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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Sep 13. 2019

대화 디자인

몇학기째 대학원에서 논문 지도 수업을 맡고 있는데 이번 학기에는 좀 새로운 시도를 한다. 서로 반말로 수업을 진행한다. 문제는 학생들의 나이대다. 나이가 적을수록 반말에 친숙하고, 많을수록 어색해한다. 8명중 6명은 서로 반말로 대화하는데, 나머지 2명은 뻘쭘해하며 존댓말을 한다. 하지만 둘 모두 곧 익숙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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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디자인캠프에서 이성민 샘의 특강을 듣고 "대화에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이해했다. 그 원고는 내 타임라인에 공유되어 있으니 궁금은 분은 찾아 읽어보길 바란다. 아무튼 그동안 나는 존비어체계의 문제점을 알았지만, 또 성민 샘이 줄곧 주장했지만 이걸 디자인으로 해결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특강을 듣고나서야 비로소 그 의미를 어렴풋이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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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교육에 있어 대화 디자인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의 특성에 맞게 존어와 반말을 적절히 배치해야 한다. 가령 강의형 수업과 발표형 수업은 존댓말이 적합하다. 강의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고, 발표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이때는 서로 삼가하고 경청해야 한다. 질문을 할때도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 반면 토론형 수업과 아이디어를 내는 프로젝트 수업은 반말이 좋다. 삼가함이 없는 격없는 대화가 오가야 좋은 의견과 아이디어가 나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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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수업은 아이디어를 내는 프로젝트형 수업이다. 고민할 것 없이 반말을 제안했다. 아직은 어색하지만 첫 수업의 대화는 좋았다. 지난 학기보다 훨씬 대화가 부드러워진 기분이다. 결과가 좋을진 알 수 없지만, 과정은 아주 신선하다. 새로운 시도가 이들에게 좋은 경험을 선사할 거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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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회에는 격조있는 언어와 친숙한 언어가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너무 격조있는 언어로 편향되어 있다. 그래서 위계질서가 강하고 권위주의가 익숙하다. 의식있는 시민단체에서 이를 바꾸려고 별칭을 부르고 직급을 없애는 시도를 하지만 실효성이 의심된다. 언어가 문제라면 바로 언어를 바꿔야 한다. 존어가 아닌 반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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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반말만이 능사는 아니다.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존어와 반말을 배치해야 한다. 나는 이게 대화 디자인이란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나는 수업만이 아니라 여러 관계에서 대화 디자인을 확대 실천할 계획이다. 가령 추석때 부모님께 반말을 쓸 것이다. 어릴적 친숙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이런식으로 편견에 사로 잡히지 말고 내 안에 기울어진 언어 운동장과 관계들을 바로 잡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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