이념이 있었다. 혁명은 미술공예의 클라이언트를 소수의 귀족이 아닌 다수의 대중으로 바꾸었다. 나아가 예술가와 공예가의 수직적 관계를 수평적 관계로 되돌렸다. 이를 공동체의 새로운 이념으로 여겼다. 혁명과 이념은 바우하우스에서 모더니즘 양식으로 재탄생했다. 이런 혁명적 양식은 미국에서 자본과 타협한다. 디자인의 수식어는 ‘혁명’에서 ‘산업’으로 바뀌었고 ‘이념’은 ‘스타일’이 되어 상품 경쟁력의 수단이 되었다. 바우하우스의 교육 시스템이 대학에 수용되면서 값싸고 질 높은 표준 디자이너를 대량생산했다. 상품 생산의 규격화 표준화가 인간에게도 적용된 것이다. 대량생산된 디자이너들은 시장에서 잘 팔릴만한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바우하우스에서 디자인대학으로

정리하면 중세 중반에 등장한 조합형 대학은 르네상스를 거치며 아카데미의 한 유형으로 여겨졌다.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아카데미를 지향하면서 아카데미는 다양한 영역의 고등교육을 통칭하게 되었다. 18~19세기 혁명 이후 아카데미는 길드의 직업교육까지 확대되면서 바우하우스가 탄생했다. 디자인 교육은 독일 바우하우스에서 비롯되었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미국의 대학으로 전해진다. 이제 디자인을 배우려면 대학에 가야만 한다.

20세기 이후 대학은 유일한 연구 및 교육 기관으로 성장했다. 대학은 크게 하나의 전공만 있는 단과대학(college)과 다양한 전공이 함께 있는 종합대학(university)로 나뉜다. 서양 아카데미와 길드의 전통은 ‘콜리지(college)’에 어느 정도 남아있다. ‘유니버시티(university)’는 ‘우니베르시타스(UNIVERSITAS)’라는 라틴어로 학생과 교사로 구성된 학문적 조합을 의미한 중세대학의 이름에서 따온 말이다.

다시 한국으로 와보자. 20세기 초 동양에 디자인 교육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본에는 바우하우스 출신들도 꽤 있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유학한 한국 청년들도 나름대로 디자인을 알고 있었다. 다만 동양은 미술공예운동과 같은 예술가와 공예가들의 자발적인 민중운동이 아닌 처음부터 국가 지배세력이 주도하는 위로부터의 개혁적 성격이 강했다. 게다가 공예전통이 워낙 강한 탓에 ‘미술의 공예화’가 아닌 ‘공예의 미술화’로 역행하는 경향도 있었다.

한국의 디자인교육은 해방 직후 시작되었다. 동경제국대학이 서울대학교로 재편되면서 미술대학에 응용미술학과가 생겼다. 응용미술학과의 교수들은 일본이나 미국 유학 경험이 있는 분들이 초빙되었다. 초기 디자인은 전통 공예 성격이 강했다. 국가 정책이 수출중심으로 기울면서 디자인은 수출을 위한 포장 개념으로 여겨졌다. 국가가 수출용 포장디자인을 진흥하자 한국의 산업디자인은 급격히 성장했다. 더불어 대학의 응용미술학과도 크게 확대되었다. 종합대학들은 앞 다투어 디자인대학을 신설했다. 미술대학에 소속되었던 응용미술전공은 디자인대학이 되고 다시 여러 전공으로 분화되었다. 이렇듯 디자인 교육은 대학을 중심으로 크게 확대되었고 현재 예체능계 졸업생 5만명 중 디자인 전공자가 무려 2만5000명이다. 디자인이 이 시대 예체능의 50%를 차지하는 셈이다.

