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러 생각

'보편'과 '개별' 개념

by 윤여경

보편논쟁은 중세철학을 대표한다. 그래서 중세를 떠올리면 늘 보편과 개별의 차이를 생각하게 된다. 오늘도 중세 책을 뒤적이다가 보편과 개별의 개념이 무엇인지 한참을 생각했다. 운좋게도 갑자기 둘을 구분할 좋은 묘안이 떠올랐다. 디자이너다운 묘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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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단어가 개별인지 보편인지 구분하려면 그림을 그려보면 된다. 가령 바나나는 그림으로 그릴수 있다. 그래서 개별이다. 반면 과일은 특정 그림으로 그릴수 없다. 보편이다. 사람은 그릴수 있으므로 개별이고, 신은 그릴수 없으므로 보편이다. 그럼 기쁨은? 행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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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은 웃는 얼굴을 그리면 되니까 개별이고, 행복은 다양한 얼굴이 있으므로 그리기 어렵기에 보편이다. 물론 어떤 경우엔 기쁨도 보편개념이다. 보편과 개별은 상대적 개념이기에 모든 단어는 어떤 맥락에 놓이냐에 따라 보편도 되고 개별도 된다. 이렇듯 보편개념은 여러 개별 개념을 포괄하기에 다양한 표상이 공존한다. 사람마다 경험이 다르기에 행복에 대한 다양한 표상이 모두 다르다. 물론 겹치는 영역도 있겠지만 겹치지 않은 영역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행복이란 무엇인가?"처럼 보편 개념을 묻는 질문에 모두가 동의하는답을 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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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 개념은 동일 개념을 부여하기 어렵다. 디자인, 예술 등의 보편 개념들 또한 정의하기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이런 단어들은 특정 그림으로 그려낼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세 보편논쟁에 종지부를 찍은 철학자 오컴은 보편개념이란 인간의 소통 편의를 위해 만들어낸 단어라 말한다. 이를 철학에선 유명론(오직 이름뿐)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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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보편적 단어들의 개념을 정립하려는 도전 자체가 무모하다. 내가 디자인의 보편 개념을 정립하려고 노력해왔듯이. 그러나 그 도전이 전혀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비록 그 무모한 모험이 성공하지 못할지라도 도전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단어들의 개념을 경험하고 옳고그름을 분별하고, 나만의 관점으로 세상을 사유할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되도록 많은 이들이 이런 무모한 도전과 모험을 즐기길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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