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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Jan 10. 2020

디자인 '하는' 사회

최근 한국 사회는 '디자인 되는 사회'에서 '디자인 하는 사회'로 급격히 전환되고 있다. 일찍이 서양은 '디자인 하는 사회'를 경험했는데 한국은 식민지와 전쟁, 독재라는 역사의 굴곡과 유교사상이라는 경로의존성 때문에 '디자인 하는 사람=근대인'이란 자각과 인식이 부족했다. 그러나 이젠 빠르게 그 굴곡과 경로에서 벗어나고 있으며 무언가에 디자인되기 보다는 스스로 디자인하기를 강렬하게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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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와 진보의 프레임도 깨지고 있다. 사실 보수와 진보를 옛말로 고치면 기득권을 지키려는 척사파와 변화를 꾀하는 개화파라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보수는 친미와 친일을 지키려고 한다는 점에서 그 뿌리는 개화파에 가깝다. 척사파는 퇴계와 율곡, 실학을 주장하는 유학자들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들 또한 중국의 공맹과 주자학을 모신다는 점에서 개화파에 가깝다. 진보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진보가 민족담론을 내세우며 척사파에 가까운 행동을 하는데 이들 또한 중국과 러시아 같은 새로운 열강, 동남아시아 등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는 점에서 개화파의 피가 흐른다. 즉 보수와 진보 모두 개화파인데 어떤 개화세력에 기준을 두느냐가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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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척사파도 개화파도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개벽파에 가깝다. 개벽하면 많이들 동학을 떠올린다. 동학의 맥을 잇는 삼일운동을 떠올린다. 삼일운동은 천도교에서 주도했다. 그래서 원광대에서 개벽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동학에서 이어지는 개벽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책에 사인할때 '오심즉여심'이나 '우묵눌' 같은 수운과 해월의 말을 쓰곤한다. 그만큼 그분들의 사상에 심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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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개벽은 동학과 같은 옛것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것이다. 이 우리것을 잘 살려 디자인하는 것을 개벽이라 생각한다. 그럼 '우리것'이라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우리것은 지금만이 아니라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있을 무언가이다. 신라와 고려, 조선, 식민지, 대한민국의 미래까지 이어지는 우리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소위 한국적이라 말하는 과거의 유물이나 유적이 아니다. 한문도 한글도 아니다. 물질적인 것은 모두 아니요, 제도나 사상적이 것도 모두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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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우리것은 바로 '한국어'이다. 한국어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분명 있을 것이다. 국가가 바뀌고 종교도 바뀌고 사상도 바뀌고 문자도 바뀌고 제도나 체제도 바뀌었지만 한국어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대정신을 반영한 용어의 변화는 있을지언정, 문장의 맥락이나 구성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이런점에서 한국어야 말로 진정한 우리것이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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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는 한국어를 가지고 디자인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어'가 무엇이냐이다. 근대에 들어와 언어중심으로 민족과 국가가 형성되면서 언어연구가 활발했다. 특히 서양의 경우 그 연구의 폭과 깊이가 상당했는데 일본은 이 성과를 바탕으로 일본어 연구를 했다.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도 이를 기반으로 한국어를 연구했다. 남의 것을 가져와 우리 것에 끼워 맞췄다는 점에서 사실 우리의 언어연구는 디자인하는 행위가 아니라 디자인되는 행위에 가까웠다. 게다가 서양어인 굴절어의 시스템을 일본-한국어인 교착어 시스템에 끼워 맞추었으니 아귀도 맞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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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달 정도 최봉영 샘 덕질을 했다. 영상과 기사, 책을 읽으며 이분이 말하고자 하는 뜻을 음미했다. 내가 최봉영 샘에 주목한 이유는 이 분에게서 개벽의 가능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한국어의 어원을 경험에 근거해 찾고, 한국어 문법의 줄기를 잡았다는 점에서 나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늘 한국어를 말하면서 그 뜻을 몰랐다니, 내가 알고 있는 한국어 문법이 모두 엉망이었다니... 이런 상황에서 무슨 보수니 진보니 척사니 개화니 따질 것인가. 자신이 무엇인지 그 존재조차 모르고 자신이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인식조차 못하면서... 한국어가 곧 한국문화이고 한국인의 정체성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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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되는' '디자인 하는' 프레임도 최봉영의 <본과 보기의 문화이론>에 나온다. 나는 최봉영을 공부하면서 지금까지 억눌려왔던 무언가가 해소됨을 느꼈다. 지난 십여년 열심히 책을 읽고 나만의 이론을 만들려 노력해 왔기에 최봉영 샘의 성과가 얼마나 대단하지 알아볼 수 있었다. 게다가 이런 나를 최봉영 샘이 알아주었다. 불과 몇개월 사이에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고 알아주는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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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은 것은 '알아함'이다. 알아함은 '알아서 하면 된다'는 의미다. 알았으니 남은 것은 실천이고 실행이다. 디자인을 하는 디자이너의 장점이 무엇인가. 바로 실행력이다. 그 실행력을 발휘할 대상이 나타난 것이다. 오늘 디자인학교 회의를 하면서 최봉영 샘이 '한국어 문법' 강의를 제안했다고 전했다. 모두 박수 치며 좋아했다. 감사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우리에게 이런 기회가 왔으니. 나아가 최봉영 샘이 소장하는 엄청난 소장품을 전시하는 것이 어떠겠냐는 의견도 나왔다. 우리에게 전시기획과 실행은 어려울 것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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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최봉영 이성민 샘과 디자인학교의 만남은 절묘하다. 이분들은 정직하게 공부하면서 타자의 삶을 사셨다. 디자인 분야도 비슷하다. 열심히 했는데 늘 타자 취급을 받았다.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했던 사람들과 분야가 만나니 서로를 잘 이해하고 보듬는다. 제대로된 내용과 제대로된 형식이 만났으니 남은 것은 즐기는 것이다. 의미있는 문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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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디자인학교와 참여하는 분들의 성과가 나올 것이다. 나로서는 이번 주말에 디자인 개념을 다룬 그래픽노블이 나온다. 이성민 샘의 첫 디자인 번역책도 나올 예정이다. 글쓰기를 즐기는 디자이너들과 함께 디자인담론을 펼쳐갈 생각이다. 상반기내로 최봉영 샘의 한국어문법 오픈교양 강좌가 시작될 것이다. 여름에는 디자인학교 첫 졸업전시+세미나가 계획되어 있다. 개벽이 별거 있나. 이렇게 디자인을 하고 디자인 하는 사람들이 어울려 '디자인하는 태도'를 늘려가는 것이야 말로 개벽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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