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러 생각

말의 형성과 집단지성

by 윤여경

어제 최봉영 샘과 '잡다'과 '쥐다'에 대해 긴 통화를 했다. '잡다'하면 흔히들 컵이나 손을 잡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잡다'는 물건만이 아니라 '감을 잡다' '권력을 잡다' '밑천을 잡다' '기회를 잡다' '균형을 잡다' 등 다양한 사건들에게도 쓰인다. 그래서 이 '잡다'는 '잣대'와 바탕을 같이 하는 말이다. '감잡다'에서 보듯 무언가를 '잡는다'는 것은 장악하고 전체를 이해한다는 말이기도 한데, 어떤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해의 기준, 즉 객관적인 잣대나 주관적인 줏대가 있어야 한다. 이런점에서 '잡다'와 '줏대' '잣대'는 모두 바탕을 함께 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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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레이코프의 <몸의 철학>을 뒤적여 보았다. 서양인들은 어떤 대상을 이해할때 'I see'라고 말한다. 레이코프는 이를 통해 서양인들은 '아는 것은 보는 것이다'라는 은유를 갖는다고 말한다. 이때 보는 것은 다시 촉각적인 것과 연관이 된다. 연결하면 '만지는 것 => 보는 것 => 아는 것'이란 도식이 나온다. 즉 서양인에게 줏대와 잣대로 보는 행위가 중요한데 이것 또한 '잡는 행위=만지는 행위'와 연관이 있다.
(덧붙이면 한국사람에게 '보다'는 단순히 시각과 촉각을 말하지 않는다. 한국사람은 '맛보다' '들어보다' '냄새맡아보다' '생각해보다' 등 다른 감각과 행위에도 '보다'라는 말을 쓴다. 즉 한국사람이 보는 느낌자질은 서양인과 달리 더 복합적이다. 그래서 한국사람은 어떤 대상을 '안다'라고 말할때는 더 복합적인 '알음'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 알음은 어떤 대상의 겉보기와 속성을 모두 포괄하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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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영 샘은 '잡다와 잦대'에서 한발 더 나아가 '줏대'와 '쥐다'를 연결한다. 앞서 언급했듯 잣대가 객관적이라면 줏대는 주관적이다. 자신이 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다'와 '줍다' 또한 '줏대' '쥐다'와 바탕을 함께한다. 나아가 '받다'는 두 손으로 받치는 것이고, '놓다'는 땅에서 무언가가 높아진 상태를 의미한다. 땅에 무언가를 놓으면 높아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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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한국말은 소리느낌이 비슷한 여러말들이 비슷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이는 한국말의 독특한 현상이다. 한국말에서 '같다'는 '갖다'와 바탕이 같은데 가령 '녹색이 같다'라고 말하는경우 이쪽이 녹색을 '갖고' 있고, 저쪽도 녹색을 '갖고' 있기 때문에 두 색이 '같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반면 영어에서 같다는 same이고 갖다는 have로 소리느낌 자체가 분리되어 있다. 최봉영 샘은 이런 이유가 한국말은 오랫동안 변화하지 않고 보존된 지역적 문화적 특수성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한국인의 집단지성은 서양처럼 크게 변화되지 않고 보존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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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레이코스&존슨의 <몸의 철학>을 다시 뒤적인 이유는 말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문득 '유사성과 해석성'이란 단어에 꽂혔는데 이것이 '감각과 생각'과 연관이 있지 않을때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주요한 키워드가 많이 등장하는데 내가 가장 주목한 키워드는 '경험에서부터 창발된 인과관계'와 '가족유사성에 의한 범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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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에서 창발된 인과관계'는 해석성에 가깝고 '가족유사성'이란 소리든 의미든 느낌이 비슷한 것들끼리 모아놓은 것이다. 나는 이 유사성과 해석성 각각에 인과관계와 범주형성이 따로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잡다'과 '잣대'라는 소리의 유사성에 범주적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그리고 이것이 어떤 기준에 의한 이해와 연관된다는 것은 의미의 해석성에 있어 범주적 인과관계가 형성된다. 그래서 '잡다' '잣대'는 같은 범주로 연결지을 수 있게 된다. 우리의 말도 이렇게 갈래를 치며 형성되어 오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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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유사성은 일종의 기표(겉보기 감각)이다. 그리고 해석성은 일종의 기의(속속들이 생각)이다. 물론 게슈탈트에 의하면 유사성조차 기억에 많은 의존을 하지만. 아무튼 우린 어떤 대상을 파악하기 위해 겉과 속을 동시에 고려한다. 방금적 쓴 '파악把握'이란 단어도 '잡다'와 '쥐다'의 합성어인데 이 단어들 또한 같은 바탕속에서 범주화 되어 만들어진 단어다. 그리고 이해와 파악, 앎은 모두 유사함과 나름의 해석을 통해 겉과 속을 동시에 알고자 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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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이란 무엇일까? 나는 겉과 속을 함께 아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겉은 감각으로 알고, 속은 생각으로 안다. 감각적 유사성과 생각적 해석성으로 인과관계와 범주를 파악해 가장 최적의 인과+범주를 추출해낸다. 이를 통해 말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말이 만들어지려면 한두사람이 아니라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야만 한다. 그래서 말은 그 자체로 그 말을 쓰는 사람들의 집단지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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