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생각, 프레임 혁신

by 윤여경

곧 디자인학교 철학교사인 이성민 샘의 첫 디자인 번역책이 나온다. 20년 가까이 현대철학 번역의 최전선에 계셨던 분이 발굴하고 선택한 디자인 번역책이다.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책 이름은 <프레임 혁신>, 저자는 네덜란드 디자인 철학자 키스 도스트다. 이름이 생소하다. 나도 생소하니 다른 이들도 그럴 것이다. 운좋게도 나는 초벌 번역을 읽어보았다. 읽자마자 이 책의 가치를 느꼈다. 주로 디자이너들이 생각하는 방식을 다루는데 접근이 아주 독특하다. 기존의 디자인씽킹과는 전혀 다른 접근이었다.

나는 디자인씽킹을 알기 위해 뇌과학과 신경학을 공부했다. 최초로 디자인씽킹을 주장한 분이 유명한 뇌과학자였기 때문이다. 뇌과학을 공부하며 내게 가장 많은 통찰을 준 뇌과학자는 마이클 가자니가와 에릭 켄델인데, 가자니가는 그의 책에서 '나의 멋진 친구 도널드 노먼'을 말하며 그의 독특한 취미생활로 디자인씽킹을 살짝 언급한다.

그때부터 나는 뇌과학자의 취미생활인 디자인씽킹에 관심이 시들어졌다. 그의 유명한 저서 <디자인과 인간심리>에 대한 신뢰에 금에 갔다. 하지만 그가 아주 중요한 문제를 지적했으며, 그의 접근이 디자이너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는 것은 결코 작은 업적이 아니다. 덕분에 디자이너들은 '인간'이란 존재를 의식하기 시작했고 '생각'의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디자이너들이 스스로를 '생각하는 인간'으로 인식했고 자신이 만든 디자인이 '산업과 상업=시장'이 아니라 '사람=사용자'의 삶에 기여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근대과학 역사에서 사람의 생각을 두가지로 구분한다. 연역과 귀납이다. 말과 글을 기호로 다루는 사람들에게 연역과 귀납은 상식적인 생각법이다. 노먼 또한 이런 생각법으로 뇌를 연구했기에 디자인씽킹에 '연역+귀납'을 적용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도식이 그 유명한 '더블다이아몬드'다. 사실 나는 이 도식이 맘에 들지 않았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너무 단순하다고 할까... 디자이너들이 얼마나 복잡한 방식으로 디자인을 하는데... 이 정도 도식으로 디자이너의 생각을 설명할 수 있을까?


이를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생각법이 하나 더 있다. 인덱스, 아이콘, 심벌이라는 용어로 이미지 기호학을 정리한 찰스 샌더스 퍼스다. 그는 현대인의 생각법으로 '가설과 추론'을 강조한다. 이를 줄여 '가추법'이라 말한다. 영어로는 abduction인데 사람들은 이 가추법을 '귀추법'이라고도 번역한다. 이 귀추법은 여러 디자인이론가에 의해 디자이너의 생각법으로 여겨진다. 디자인씽킹으로 유명한 미국 디자인이론가 로저 마틴은 '귀추법'을 주목한다. 일본 무사시노 대학의 유명한 디자인이론가 무카이 슈타로도 디자이너의 생각법으로 이 '귀추법'을 강조한다.


<프레임 혁신>의 저자 키스 도스트도 이 귀추법을 디자이너의 생각으로 여긴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생각을 4가지 방식으로 구분한다.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귀추법을 소개하면서 귀추법을 2가지로 구분한다. 4가지 방식을 나열하면 '연역' '귀납' '통상적 귀추' '디자인 귀추'이다. 나는 연역과 귀납, 귀추를 다룬 여러 책을 접했지만 이런 접근방식은 처음 보았다. 그래서 이 접근을 내 나름대로 풀어 작년 여름 미학학회에서 디자이너의 사유법으로 도스트의 귀추를 발제하고 소개했다. 발제를 준비하면서 이성민 샘이 도와주셨고 기꺼이 질문자도 되어 주셨다.


디자인이 학문이 되기 위해서는 2가지 관문을 거쳐야 한다. 첫번째 관문은 '언어'다. 먼저 예술과 디자인이 다루는 그릇(조각, 제품)과 그림(회화, 그래픽)이 언어로서 인정받아야 한다. 이 관문은 레이코프&존슨의 '기본층위 범주' 그리고 최봉영 샘의 바탕치기로 어느정도 정리가 된듯 싶다. 두번째 관문은 '생각'이다. 크게 보아 인문학자의 생각은 주로 연역이고 과학자들의 생각은 주로 귀납이다. 구체적으로 이론과학자는 연역적, 실험과학자는 귀납적 생각을 한다. 인문학자도 연역과 귀납을 왔다갔다 하기는 마찬가지다. 역사학자 E.H.카는 자신의 학문 방법으로 읽고 쓰기를 강조한다. 읽기는 연역이고, 쓰기는 귀납이다. 철학에서는 이 연역과 귀납을 통틀어 '변증법'이라고 말한다. 이렇듯 말과 글을 다루는 학문들은 생각의 방식을 공유한다.