내용을 들여다보자. 필자는 90년대 말 시각디자인학과를 다녔다. 당시 다른 대학들은 학부제로 전환하고 있었다. 국민대 조형대학 정시화 교수는 아직 학부제 준비가 미흡하다며 여전히 학과제를 고집했다. 정시화 교수의 판단은 적확했다. 시간이 지나자 학부제를 시행하던 많은 디자인 대학들이 다시 학과제로 되돌리는 경향이 생겼다. 후일 학부제를 다녔던 다른 대학 출신 디자이너는 ‘자신은 학부제가 시작되고 입학했는데 1~2학년 동안 거의 배운 것이 없다’고 회고했다.

학부제 시도는 이때가 처음이 아니다. 1981년 홍익대는 실험대학이란 명목으로 계열별 모집을 했다. 미술계열로 입학을 하면 2년 동안 공통과목을 배우고 3학년부터 순수미술과 디자인, 공예로 전공을 구분했다고 한다. 디자인계열로 들어와 시각, 공업, 의상, 공예 등으로 구분되는 디자인 학부제와 거의 유사했다. 수업 내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1~2학년은 미술과 디자인, 공예를 포괄하는 기초교육을 받는 것이 상식일 터인데 학교의 교수들은 그런 기초교육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각 전공을 약간씩 맛보는 수업이 진행되었다. 현재의 학부제 수업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예나 지금이나 학부제를 통해 기초교육 과정을 만들었지만 실상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마르크스는 역사의 반복을 언급하며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온다고 말했다.(2) 디자인 학부제도 마찬가지다. 첫 실험은 비극으로 끝났지만 두 번째 실험은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이 희극은 한국 디자인 교육의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희극이 왔다고 비극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디자인 비극도 마찬가지다. 거리에는 수많은 디자인학원이 있지만 대부분 컴퓨터 툴(tool)만 강의할 뿐 디자인이 무엇인지 알려주진 않는다. 컴퓨터 툴은 ‘디자인’이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목적을 모르면 수단을 배워도 아무 소용이 없다. 가령 무엇을 만들어야 할 지 모르는 상황에서 망치와 톱을 아무리 잘 다뤄봐야 무슨 소용인가.

디자인학원은 ‘진정 디자인이란 무엇인지’ 배우고자 하는 분들을 만족시키기 못한다. 디자인을 제대로 배우려면 디자인 길드에 소속되어야 한다. 현재로서 디자인 길드는 대학이 유일하다. 대학이 디자인교육을 독점했기에 디자인을 배우고자하는 사람은 반드시 대학에 들어가야만 한다. 그 과정은 번거롭고 치열하다. 입시미술을 배우고 수능을 공부해야만 한다. 그럼 이런 과정은 디자인을 배우는데 도움이 될까. 안타깝게도 별반 도움이 안 된다. 즉 디자인의 기초교육으로서 적절치 않다. 그럼에도 제도상 디자인을 배우기 위해 이 과정을 거쳐야 한다.

대학에 들어와도 문제다. 대학은 디자인의 기초교육조차 여전히 합의를 못하고 있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바우하우스에서 단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아이 바우하우스만도 못한 대학이 태반이다. 디자인대학은 디자인의 기초과정조차 모르고 디자인학원은 툴만을 가르친다면 과연 우리는 어디서 디자인을 배워야 할까. 이런 상황은 희극일까 비극일까.


