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디자이너로 살아오면서 '디자인'이 무엇인지 몰랐다. '디자인'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지만 그 누구도 명쾌한 답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찾아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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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사람이니 당연히 한국디자인에서 시작했다. 답을 줄만한 눈에 띄는 단서가 별로 없었다. 한국디자인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세계디자인을 알아야했다. 유학다녀온 분들에게 세계디자인에 대해 이것저것 묻고 다녔다. 별 소득은 없었다. 거기도 한국과 딱히 다를게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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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이니 세계니 중요해지지 않았다. 그냥 '디자인'이 궁금했다. 그러려면 디자인을 둘러싼 세상을 알아야했다. 그래서 디자인-예술을 중심에 놓은 세상을 정치, 경제, 사회, 과학로 분야로 나눠 구분하고, 각 분야의 역사와 철학을 살피기 시작했다. 전문 분야를 탐색하는 현미경과 현실을 직시하는 안경을 내려놓고, 먼 세상을 살피는 망원경을 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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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는 미국 문명에 종속되어 있기에 먼저 미국 문명을 살펴야 했다. 미국 문명을 알려면 유럽 문명을 알아야 했다. 유럽 문명을 알려면 기독교와 이념을 알아야했다. 기독교를 알려면 중세로 가야한다. 그리고 로마시대를 거쳐 서아시아로 가야 한다. 이념을 알려면 역시 중세와 로마를 거쳐 고대 그리스로 가야 한다. 두 지역을 이해하려면 이집트와 지중해에 대해 알아야 한다. 이렇게 모든 것은 고구마 줄기처럼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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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역사와 철학을 공부할 수 없다. 그래서 주요 지점을 잘 짚어야 한다. 내가 짚은 지점은 고대 아테네와 서아시아의 역사, 로마말기(5세기), 중세전성기(11-13세기), 르네상스와 종교개혁기(15-16세기)였다. 이때의 역사와 철학을 통해 유럽의 근대를 이해하려고 했다. 그런데 잘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먼 역사와 철학은 그나마 읽을만하다. 그런데 근현대의 것들은 도무지 독해가 안되 영 찜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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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환기시킬겸, 다시 한국으로 왔다. 이제 미국-유럽을 봤으니 한국의 또 다른 뿌리 중국을 들여다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중국도 고구마 줄기다. 유불도를 살펴야 하는데 유교를 살피면 중국 동부가 보이고, 불교를 살피며 인도가 끌려온다. 도교는 한나라 이후 현학으로 뿌리를 내리는데 당나라때 유행하게 된다. 그런데 당나라를 살피면 이슬람이 딸려오고, 시간이 지나 몽골제국의 원나라 때도 이슬람이 큰 축을 차지한다. 그러나 아직 인도와 이슬람까지 갈 여유가 없기에 힐끔거리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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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상은 참 재밌다. 그냥 우리 상식을 그대로 문자로 써놓은 기분이다. 경전의 문구들중에 우리의 일상어들을 발견할때면 참 우리는 우리 뿌리를 너무도 모르고 산다는 생각이 든다. 기독교 100년에 앞서, 유교가 500년, 불교가 1000년이 있었다. 1500년의 뿌리가 이토록 거대한데 그걸 모르고 있었다며 탄식하곤 한다. 아무튼 동양사상이 쉽지는 않지만, 서양사상처럼 완전히 이해안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어떤 느낌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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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동양사상을 경유하다 보니, 서양의 근대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일종의 데자뷰 현상 같은 것인데... 데카르트 이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던, 근현대 철학자들의 오묘한 표현들과 언설들을 다시 되새김질 하다보면 어떤 기시감이 든다. '어디선가 본거 같은데...' 그러다 요즘은 서양근대가 철저하게 중국사상을 학습한 결과가 아닐까 하는 강한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관련 서적을 찾아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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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증거는 여럿있다. 