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러 생각

“사회적 거리 두기”의 겉과 속

by 윤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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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영 샘이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셨습니다. 어둡고 황폐한 타임라인에 빛이 들어오는 기분입니다. 첫 글은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의 지적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한자어로 조합된 흐릿한 말이 아니라 '만나서 사이 띄우기'라는 한국말로 또렷하게 말하자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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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읽어내신 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 글에는 중요한 내용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사회'와 '개인'의 개념입니다. 이를 선생님은 '통'이란 개념틀로 분석하십니다. 세상에는 4가지 종류의 통체가 있습니다. 4가지 개념은 선생님의 사상적 전환기가 된 책 <주체와 욕망>에 나오는데 이 책은 절판이라 저는 이 개념을 <본과 보기의 문화이론>에서 읽었습니다. 이를 나열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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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체-종속자

통체-연기자

통체-부분자

개별자-합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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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가지 세상을 문명별로 굳이 구분한다면 통체-종속자는 '기독교' 세상, 연기자는 '불교' 세상, '부분자'는 '유교' 세상입니다. 마지막 '개별자-합체'는 서양 근대에서 시작된 근현대 세상입니다. 즉 우리는 '통체-부분자'의 세상에서 살다가 '개별자-합체'의 세상으로 온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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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개별자'란 '개인'을 의미합니다. 한국말로는 '나'입니다. '나'가 아닌 개별자는 '너'이거나 '남'입니다. 합체는 '사회'를 의미합니다. 즉 한국사람에게 사회는 나와 너, 남이 서로 어울리며 공존공생하는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사회를 한국말로 하면 '우리'입니다. 그런데 서양에서 '사회'는 나와 남이 서로 어울릴 수 있는 공동체이기에 한국말에서 말하는 '우리'와 뉘앙스가 다소 다르게 들립니다. 한국사람들은 '우리'를 '나'로 여기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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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에게 '우리'는 아주 섬세하게 나누어져 있습니다. 크게 4가지로 분류되는데 '따로 하는 우리' '같이 하는 우리' '닫힌 우리' '열린 우리'입니다. '따로 하는 우리'는 각자 알아서 따로 사는 것입니다. '같이 하는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사는 것입니다. 서양말 '사회=social'와 가장 가까운 '우리'가 바로 '같이 하는 우리'입니다. 닫힌 우리는 끼리끼리 어울리는 것입니다. 조선말기 이후 아니 임진왜란 이후 한국사람들은 점점 닫힌 우리가 되었습니다. 일제시대와 해방이후 지금까지 한국사람들의 정서를 지배하는 '우리'는 '닫힌 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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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열린 우리'는 모두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이때 모두란 사람만이 아니라 공기와 물, 숲 등 사람이 존재하기 위해 어울리는 모든 것들을 말합니다. '닫힌 우리'는 아무리 크게 확대해야 '사람들끼리'에 그친다면 '열린 우리'는 크게 확대하면 지구를 넘어 우주까지 포괄하게 됩니다. 아주 큰 '우리' 개념이죠. 한국에서 종종 거론되는 '씨알' 사상이 이 '열린 우리'랑 유사합니다. 반면 '살림'사상은 다소 닫힌 우리라는 느낌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살림이라 살려간다는 능동적 느낌이 있는데, 열린 우리 세상은 절로 살아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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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우리는 '고루고루'하는 것입니다. 열린 우리를 지향하려면 '고루고루'와 더불어 '두루두루'까지 해야 합니다. '고루'는 안을 고르게 하는 것이고, '두루'는 밖까지 두루 살피는 것입니다. 고루하는 것은 의지를 갖고 할 수 있지만, 두루하는 것은 의지만으로 안됩니다. 저절로 돌아가는 우연의 세상을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열린 우리가 최종적으로 완성되면 '아름다움'이 됩니다. '아름'이 고루와 바탕이 연결되고, '다움'이 두루와 바탕이 연결되거든요. 여기에 대한 설명은 따로 기회를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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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선생님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들으며 한국사람들에게 '사회'라는 말이 아주 섬세하게 갈래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저는 '사회=개인+개인' 도식으로 여겼습니다. 이때 사회와 개인은 두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사회=개인'으로 볼 것이냐. '사회vs개인'으로 볼 것이냐이죠. 한국사람들은 후자로 보는 경향이 아주 강합니다. 그래서 개인은 사회에 저항해야 한다고 말하죠. 하지만 '사회=개인'에서 개인은 사회에 종속된 상태입니다. 저항이라는 말이 있을 수 없죠. 하지만 사람들은 끊임없이 사회에 저항하며 사회를 바꿔가고 싶어합니다. 왜 그럴까 늘 궁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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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최봉영 선생님의 '우리'의 섬세한 뜻을 알게 되면서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한국사람들은 '사회'라는 모호한 개념을 갖고도, 4가지의 '우리' 개념으로 또렷하게 세상을 보기에 '사회'를 다양한 의미로 변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당황하기 않고 침착하게 잘 대처한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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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한국사람들은 맥락에 따라 사회를 다르게 여길 수 있습니다. 한국말에 그런 맥락이 숨어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흐릿한 말을 듣고도 또렷하게 그 의미를 새겨 실천합니다. 콩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죠. 언제 조용해야 할지, 언제 시끄러워야 할지, 언제 저항해야 할지, 언제 함께해야 할지 금방 알아차립니다. 불과 수년전만해도 '헬조선'이라 저주하면서 저항했고, 말을 알아먹지 못하니까 거리에 모여 정치인들을 끌어내려 호되게 벌합니다.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정치인들과 함께 위기를 극복합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수십년동안 한국사람들은 이런식으로 세상을 조금씩조금씩 바꿔왔습니다. 힘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인 '속도'를 잘 조절한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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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양사람들인 한국의 '사회' 아니 '우리'의 의미를 배워야 할 시대가 오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이미 시작된거 같습니다. 문제는 저들이 아니라 우리입니다. 정작 우리 스스로 '사회=우리'의 바탕뜻을 알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몸에 배어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좀 더 의식적으로 또렷하게 알려면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우리' 한국말 바탕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면 자기를 존중하는 자존감도 높아지고 자기를 신뢰하는 자신감도 높아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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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언 : 오늘부터 '사회적 거리두가'가 '생활속 거리두기'로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생활' '속' 말의 바탕치기가 또 필요해졌네요. 그냥 '만나서 사이 띄우기'이란 말을 쓰는 건 정말 어려운가 봅니다. 체제와 생활습관은 잘 바뀌는 반면 말과 음식은 잘 바뀌지 않습니다. 조선이후 한국말은 계속 핍박받아왔습니다. 위 경우에만 봐도 말에 있어 조선시대 잔재가 이렇게 넓고 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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