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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Dec 22. 2019

표현과 재현

어제 디자인과 글쓰기 수업을 마무리하며 말과 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말은 표현이고 글을 재현이다. 표현은 떠오르는 것이고 재현은 보거나 들은 것이다. 표현은 마음껏 할 수 있지만 재현은 보고들은 것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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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하는 순간 확신을 갖고, 글은 쓰는 순간 의심을 갖는다. 말은 순간적이기에 증발되고, 글은 오래오래 남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통할때 글에 비중을 둔다. 그래서 증명이나 계약을 진행할때는 항상 기록된 것을 중시하고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글을 잘쓰는 사람을 존중한다. 말보다 글의 파급력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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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예술 장르가 표현과 재현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크게 보아 춤과 노래 같은 음악장르는 표현적이고 건축과 조형미술장르는 재현적이다. 20세기 이후 미술장르에 표현주의가 등장해 지금까지 미술은 대혼란이다. 물론 춤에도 표현과 재현이 있다. 자유로운 현대무용은 표현에 가깝고, 전통춤이나 발레는 재현에 가깝다. 재현에 가까운 예술은 먼저 형식을 배워야 하기에 교육이 가능한데, 표현에 가까운 예술은 교육이 곤란하다. 마치 말은 딱히 배우지 않아도 되지만 글은 왠지 배워야 하는 것으로 느껴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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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양식은 크게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나뉜다. 모더니즘은 기능이 중요해서 형태가 기능을 재현한다. 형태만 보면 기능을 짐작 할 수 있어야 하기에 색과 모양이 단순하고 소박하다. 반면 포스트모더니즘은 기능보다는 형태가 중요해서 표현적이다. 생각나는대로 마구마구 말하듯 기능과 상관없이 맘껏 표현해도 된다. 반면 모더니즘은 늘 기능을 염두하고 형태를 고려하기에 마치 글을 쓰는 것 같다. 그래서 디자인 포스트모더니스트는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디자인 모더니스트는 조심스럽고 완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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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디자인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지배한다. 완고한 재현보다는 자유로운 표현이 중시되고 글보다는 말이 선호된다. 그래서 다양성이 풍부하고 변화무쌍하며 소통 속도도 빠르다. 그러나 단점도 있다. 표현은 소비되고 증발되기에 오래가지 못한다. 디자인은 서비스나 제품에 주로 적용되는데 지나치게 표현적인 상품은 쉽게 버려져 쓰레기가 된다. 이렇게 쌓인 쓰레기는 하나의 대륙을 형성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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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거의 디자인 담론처럼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중 무엇이 옳고그르냐를 따지고 싶지 않다. 중요한 것은 상황과 맥락에 맞는 적절함이다. 상품을 만들때는 재현적 모더니즘 접근이 끌린다. 반면 소통할때는 표현적 포스트모더니즘이 끌린다. 그래서 디자인을 공부할때는 두가지를 모두 섭렵해야 한다. 그래야 두 양식을 상황에 맞게 적절히 적용할 수 있으니까. 결국 중용도 능력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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