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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Jan 12. 2020

디자인 아카이빙 포럼을 보고

어제 디자인 아카이빙에 관한 포럼에 다녀왔다. 포럼내내 국립디자인박물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디자인박물관에 관심이 많은터라 아주 흥미로웠다. 좋은 이야기가 오갔고, 여러 사례가 소개되었다. 무엇보다 디자인박물관을 위해 여러 선생님들이 많은 노력을 하셨고 그간 여러 고민과 연구들을 해오셨다는 사실을 알았다. 참으로 다행이고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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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사회에 아카이빙에 대한 이슈가 종종 등장한다. 포럼에서 나왔던 건축아카이브도 있고 최근 건설되는 공예박물관의 아카이브도 있다. 요즘은 내가 참여하는 서울시 공공미술위원회에서도 아카이빙 사업을 시작했다. 숨가쁘게 살아오면서 무언가를 돌아보는 여유가 없었는데 이제야 좀 여유가 생긴걸까. 아니면 뭔가 수집해야할 필요성을 느낀걸까. 아무튼 아카이빙을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아주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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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아카이빙은 뭐지? 아카이빙은 그저 단순한 수집이다. 우표 수집같은. 그런데 우표를 수집하더라도 무작정 수집하진 않는다. 나름의 관점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그 관점은 확고한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론 수집과정에서 관점이 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아카이빙=수집은 어떤 거대한 역사적 의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고 그저 과거의 의미있는 무언가를 일단 수집해 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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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해 놓으면 그것을 보관하고 늘어놓을 장소가 필요하다. 그것이 박물관이다. 박물관과 미술관은 다르다. 미술관은 미술작품 중 의미있는 것들을 모아서 보관하고 때론 늘어놓아 전시하는 곳이다. 즉 박물관은 미술관보다 큰 범주로 미술관은 미술에 특화된 박물관이다. 미술관으로 박물관을 살피는 과정은 일종의 환유적 관점이다. 디자인은 현대미술과 뿌리가 유사해 디자인박물관은 당연히 미술관을 기준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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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안타깝게도 디자인은 미술이 아니다. 무엇보다 미술에서 중요하다 생각하는 작품과 디자인에서 중요하다 생각하는 작품이 다르다. 미술은 유일해야 대단하지만, 디자인은 많이많이 팔여야 대단하다. 미술은 드문 것을 소중이 여기는 반면, 디자인은 흔한 것을 소중이 여긴다.
그렇기에 디자인과 미술의 아카이빙 관점은 완전히 다르고 미술관과 디자인관도 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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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여러 선생님들이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제목에서 알 수 있다. 디자인'미술관'이 아니라 디자인'박물관'이라는. 나는 디자인을 박물관적 관점에서 본다는 점에서 선생님들의 고민의 깊이와 폭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디자인박물관이라고 하는 순간 고려해야할 사항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아카이빙의 범위와 운영, 지속성 등등 모두 미술이라는 좁은 범주가 아닌 디자인이라는 거대한 범주를 마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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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선 먼저 디자인을 보편적으로 정의해야 한다. 그래야 아카이빙의 규모와 계획을 세울 수 있다. 그런데 감히 누가 그걸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디자인 개념을... 게다가 '국립' 디자인박물관이기에 '국립=대한민국'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이 뭐지? 세계인가 아시아인가 아니면 한민족인가... 홍콩의 경우 아시아로 관점으로 세웠다니 그럼 우리도 관점을 넓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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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빙에 대한 목적도 불분명하다. 아카이빙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전시? 역사? 개성? 국뽕? 등등 여러가지 요구와 욕구, 욕망이 공존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디자인박물관은 국책사업이기에 국민의 세금이 들어간다. 국민을 설득할만한 분명한 가치와 명분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번뜻한 건물일지라도... 즉 의지와 원리만으로 디자인박물관이 세월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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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에서 나는 같은 현상을 목격했다.