디자인대학 이후

현대의 교육 제도는 보편적 기초교육에서 시작해서 특정 분야의 전문가를 양성하는 방향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편적 기초교육에서 전문적 매체교육으로 나아가는 바우하우스 교육 구조와 비슷하다. 원형구조로 그려진 바우하우스의 교육과정은 실제로는 원뿔형이다. 원 가장자리에 기초교육과정이 있고 안쪽에 매체들이 있다. 그리고 중심에는 마스터가 있다. 이를 원뿔형태의 3차원으로 보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과정이 보인다. 많은 도제들과 선택받은 직인들 그리고 소수의 마스터가 있는 피라미드 구조다. 중세 세상이 그랬듯 길드의 구조도 피라미드였다. 지구는 둥글지만 세상은 과거나 지금이나 늘 피라미드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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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으로 계급이 타파되고 사회적 기회가 균등해지면서 교육에 있어서도 피라미드 구조도 깨지는 듯 싶었다. 차기준이 원하는 것처럼 세상을 둥글게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내용만 바뀌었을 뿐 세상의 피라미드 구조는 여전히 공고했다. 새로운 귀족 계급인 자본가가 등장하고, 전쟁과 식민지로 선진국과 후진국이 결정되고, 대학에 서열이 매겨졌다. 평등한 기회를 보장하겠다며 보편교육을 약속했지만 학교 내에선 성적경쟁을 조장했다. 여전히 승리는 소수의 몫이었다. 앞에서는 평등을 말하지만 뒤에서는 차별을 조장하는 모순된 상황이 만들어진 셈이다.

사실 현대 보편교육이 낳은 경쟁은 과거보다 더 비참하다. 과거에는 다양한 고등교육 시스템이 존재했기에 다종다양한 피라미드가 있었지만 현재는 거대한 하나의 피라미드만 존재한다. 계급별 계층별 다양성도 사라졌기에 교육의 선택권조차 상실된 것이다. 오로지 승자와 패자만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SKY캐슬의 부모들의 몸부림이 이해 못하는 바가 아니다. 그들은 수십년간 이런 구조 속에 살면서 어떻게 하면 생존할 수 있는지 체득했다. 당연히 사랑하는 자식들도 이런 현실을 즉시하길 바란다.

반면 아이들은 부모세대의 현실이 아닌 자신들의 현실을 살아간다. 그들은 대학교육이 형편없음을 경험했고, 좋은 대학의 졸업장이 무용지물인 사회를 목도하고 있다. 기존의 직업이 사라지고, 살아남은 직업조차 위기다. 상상도 못했던 직업군이 생기고 교육에서 패배하거나 소외되었던 사람들의 성공 사례가 이어진다. 과거와 현재가 단절되었고 미래는 불투명한 상황에서 아이들은 부모가 권하는 직업에 별 감흥이 없다. 내적 동기가 없는 상황에서 거대한 피라미드를 보며 한숨만 쉴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에게 과연 어떤 미래를 말할 수 있을까.

20세기는 전문형 인재가 선호되었다. 한 분야의 전문성을 갖춰야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21세기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산업혁명의 흐름이 그랬듯 많은 분야들이 인공지능과 기계로 대체되고 있다. 디지털 세계에는 즉각적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넘쳐난다. 그래서 새로운 시대에는 특정 전문 지식보다 전체를 보는 통찰력과 판단력이 중요해졌다. 이런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려면 먼저 교육이 변해야 한다. 바우하우스처럼 넓은 기초교육에서 마스터라는 꼭지점으로 가는 피라미드 방식이 거꾸로 뒤집혀야 한다. 구조적으로 볼 때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확장되는 과정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즉 자신이 관심 있는 것에서 더 많은 관심으로, 할 수 있는 것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넓혀 나가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디자인 교육도 마찬가지다. 19~20세기가 그랬듯 21세기에도 수많은 직업이 재편되고 재평가될 것이다. 실제로 인공지능이 급격히 발달하면서 디자이너의 역할이 재조정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직업 디자이너의 미래를 낙관하기 어렵다. 안타깝게도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이제 저물고 있다. “그럼 디자인을 왜 배워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 꼬리를 문다. 디자이너 직업이 사라지고 있다고 해서 디자인도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거꾸로 디자인의 중요성은 점점 증가한다. 현대 사회에서 디자인을 아는 것은 상당히 유리하다. 이런 유불 리가 교차되는 상황에서 디자인 공부는 ‘직업’이 아니라 ‘역할’을 지향해야 한다. 컴퓨터와 인공지능의 발달로 디자인 과정이 수작업에서 디지털작업으로 전환되면서 직업적으로 좋은 디자인을 만들기 보다는 좋은 디자인을 발견하고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디자인교육은 이런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디자인이 무엇인지 알고, 디자이너로서 역할을 하고, 좋은 디자인을 판단할 수 있는 디자인통찰력을 길러야 한다. 이를 디자인 분야에서는 ‘아트디렉터’라고 말한다. 아트디렉터는 실제 작업은 하지 않더라도 디자인이 어떻게 작동되고 소통되는지 알고 있다. 즉 디자인을 언어적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필자는 디자인 교육은 시각언어, 즉 시각적 사고(혹은 이미지 사고) 교육이라 말한다. 우리가 외국어를 배우듯 디자인도 새로운 소통 언어로서 접근해야 한다. 디자인을 언어로서 가르치고 배우면 ‘이미지로 말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디자인을 공부해야 한다. 그러면 직업이 아니라 ‘역할로서의 디자인’ 교육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현대 디자인 교육은 거꾸로 된 피라미드을 상상하면 된다. 디자인을 배워 마스터가 되는 꼭지점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분야로 인식의 지평을 확대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그래서 디자인 교육은 인문학이고 디자인을 공부한다는 것은 인문적 통찰력을 기르는 과정으로 플라톤의 완전한 인간을 지향해야 한다.


