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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Jun 29. 2017

옥자 그리고 이름

<옥자> 감상평

옥자를 봤다. 환경영화제에서 볼 법한 주제를 다루었다. 이 영화는 여러가지 의미를 담지하고 있지만, 내 감상은 이렇다. 이름 있는 돼지 '옥자'와 이름 없는 돼지들, 이 둘의 운명은 너무나 다르다. 생존이냐 죽음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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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유로 도살을 면한 동물들이 오는 농장이 있다. 그 농장의 동물들은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동물들이다. 농장 사람들이 농장에 온 소나 돼지에게 가장 처음 하는 일이 바로 '이름'을 지어주기다. 이름이 생기면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인간'이 아니라 '영희'나 '철수'가 되는 것이다. '인간'은 무색무취로 감각적 의미가 없지만, '영희'와 '철수'는 어떤 느낌이 생긴다. 이름이 주는 어떤 느낌이 부여된다. 만약 도살장에서 살아 돌아온 돼지에게 '카이사르'라는 이름이 붙여준다면, 혹은 소에게 '세종대왕'이라는 이름을 붙힌다면 어떨까. 아마 그 소를 도살한다는 것은 '단순한 소'가 아니라 '세종대왕 소'를 죽이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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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상당한 의미를 내포한다. 성은 집단을 대표하고, 명은 나를 가르킨다. 타인이 지어주는 이름은 항상 멋지다. 첫 이름은 부모님이 지어주신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 되길 바란다는 의미에서. 내 이름은 '여경'인데 어감은 다소 경쾌하지만 그 뜻은 사뭇 진지하다. '너를 공경한다'이다. '경'에는 '엄숙하다' '집중한다'는 느낌이 있어 진지하게 상대를 존중한다는 의미다. 20세가 되면, 스승이나 다른 누군가가 새로운 이름을 불러준다. 성인이 되었으니 새로운 인생을 살라는 의미일까. 아무튼 이 이름도 멋지다. 이런 이름을 대놓고 불러달라고 하는 것은 약간은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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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느 순간에 스스로 이름을 짓는다. 그 이름을 '호'라고 하는데, '불러 달라'는 의미다. 보통 호는 겸손하게 짓는다. 가장 손쉽고, 평이한 이름은 자기가 태어난 동네 이름을 붙이면 된다. 내 경우 원주시 명륜동과 개운동에서 살았는데 이런 경우 '원주' '명륜' '개운' 중에 하나를 고르면 된다. 혹은 어린 시절 영월군 금룡면 용석리에서의 의미있는 학창시절을 추억하며 '금룡'이라고 지어도 좋다. '윤 금룡' 여기서 '윤'은 집안을 대표하고, '금룡'은 나를 성장시킨 동네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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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신성하다. 그래서 사람이건 동물이건 이름이 있으면 어떤 신성함이 부여된다. 나는 여기에 환경운동이나 사회문제의 핵심이 있다고 본다. 상대를 효율적으로 제거하기 위해서 먼저 하는 행동이 '이름을 지우기'이다. '흑인' '유대인' '빨갱이' '돼지' '소'라 부르며 얼마나 많은 이름 있는 사람과 동물이 희생되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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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 나오는 이름 없는 돼지들을 보며, 이념이니 진보니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희생되었고, 희생되며, 희생될 많은 생명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 말미에 영화를 위해 노력한 이들의 이름 목록이 새롭게 보였다. 감독도 이를 의식했을까. 크레딧이 끝나고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영상이 나온다. 그렇게 영화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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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엄혹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해든 이름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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