그렇지만 서로가 서로를 잘 이해하지 못한 탓에 마구 섞여있다. 유럽의 근대는 중국 사상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이를 공부한 현대의 사상은 유럽의 근대 사상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섞이고 발효되어 무엇이 누구의 것이고, 누구의 것이 아닌지 구분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가령 '개인'과 '사회'는 철저히 유럽 근대의 특징이라 여겼는데, 공맹사상, 특히 맹자의 사상이 유럽에 소개되면서 이 개념들이 갑툭튀가 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맹자에는 이미 강력한 개인 및 공동체 개념, 공동체에 대한 신념을 가진, 역할과 책임감을 갖는 개인과 공동체의 사유가 있다. 이것이 베버의 '신념과 책임 윤리'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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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펴본 서사는 이렇다. 11세기 이후 유럽은 큰 변화를 겪었다. 먼저 약 두세기 동안 로마를 재발견한다.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면서 계몽(스스로 깨어남)이 시작된다. 그리고 몽골을 맞닥뜨린다. 약 200년간 몽골의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이 영향은 이슬람 문명을 경유해서였다. 몽골이 멸망하자, 이슬람의 영향은 더욱 거세진다. 그런데 거기에 그리스사상들이 있었다. 그렇게 로마+아테네의 재생운동(르네상스)이 일어났다. 당연히 기존 가톨릭은 반발했을 것이고, 여기에 대한 재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종교개혁과 종교전쟁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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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뿌리고 뭐고 다 소용없다고 생각할 찰라, 중국의 사상을 접하기 시작했다. 프로테스탄트와 양분하기에는 유럽이 너무 좁다고 생각했던 가톨릭의 개혁파, 예수회가 전 세계로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신대륙에는 별로 참고할게 없었다. 그냥 포교하면 될일이었다. 인도와 이슬람은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왠지 중국은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일단 종교가 없었고, 유교의 상제 개념이 기독교와 유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17세기 예수회 신부들을 중심으로 중국의 유교와 기독교를 연결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 결과 중국에 기독교가 포교되기 보다는 유럽에 중국의 유교가 포교되었다. 그렇게 두번째 '계몽'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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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8세기 유럽의 중국풍은 대단했다. 유럽의 사상가들은 자신들의 뿌리인 기독교와 이슬람을 경유한 그리스 철학 그리고 중국사상을 버무리고 섞어서 새로운 사상을 주조해낸다. 그것이 바로 근대 철학인듯 싶다. 이론적으로는 기독교+그리스철학에 가깝고, 실천적으로는 중국에 가깝다. 이렇게 빚어낸 사상들은 하나의 이념으로 응축되어 산업혁명의 날개를 달고, 강력한 무기를 앞세워 전세계에 전파된다. 중국 문화권에선 이걸 제대로 읽고 이해해 소개했다. 이들 대부분이 유학을 체득한 '선비'들이었다. 사실 위의 흐름을 보면 당연한듯 느껴진다. 자신들이 공부하던 것이었으니... 그래서 조선의 어떤 유학자는 이들의 사상을 듣고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잘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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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는 지구촌이다. 어떤 것을 이해하려면 하나만 봐서는 안된다. 이것저것 살펴야 한다. 왜냐면 서로서로 영향받고 참고하고, 표절하고 모방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디자인이나 예술을 이해하려면 두루두루 살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이런 노력이 선행되어 큰 틀에서 맥락이 잡히면 그때 현미경을 들이대도 늦지 않을듯 싶다. 공부를 하면서 자명하게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면 "나는 무식하다"는 명제다. 하면 할수록 이 생각은 더욱 강력해진다. 허기진 배를 채우듯 하는 공부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그냥 평생 먹어야 하는 것이 공부인듯 싶다. 어짜피 끝나지 않을 것, 조급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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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버둥댈수록 더 빠지는 늪과 같다. 초심으로 돌아가 '디자인이 뭐지?'라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면... 가만히 있다가 "에이 모르겠다. 책이나 읽어야겠다" 이런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