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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Dec 23. 2019

디자인과 글쓰기

이번학기 '디자인과 글쓰기' 수업은 '디자인'과 '글쓰기'를 어떻게 연결시킬지가 관건이었다. 처음에는 미술사를 생각했다. 예술과 역사를 알면 풍부한 교양이 생겨 저절로 글쓰기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을 거듭하면서 이 계획이 의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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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디자인을 공부함에 있어 미술사를 아는 것은 엄청나게 중요하고 유효하다.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역할과 책임, 역사적 사명이 무엇인지 자연스레 알게 되니까. 하지만 디자인과 글쓰기에도 도움이 될까... 그래서 급히 수업계획을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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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시작할 당시 나는 은유에 빠져 있었다. 흔히들 생각하는 장식적인 은유가 아닌 언어의 본질적 속성으로서의 은유에 관심을 두었다. 사실 우리 언어는 대부분 경험에 근거한 은유로 구성된다. 앞뒤, 안밖, 위아래 등 몸에 기초한 경험과 생활속에서 겪는 신체경험들은 언어의 기초가 된다. 가령 "내 안에 너 있다" 같은 느끼한 표현은 "안과 밖"이라는 신체적 경험을 공유해야 상호 이해와 소통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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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추상적 단어를 설명할때 은유를 많이 사용한다. "디자인은 사랑이다"라는 말은 추상적인 단어로 추상적인 단어를 설명하기에 모호하고 어렵다. 이런 은유는 나쁜 사례다. 반면 "디자인은 요리다"는 뭔가 느낌이 온다. 특히 요리를 좋아하고 해본 사람이라면 금방 디자인을 요리의 경험 구조로 이해하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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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몸에 기초한 은유 언어학은 기초적인 언어만이 아니라 구조적인 언어, 언어의 이해와 소통이라는 속성에 큰 통찰을 준다. 나는 이 통찰을 학생들과 공유하고, 학생들이 은유를 이해함으로서 글쓰기만이 아니라 디자인을 더 잘 할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즉 디자인과 글쓰기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이해와 소통을 위한 공통의 도구이자 과정이라면 은유를 통해 이미지언어와 문자언어를 동시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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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소통을 위한 시각 디자인 기초는 '타이포그래피'에 그 핵심이 들어있다. 보통 사람들은 타이포그래피가 글자를 그리고 글꼴을 만드는 것으로 이해하는데 엄밀히 말해 타이포그래피라기 보다는 타입페이스디자인이라 불러야 한다. 타이포그래피의 본래 역할은 소통이기에 글자를 다루는 영역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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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를 다루는 것은 글꼴을 고르고 배치하고 인쇄하는 영역이다. 이때 작은 글자와 큰 글자에 따라 다루는 방식이 달라지는데 작은 글자 다루기를 마이크로 타이포그래피, 큰 글자 다루기를 매크로 타이포그래피라 말한다. 마이크로 타이포그래피는 본문 같은 작은 글자를 다루기에 행간과 자간, 그리드 등을 중요하게 다룬다. 매크로 타이포그래피는 포스터와 간판처럼 눈에 확 띄는 큰 글자를 다루기에 디테일한 배치보다는 이미지성을 중요시한다. 즉 큰 글자가 마치 그림처럼 여겨져 문자가 은유적인 속성을 띄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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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를 이미지적으로 잘 다루면 이해와 소통이 잘되서 사람들이 좋아한다. 보통 타이포그래피를 배울때 이미지화된 문자를 선호하는 것이 그 때문이다. 사실 타이포그래피는 매크로보다 마이크로가 더 중요한데 이를 잘 가르치는 교사와 학교는 흔치 않다. 그래서 대부분은 주로 매크로 타이포그래피를 다루고 배운다. 그런데 이조차 그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채 레퍼런스 몇개를 참고해 모방하기 급급하다. 그래서 학생들은 늘 뭔가 허전해한다. 원리를 모르고 시키는대로 따라만 하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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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영 샘은 인간의 언어를 신호와 문장으로 나누어 인간은 신호놀이와 문장놀이로 소통하고 즐긴다고 말한다. 여기서 신호=시그널은 인덱스나 아이콘 같은 즉각적 이해가 가능한 이미지를 말한다. 디자이너는 이 신호놀이=이미지놀이에 능한데 문장놀이는 약하다고 스스로를 폄하한다. 쉽게말해 디자인을 할 줄 알지만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토로한다. 이는 원리를 모르고 디자인을 배우고 하는데서 온 부정적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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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학교에서 제대로된 디자인 교육을 실천하면서 디자이너는 대체로 글을 잘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았는데 기본적으로 디자이너는 상대방과의 소통을 중시한다. 디자인 수업과 실습 과정이서 늘 상호적으로 의견을 주고 받는데 덕분에 메타인지 상태에 익숙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스스로를 이미지에 가둬 자폐적 상황을 초래하면서 글쓰기와 멀어졌다. 그런데 디자인학교에 들어와 글쓰기수업을 받고 글쓰기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편견을 걷어내니 모두들 서로의 글에 감탄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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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학교는 은유를 디자인의 담론으로 삼으면서 수업의 기법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학생들은 은유를 이해하면서 글쓰기만이 아니라 디자인에 대한 자신감이 높아졌다. 나는 이를 대학 수업에 적용했고 약간의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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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과 글쓰기 수업 마지막 시간에 수업에 대한 소감을 공유하면서 몇몇 학생이 이런 나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고 대답해 주었다. 자신이 디자인을 할때 왜 이렇게 하는 것이지 잘 이해하지 못해 곤란했는데 그 점이 다소 해소되었다며. 나는 너무 반갑고 고마웠다. "이제야 제대로된 디자인과 글쓰기 수업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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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인줄 알았는데 속았다는 학생도 있었다. 나도 아쉽지만 시공간적 한계 때문에 선택을 해야만 했다. 물론 별로 배운게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타과 학생이었는데 그 친구는 이미 문장놀이가 익숙했기에 이미지놀이가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수업선택이 잘못되었다. 의견을 말하지 않은 다른 친구들도 있다. 나중에 수업평가때 익명으로 실날한 비판을 가할지도 모른다. 이번만큼은 왠지 그 비판이 궁금하다. 제대로된 비판은 수정을 불러오니까. 첫 은유글쓰기 수업이었던만큼 부족한 점이 많았기에 수정할 점도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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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학교와 디자인과 글쓰기수업을 통해 디자인을 잘 하려면 글쓰기를 잘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즉 이미지놀이에 앞서 문장놀이를 해야한다. 그러려면 은유를 위한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 경험은 일종의 신체놀이다. 즉 다양한 것을 많이 해보는 경험이 중요하다. 이렇게 경험적 은유가 쌓이면서 더 풍부한 문장놀이가 가능해지고 더 다양한 이미지놀이가 이뤄지면서 우리의 관계도 풍성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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