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피앙, 시니피에 아는 분?" 아는 분도 있을테지만 대부분 무슨 말인지 모를 것이다. 속으로 '무슨 새 이름인가?' 여길 것이다. '시'와 '앙'의 익숙한 발음이 '새'와 '원앙'을 연상시키니까. 본래 인간은 모르는 대상을 만나면 익숙한 것이 더 크게 들리는 법이라. 일종의 확증편향처럼.
아는 사람은 속으로 미소지으며 "시니피앙은 기표, 시니피에는 기의"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때 미소의 웃음 의미는 우월감이다. 내가 남보다 더 알고 있다는. 그럼 다시 질문하자. "기표, 기의가 뭔지 아는 분?" 마찬가지로 아는 분도 있고 갸우뚱 하는 분도 있다.
아는 분은 '기표는 감각지각'이라며 여러가지 사례를 말할 것이다. 모르는 분은 "쟤가 무슨 의도로 저러는 거지?"라는 의심과 함께 정작 자신도 기표와 기의의 뜻을 정확히 모른다는 사실을 자각할 것이다. 이때 웃음은 사라진다.
"기표는 겉보기이고 기의는 속들이예요"라고 말하면 "엥? 겉보기는 뭐고, 속들이는 뭐지?"라며 생각한다. 겉보기는 '겉+보기'이고 속들이는 '속+들이'라고 말하면 조금 이해가 된다. 겉과 속은 누구나 알고 있으니까. "보기는 눈으로 보는 것만이 아니라 맛보고, 들어보고 하는 모든 감각행위에 쓰는 말이예요"라며 그때 '겉보기'라 무슨말인지 알게 된다. 마찬가지로 '속들이'이 설명을 들으면 '아하!'하며 미소짓는다.
이때 웃음은 자신에 대한 자신의 우월감이다. 방금전 몰랐던 자신이 무언가 알게 되면서 자신감이 커진 것이다. 최샘은 웃음은 우월감에서 나온다고 하셨는데 한가지는 남에 대한 우월감, 다른 하나는 자신에 대한 우월감이다. 무엇이 건강한 웃음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나는 이 건강한 웃음이 논어의 첫구절에 나오는 "열"이란 생각이다. 왜냐면 열은 구성상 "말씀 언+바뀔 태"로 만들어진 글자니까.
이제 우린 시니피앙, 시니피에, 기표, 기의, 겉보기, 속들이, 겉+보기, 속+들이에 대해 모두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 한분도 완쾌되었고. 그러니 웃자.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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