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지만 문제해결을 위해 누군가 앞서지 못하는 상황이랄까. 대부분 디자인비평에 능한 분들이라 그런지 선뜻 아카이빙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선생님들도 조급했다. 연구과정에서 1세대 디자이너들의 의견을 기록하고 일단 몇백점이라도 리스트를 뽑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의견만 있을뿐 실행에 이르진 못한듯 싶다. 발만 동동구르는 상황이랄까. 일이라는게 늘 그렇듯 누군가 과감하게 총대를 메야 하는데... 하긴 디자인박물관 사업자체도 지지부진한 상황이니 게다가 누가 해도 욕먹을 것이 뻔하니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수집보다는 비평이 앞설 수 밖에. 발제와 토론을 들으며 연구자들조차 답답한 상황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음을 짐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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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발제를 들으며 디자인박물관을 디자인 문제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디자인박물관을 디자인한다면 어떻게 할까? 펜을 빌려 내가 생각해왔던 아카이빙과 디자인박물관을 끄적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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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는 디자인된다>에서 '수집'과 '역사'를 구분했다. 사실 디자인 관점에서 볼때 역사는 디자인'되는' 것이라기 보다는 역사는 디자인'하는' 것이 맞는데 굳이 '되는' 쪽으로 기운 이유는 역사는 역사가 맘대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역사를 디자인과 연관시킨 것은 역사가는 디자이너처럼 디자인을 '하는' 과정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었다. 그 과정은 바로 '수집=아카이빙'이다. 즉 아카이빙은 역사를 쓰기 위한 전단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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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빙이 되면 정리를 한다. 정리하면서 역사를 쓴다. 역사를 쓰다가 부족하다고 느끼면 또 아카이빙을 한다. 이렇듯 역사는 아카이빙과 정리, 역사쓰기의 순환적 과정이다. 그렇기에 역사가는 어떤 미래비전과 관점을 갖고 자료를 아카이빙한다. 아카이빙은 반드시 아카이빙을 할 사람의 비전과 관점이 있어야 한다. 그 비전과 관점의 시작은 대상의 범주를 정하며부터이다. 가령 디자인 아카이빙이라면 디자인이란 무엇인지 정의를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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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글에서 언급했듯 국립디자인박물관에 있어 디자인의 정의는 우리 일상의 '흔한 것'이다. 흔한 것은 우리 주변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수집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이건 이렇게 생겼고, 우리는 왜 이걸 쓰고 있으며, 언제부터 우린 이걸 쓰기 시작한거지?"라는. 이 질문은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아카이빙해야 할지 그 방향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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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은 3가지 주체가 있다. 전문디자이너와 기업클라이언트 그리고 사용자이다. 이때 디자인박물관에 수집될 디자인은 흔한 것이기에 반드시 기업클라이언트에 의해 생산이 많이 된 것이어야 한다. 만약 대량생산되었다면 그 기업은 크게 성장했을 것이기에 주로 대기업에 이런 디자인이 많다. 디자인에서 이런 디자인을 '프로토타입'이라고 말한다. 즉 디자인박물관은 대량생산되어 우리 삶의 일부가 된 물건들의 프로토타입들을 아카이빙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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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타입이 나오기까지 전문디자이너들의 수많은 실험이 요구된다. 물론 이 실험들도 수집대상이다. 해외 디자인미술관들은 대부분 이 실험들을 수집하는데 우리는 디자인미술관이 아니라 디자인박물관이기에 실험보다는 현실화된 프로토타입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사용자들이 생산된 
프로토타입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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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디자인박물관을 위한 디자인 아카이빙은 전문디자이너의 디자인실험, 기업클라이언트의 디자인생산, 사용자들의 디자인문화라는 세가지 층위로 구성되면 된다. 이때 중요한 점은 반드시 대량생산 된 것이어야 한다. 최대한 많이 생산된 것일수록 좋다. 만약 이 세가지 층위가 잘 구성되어 프로토타입이 나열된다면 디자인박물관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너무 흔해서 당연한 무언가가 왜 우리 곁에 있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요즘 내가 최봉영 샘을 통해 내가 하는 한국어가 무슨 뜻인지 알게 되어 신기하고 흥미로운 것처럼. 관람객들 또한 디자인박물관을 통해 우리 생활문화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신기하고 흥미로워 할 것이다.

