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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Dec 26. 2019

한국어를 공부하자

어제 이성민 샘과 통화하면서 최봉영 샘의 한국어 연구가 마치 독일어에 있어 하이데거가 했던 것과 유사하다고 말하셨다. 나는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지만 상당히 의미 있다는 느낌은 확실하다. 이성민 샘은 '현존재'를 예로 들었다. 그래서 나는 통화 후 하이데거의 '현존재'를 검색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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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의 철학에서, 자기를 인간으로서 이해하고 있는 주체로서의 존재자를 이르는 말. 사물이나 도구 따위의 존재와는 달리, 원래 자유로운 실존으로서 세계 안에서 존재함을 이르는데, 실존 철학에서는 보통 인간을 이르는 말로 쓰기도 한다." [네이버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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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읽어보면 현존재란 "살아있는 인간이면서 본인이 인간이라고 인식하는 존재"라고 말하는듯 싶다. 이를 독일어로는 Dasein이고 영어로 Being-there라 말한다. 독일어는 잘 모르겠고 영어를 직역하면 "저기에 있음" "그곳에 있는" 정도이고, 최봉영 샘의 지적처럼 Being을 '것'으로 번역하면 '저것' '그것'으로도 번역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게 왜 인간이지? 아마도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에서 현존재를 인간으로 염두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저것' '그것'은 살아있는 인간이다. 그렇다면 현존재는 살아있는 상태의 '저 사람' '그 사람''이 적합하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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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방금 '저 사람' '그 사람'을 말하면서 '이'와 '저' 그리고 '그'의 차이를 인식했다. '이'는 나와 가깝고 '저'는 나의 대상이다. 그리고 '그'는 '이'와 '저'의 상위보편개념이다. '사람'은 '살려서 살아가는 일을 하는 어떤 것'이라는 의미를 인식했다. 즉 '저 사람'과 '그 사람'의 의미 차이가 있고, '저 사람' 보다는 '그 사람'이 훨씬 보편적인 의미의 사람이다. 그래서 '그 사람'은 한자어로 보편적인 사람을 의미하는 '인간人間'이라고 번역해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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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위처럼 세밀하게 교착어를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요즘 최봉영 샘의 글을 읽어서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내가 쓰는 이 말의 의미를 어느정도 의식하고 있다. 가령 '나'는 어딘선가 나오는 느낌이고, '내'는 나로부터 무언가 나오는 느낌을 의식한다. 이렇듯 최근 나는 한국어를 사용하면서 한국어의 의미를 메타적으로 사유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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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토록 어려운 현존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신기한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는 굴절어인 독어와 영어를 한국어로 해석하면서 고립어인 중국한자를 사용한다. 즉 Being-there를 現存在로 번역한다. 그리고 이를 다시 교착어인 한국어로 옮기는데 이 과정에서 큰 충돌이 발생한다. 영어에서 한자어로 옮기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은데 왜 한국어로 옮길때 충돌이 발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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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우리가 한국어를 제대로 몰라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즉 우리가 문해력이 떨어진 이유가 어쩌면 우리가 가장 모르는 언어는 굴절어나 고립어가 아니라 우리가 늘상 사용하는 교착어가 아닐까. 이는 생소한 외국어를 덜 생소한 외국어로 번역하면서도 한국어에는 이르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러니 어려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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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자를 공부하는데 꼬박 3년이 걸렸다. 3년동안 약 3000자 정도를 외웠는데 다시 3년이 지나니 500자 정도밖에 생각이 안난다. 쓸줄 아는건 훨씬 더 적을 것이다. 그래도 사전을 보거나 형태를 보면 대강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이다. 이 바쁜 시절에 과연 누가 3년정도 공을 들여 한자를 공부할까. 한자를 모르면 한국어로 번역이 가능할까. 영어를 한자어로 옮기는 것은 가능할까. 이 모든 언어가 완전히 시스템이 다른 언어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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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인문학이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쉽게 풀어써야 한다고 말한다. 100%동의한다. 그런데 이게 보통일이 아니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쉽게 풀려면 한자어와 한국어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정작 한국어를 알지 못한다. 아니 '알지 못한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나도 그랬으니... 과거에는 만나는 디자이너들에게 한자를 공부하라 말해왔는데 이젠 바꿔야 할거 같다. 한국어를 공부하라고. 정말로 참으로 등잔 밑이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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