‘캐슬’과 ‘하우스’는 단순히 성과 집의 차이가 아니다. 계급과 평등, 즉 피라미드 세상과 둥근 지구의 차이다. 우리는 구시대적 교육 구조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에 부합되는 교육 구조와 내용을 찾아야 한다. 디자인 교육도 마찬가지다. 100년 전에 그랬고 지금도 바우하우스가 갖고 있는 위계적 구조는 여전히 문제다. 우리는 바우하우스의 교육 시스템과 구조가 아닌 혁명적으로 바꾼 교육 내용, 새로운 세상을 지향하려던 교육 공동체 이념을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 우리 안의 바우하우스로 남아야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시대에 가장 절실한 것은 고등교육의 다양화이다. 대학을 중심으로 한 고등교육의 획일화는 SKY캐슬과 같은 비극을 낳고 있다. 디자인만이 아니라 과학, 의학, 철학, 역사, 문학 등 다른 분야도 고등교육 다양화 되어야 한다. 현재 그런 시도들이 여기저기서 시작되고 있다. 고등교육이 다양해져 지금 성장하는 아이들은 대학에 선택받는 입시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교육을 선택할 수 있는 둥근 세상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주석(1) 그렇다면 대학의 현실은 어떨까? 필자는 대학에서 강의를 한지 약 10년이 넘었다. 그 시간 동안 대학은 거의 변한 게 없다. 반면 세상은 엄청나게 바뀌었다. 과거엔 대학이 세상의 변화를 주도했지만 언젠가부터 대학은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대학 전공은 급변하는 학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현실 직업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감지한 학생들은 대학 교육에 의심을 갖기 시작했고 불신에 이르게 되었다. 언론에서 연일 대학 교육의 보수성을 보도하는 상황이니 학부모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주석(2) 헤겔은 어디선가 세계사에서 막대한 중요성을 지닌 모든 사건과 인물들은 반복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은 소극(笑劇)으로 끝난다는 사실 말이다(<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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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도서

<디자인평론> 3~4호

<미술 아카데미의 역사> 니콜라스 펩스너

<모던 디자인의 선구자들> 니콜라스 펩스너

<바우하우스> 프랭크 휘트포드

<디자인학> 무카이 슈타로

<도시, 역사를 바꾸다> 조엘 코트킨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마르크스

<시각문화 교육, 방법과 실천 > 김형숙

<런던에서 온 윌리엄 모리스> 윤여경

<근대 유럽의 형성(16-18세기)> 주경철 이영림 최갑수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4 - 중세 문명과 미술> 양정무

<최범의 한국 디자인 뒤집어 보기> 경향신문 연재(2017~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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