만약 앞서 언급한 대로 전문가=실험과 클라이언트=생산, 사용자=문화로 구성된 디자인박물관이 계획되고 들어선다면 서서히 역사가 쓰여지기 시작한다. 수집된(아카이빙된) 대상들이 패턴을 형성하며 과거의 디자인문화가 어땠고, 그것이 현재에 어떤 상황이며, 미래에 어떤 디자인이 나올지 자연스럽게 예측하게 된다. 즉 역사를 통해 가설적 추론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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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비로소 평론가와 비평가 연구자들의 활동이 시작될 수 있다. 평론과 비평, 연구의 대상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분들은 각기 다른 관점에서 수집된 디자인들의 패턴을 재구성한다. 각자가 재구성한 패턴을 갖고 담론과 평론, 교육, 전시 등의 형태로 생각을 겨룬다. 이 겨루기를 통해 서로 성장을 하게 되고 디자인역사가 새롭게 쓰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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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구성되는 역사는 아카이빙에 다시 영향을 준다. 애초에 아카이빙 된 것에 문제가 있다면 수정할 것을 수정하고 보완할 것은 보완하면 된다. 이 수정과 보완을 통해 디자인 개념과 범주를 다시 정의하고 실험, 생산, 문화로 구성된 프로토타입을 추가로 수집한다. 그것들을 갖고 기존 전시물에 추가해 새로운 역사패턴을 찾아 역사이야기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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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디자인 개념정의-프로토타입 수집-비평'의 순환고리가 형성되면 디자인박물관은 계속 성장하게 될 것이다. 디자인박물관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디자인 역사=이야기를 보고 듣고 만진다. 나아가 디자인역사와 더불어 우리 생활문화가 어떻게 변화되는지 감지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디자인역사는 계속 다시 쓰여진다. 이 선순환 과정이 디자인박물관의 지속성이며 성장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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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는 자연사박물관이 많다. 나는 과거에 유럽배낭여행을 다니면서 많은 자연사박물관을 방문했다. 자연사박물관에서 유럽과 한국의 생태계가 얼마나 같고 다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많은 예술, 디자인 지망생들이 이곳에 방문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어쩌면 미술관보다 더 많이 방문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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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자연사박물관에 흥미를 가질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우리는 자연세계가 아닌 인공세계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이후 도시가 급성장 했고 현재 인구 도시화률은 90%에 다르고 있다. 도시는 전형적인 인공물이다. 그래서 전세계 어디를 가도 비슷한 인공물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런 생활 인공물들이 전시된 인공사박물관을 본적이 없다. 즉, 우리 시대의 자연사박물관은 인공사박물관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여전히 자연사박물관에 시선이 머물러 있다. 우리의 습성이 농경시대에 머물러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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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인공사박물관이 디자인박물관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는 전세계 최초로 인공사박물관을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것이 내가 디자인박물관을 디자인 문제로 보는 이유다. 이 말은 우리가 참고하는 디자인미술관은 우리가 만들어야 할 디자인박물관과 크게 다르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미술관이 박물관의 하위개념이듯 디자인미술관은 디자인박물관의 일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까 디자인박물관은 지금까지 우리가 만들던 미술관보다 훨씬 더 큰 범주의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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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서 나는 디자인 아카이빙 포럼에서 나온 이야기들이 반가웠다. "아 이분들도 그걸 인식하고 있구나...그래서 이 거대한 문제를 높고 깊고 넓게 고민하고 계셨구나"라고 느꼈다. 나는 이런 고민들과 연구들을 딛고 꼭 국립디자인박물관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디자인박물관은 여타의 세계에 있는 그저그런 디자인미술관이 아닌 세계 최초로 인공사박물관의 프로토타입이 되었으면 한다. 이 프로토타입이 전세계에 퍼져 과거 자연사박물관에서 생태계의 같고 다름을 느끼듯, 각국의 디자인박물관에서 생활문화의 같고 다름을 느꼈으면 한다. 이게 '국립디자인박물관'의 당위성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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