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신타이포그래피
나는 수년간 예술과 디자인을 대립적으로 분석해왔다. 마치 아름다움이라는 동전의 양면처럼. 그 결과물로 <역사는 디자인된다> 졸저가 나왔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니 더이상 이 접근에 진전이 없다. 진전이 없으니 흥미도 잃었다. 이쯤에서 살짝 방향을 틀어야겠다는 생각이다.
-
이번에는 종속적 관계를 고려한다. 마치 러시아인형 '마트료시카' 같은 관계다. 거대한 아름다움이 있고, 그 안에 인간의 총체적 기예인 예술이 있다. 그 안에 기능적 측면의 공예가 있고, 그 안에 대량생산이 가능한 디자인이 있다. 이렇게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의 관계를 살펴볼까 싶다.
-
디자인만의 독특한 무엇이 뭘까? 고민하다가 얻은 첫번째 단서가 '타이포그래피'이다. 왜 타이포그래피일까? 생각하다가 얻은 키워드가 '기록'이다. 왜 기록일까? 이것은 상당히 복잡한 문제라 아직 키워드가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벽에 부딪치면 '개념적 작업'이 필요하단 의미다. 그렇다. 이제 둘째 아이를 낳기 위한 착상이 시작되고 있다.
-
착상을 느끼면 고민에 빠진다. 출산을 강행할 것인가, 유산시킬 것인가. 아직은 너무 초기라 판단하기 어렵다. 일단 생각을 밀고 나가다가 아니다 싶으면 빨리 접는게 상책이다. 시기를 놓치면 주화입마에 빠져 헤어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가 돌지 않으면 편견에서 허우적대가가 죽기 십상이다.
-
구석기시대, 호모 사피엔스, 네안데르탈인, 아니 훨씬 더 이전부터 인간종은 기록을 했다. 4만년전 인지혁명에 앞서 40만년전 인간은 주먹도끼를 사용했다. 150만년전 인간은 불을 사용했고, 의사소통을 했다고 한다. 이 말은 소규모라도 집단을 이루고 살았으리란 추측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기록은 언제부터 했을까?
-
타이포그래피는 여기서 시작되어야 한다. 루만은 별빛을 '읽는 행위'부터 문자의 기원을 상상한다. 이건 너무 감당하기 어렵다. 그래 '읽는 것'은 큰 그릇인 예술에 양보하고 우리는 '쓰는 것'의 보다 작은 그릇, 디자인을 살펴야 한다. 그럼 무엇에 썼을까? 신성한 동굴 벽, 그릇 등 쓸 곳이 필요하다. 이 벽과 그릇을 중간 그릇, 공예에 양보하고, 우리는 공예에 '쓰여진 장식'에 집중하자. 여기에 '타이포그래피'가 있고, '디자인'이 있다고 가정하자.
-
디자인'만'의 교육론이 있다면 그 기초는 '기록=쓰기=타이포그래피'에 핵심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디자인 교육은 '의사소통'을 위한 미학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너의 생각을 어떻게 쓸 것이냐?'라는 질문을 먼저 던져야 한다. 여기에서 시작해 공예로, 예술로, 아름다움으로 뻗어나가야 한다.
-
지금 타이포그래피는 '편집'이라는 주화입마에 빠져있다. 단언컨데 타이포그래피는 '편집디자인'이 아니다. 타이포그래피는 기록이자 소통이자 역사다. 나아가 모든 디자인의 기초요 디자인만의 독특한 인식론적 역량이다. 편집디자인이라는 편견에서 빨리 빠져나와야 타이포그래피가 살고, 디자인이 산다. 이 말은 즉 제품디자인, 의상디자인, 건축디자인, 서비스디자인 등등 모든 디자인 분야의 교육의 시작이 타이포그래피여야 한다는 의미다. 타이포그래피로 디자인이 딛을 땅, 디자인을 지탱하는 기반을 단단하게 다져야 한다. 그렇기에 타이포그래피 수업은 현재 글자와 편집디자인 중심의 수업방식이 아닌 '다른 무엇'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