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스캐리에게 배운 아름다움은 정의로운 분배, 즉 공정한 균형감이다. 우리는 어떤 아름다운 대상이 익숙해져 가면서 아름다움의 상실을 느낀다. 동시에 어떤 새로운 대상을 발견하면서 아름다움을 획득한다. 이는 이곳이서 저곳으로 가는 것이다. 둘이 균형을 이루어야 삶의 동력이 생긴다. 만약 전자가 진행되는데 후자가 진행되지 않을 경우 엄청난 상실감에 빠지고, 전자가 진행되지 않은채 후자가 진행되는 경우 엄청난 혼란에 빠진다. 비워야 채워지듯 상실해야 획득한다. 그래서 나는 인간의 망각에 늘 감사해한다.
-
최근 한국어 '아름다움'이 어떤 개체가 본보기가 된 상태라는 걸 알았다. 이 개념이 이성민 샘이 스캐리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의 본질, "다시 보고 싶은 것"과 다르지 않음에 기뻤다. 뭔가 아름다움의 본질을 본 기분이랄까. 이젠 더 이상 아름다움이 궁금하지 않다. 그저 아름다운 대상이 그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