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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Feb 01. 2018

예술적 기질

파노프스키는 르네상스 시대 투시도법을 발견한 예술가들이 17세기 과학혁명의 기반이 된 산술기하학(해석기하학)의 원조라고 평했다. 이렇듯 예술가는 본래 사회의 문제제기를 하는 역할로 전위대(아방가르드)적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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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예술을 위한 예술'을 포장하기 위해 '순수'라는 말을 쓰지만 이것은 잘못된 연결이다. 신비주의와 정신 예술이 연결된 인과관계의 오류다. 19세기 '예술을 위한 예술'은 귀족계급의 붕괴로 후원자(클라이언트)를 잃은 예술가들이 스스로 예술의 가치 판단을 시도함으로 형성된 상황을 가르킨다.(제도론) 물론 뒤샹의 기지로 제도론은 박살나고 예술 판단의 주체는 평론가에서 다시 구매자로 넘어갔다. 대중예술=자본예술시대에 평론가는 일시적 역할, 안내자-매개자의 역할일뿐 최종 가치 판단은 구매자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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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스스로 판단하는 접근은 참으로 어리석다. 물론 역사나 사회학, 정치학, 인지과학 등 관찰자(인간)와 관찰대상(인간)이 동일한 경우는 의식있는 학자들은 과학을 지향함으로서 주관성의 한계를 극복하려 한다. 보편과 객관, 관계를 아주 중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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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예술을 위한 예술'은 셀프가치판단을 호도하고 순수함 뒤로 숨으려다 뒤샹에게 들켰다. 이런 예술의 전위적 경향은 20세기와 21세기의 다른 분야들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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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학문분야가 자기들만의 성을 쌓고 그 안에서 스스로 가치판단을 하려고 한다. 외부의 시선이나 메타 비평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마치 자신들이 이익단체나 정당인듯 하나의 세력권을 만들려고 한다. 전형적인 권위주의, 엘리트주의 심하게 말해 패권주의의 한 유형이다. 이는 모두 계몽의 악한 측면, 즉 우월주의에 기인한다. 스스로의 가치기준을 최우선으로 두는 태도가 바로 우월주의의 민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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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길드는 좋은 취지의 공동체였다. 그들은 망한 이유는 독점(사적 이익)을 목적으로 카르텔을 형성하면서 신뢰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계몽주의도 인간의 완전성, 인격과 교양의 도야를 가치로 내건 좋은 취지의 운동이었다. 그런데 계몽주의는 신비주의에 승리한 뒤 우월감에 빠져 '계몽을 위한 계몽'에 빠져 전통과 단절되었고 많은 이들을 희생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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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와 엘리트주의는 보는 방향이 다르다. 엘리트는 앞을 본다. 때론 자기 반성을 위해 뒤를 보지만 보통은 전위적인 역할, 모범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 스스로를 독려한다. 미리 경험하고 옳고 그름을 가려 좋은 것은 장려하고 나쁜 것을 배척한다. 지금 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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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엘리트주의는 안주하는 엘리트이다. 앞을 보지 않고 돌아온 뒤만 바라보며 남의 잘못만을 지적하고 타박한다. 스스로 변하기 보다는 상대가 변하기를 원하고, 스스로의 성안에서 위계질서가 주는 안락함만을 고수하려 한다. 성벽을 허무는 이들에게는 험악한 경고를 할뿐 그 이유를 묻거나 대화하려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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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에는 예술이 결여되어 있다. 문제의식, 질문, 전위가 없다. 도전과 모범도 찾기 드물다. 멘토는 위로나 타박만 할뿐 방향을 제시하지 않는다. 지난 몇백년의 고행, 20세기의 패배감, 최근의 불황 때문에 지친 것일까. 아니면 세계사적인 분위기에 편승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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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은 게으르다. 특히 움직이는 생명일수록 그렇다. 동물은 목이 마르거나 배가 고파야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거꾸로 움직이지 않으면 생명은 의미없다. 불안정하고 움직일때 비로소 생명의 가치가 돋는다. 이 상황에서 예술과 엘리트는 움직임의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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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록 문제를 해결하는 디자이너지만 지금 우리 시대에 가장 중요한 역할은 예술적 기질이란 생각이다. 예술을 위한 예술은 예술가들이 돌파했다. 스스로 권위를 평론가와 구매자에게 양도했다. 벽을 허물고 생활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럼으로서 예술 분야는 소수가 되었지만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는 보편가치가 되었다. 전위적 예술의 변화를 목격하며 우리 시대가 가야할 방향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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