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여경 Dec 30. 2018

퍼스의 범주

이윤희의 <찰스 샌더스 퍼스>를 틈틈히 읽는다. 아주 짧은 책인데 밀도가 너무 높아서 한 시간에 10페이지도 채 넘기지 못한다.

-

무엇보다 그가 다루는 학문의 범위가 워낙 방대해서 그의 범주론을 추적해서 하나씩 꼼꼼히 정리하면서 가야 한다. 그 또한 이 작업을 가장 중요시 여겼다는 생각이다. 복잡한 책상이 있다면 어떤 서랍에 무엇이 있는줄 알아야 꺼내 쓸수 있듯이 그에게 범주는 아주 중요한 문제였던듯 싶다. 

-

퍼스는 실용주의의 아버지로 통한다. 난 늘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는 사변적인 철학을 삶을 살아가는 사유의 동력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둔스 스코투스, 칸트와 콩트 등에 영향을 받았는데 이들 또한 사변을 넘어 실질적인 삶의 문제를 고민했다. 

-

퍼스는 특히 경험을 중심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경험의 경험, 즉 메타경험을 중요시 여겼다. 그래서 그의 사상은 대부분 경험의 기반위에 서 있다. 그의 사상을 이은 교육 사상가 존 듀이 또한 경험을 중시하는데 그의 주요 저작인 <경험으로서의 예술>을 보면 삶에서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수 있다. 

-

퍼스를 읽으며 또 한명의 사상가가 떠오르는데 바로 <사회의 사회> 저자 니클라스 루만이다. 과거 이 책을 겉핥듯 읽은 적이 있는데 퍼스와 루만이 유사하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다학제적 접근과 체계를 이론화 했다는 점도 그렇고 경험을 중시한 점, 관찰과 가설적 추리 등 과학적 접근을 방법론으로 삼는다는 점도 그렇다. 왠지 성격도 비슷할듯 싶다. 

-

짧은 전기를 읽으면서 퍼스가 성격이 괴팍하고 대인 관계가 그렇게 좋지 않았다는 느낌이 있는데, 나는 루만에 대한 글을 읽을때도 그런 느낌이었다. 그는 토론할때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며 상당히 비판조로 말하곤 했다는데... 이런 특징들은 자폐증 경향이 있다는 말이다. 비트겐슈타인 전기를 읽으면서도 그런 느낌이었는데 아무래도 수학과 체계, 기호 등에 관심이 많았던 천재들 대부분이 그런 경향성이 있지 않았을까. 

-

그런 점에서 마르크스는 상당히 특이하다. 자본주의를 분석한 방대한 체계 이론에도 불구하고 그의 전기를 읽다보면 대인관계가 대체로 좋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사랑의 기술>의 저자 에히리 프롬은 그의 사랑 기술을 극찬한다. 특히 아버지로서의 사랑 기술을. 맑스는 천재는 노력으로도 가능하다는 희망을 주는 사상가다.

-

아무튼 나는 이 자폐증 환자의 사상을 쫓기 위해 열심히 줄을 긋고 정리를 하면서 읽기를 이어가는데 정말 숨차고 벅차다. 그 증거 사진을 두장 소개한다. 퍼스는 디자인이론에 가장 중요한 사상가라 혹시 관심있은 분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매거진의 이전글 왜 우리는 검은 옷만 입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