그럼 디자이너는? 디자이너의 생각은 연역인가 귀납인가? 아니면 새로운 생각법인 귀추인가? 그럼 귀추는 연역과 귀납 사이 어디에 속하는가? 이런 질문들을 통해 디자이너의 사유가 어떤 과정인지 규명되어야 디자인은 비로소 여타 다른 학문들과 함께 할 수 있다. 나는 이 문제에 있어 <프레임 혁신>을 번역하신 이성민 샘이 큰 기여를 하실 것이라 믿고 있다. 뼈속까지 철학자인 이성민 샘은 취미가 아니라 아예 디자인 분야로 들어왔다. 생각의 기단에 '철학'이 아닌 '디자인'을 둔다. 앞으로 한국디자인계는 이성민이라는 번역자를 주목해야 한다. 이성민 샘이 번역하는 책들이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큰 영감을 줄 것이다.


나는 영광스럽게도 첫 영감을 받았다. 도스트는 귀추를 그냥 직관으로 퉁치지 않는다. 모호하고 어려운 말로 빙빙돌려 어지럽게 만들지도 않는다. 그는 '무엇(what)'과 '어떻게(how)'라는 일상의 질문으로 귀추를 설명하고 여러 사례를 상세히 소개한다. 나는 도스트의 도식과 사례를 통해 디자인이 어떤 생각과정을 거쳐 적절한 결론에 이르는지 알게 되었다. 나 또한 늘 그런 과정으로 생각하며 디자인해 왔음에도... 도스트를 통해 비로소 내가 디자인했던 과정을 메타적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나는 도스트가 말하는 '통상적 귀추'라는 말을 '연추'라는 말로 바꾸어 '연추-연역-귀추-귀납'이라는 말의 라임을 맞추고 그 흐름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 흐름을 학회에 소개하고 다시 이를 다듬의 수업에서 가르치고 있다. 수업을 하면서 잘못된 점들을 발견하면 바로바로 수정을 하는데, 이미 여러번 강의하면서 최초 발표에 비해 내용이 많이 바뀌었다. 이번학기도 마찬가지로 수업을 앞두고 강의 전체를 뜯어 고치는 중이다. 지금은 이 강의를 3시간 수업에서 한두번에 걸쳐 하고 있다. 도스트 책이 나오면 난 이 내용을 한 학기 분량으로 늘릴 수 있다. 교과서가 있으니까. 그러면 강의명을 '디자인 생각, 프레임 혁신'으로 할 생각이다. 이 책의 이름이 그렇듯 연역과 귀납, 연추와 귀추를 하나의 이름으로 합치면 '프레임 혁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프레임 혁신이 곧 디자인생각이다.

위 그림은 디자인 생각, 프레임 혁신 과정을 그린 구조이다. 여기에는 지금까지 디자인씽킹에 등장하지 않았던 과정 '선택과 포기'가 등장한다. 이 표현은 주로 경제학 혹은 경영학에 나오는 표현이기에 디자인씽킹을 다루는 책에는 잘 나오지 않는다. 현실 디자인은 뇌과학보다는 경제와 경영에 더 가깝다. 그래서 디자이너들은 선택과 포기라는 단어를 잘 쓴다. 디자인과정에서 늘 선택과 포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택과 포기를 통해 디자이너들은 최초의 앎에서 경험(레퍼런스)으로, 이 경험을 통해 새로운 앎으로 나아간다. 이 과정은 더블다이아몬드처럼 두번하지 않는다. 세번네번... 지난한 과정을 반복한다. 모두가 만족할만한 적절한 결과가 나올때까지. 이 과정에서 얼마나 잘 함께하고, 잘 참아내고, 잘 극복하냐에 따라 디자인 적절성의 질이 달라진다. 하나 더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디자인에는 '적절함'이 있을 뿐 '정답'이 없다는 것을. 정답이 아니라 적절함이라는 말이 디자인을 계속 나아가도록 이끈다. 이것이 '디자인 생각'이 갖고 있는 핵심 가치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기존의 방식보다 더 적절한 것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럼 "그냥 이대로 둡시다"라는 디자인 결론이 나올 수 있다. 때론 아예 기존의 방식을 엎어버리고 "완전히 새롭게 합시다"라는 디자인 결론이 나올 수 있다. 후자의 경우가 바로 '프레임 혁신'이다. 과거에는 주어진 진리와 전통에 근거해 관습에 따라 그냥 그대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각종 혁명에 의해 달라진 근현대는 과거와 단절된 것들이 많다. 도스트는 과거의 진리와 전통이 소용 없어진 현대 사회에서 우리 앞에 놓여진 문제를 기존 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그대로 두는' 전자의 방식이 아닌 완전히 새롭게 접근하는 '프레임 혁신'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 방식이 기존 산업디자이너들에게 이미 익숙하다는 점에 착안해, 디자이너들이 이제 산업이 아닌 사회에 기여를 해야 한다고 독려한다.


현재 산업에서 디자이너들은 포화상태다.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도스트의 책은 반갑기만 하다. 이 책이 가던 길을 멈춘 디자이너들에게 '어디로 가야 할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방향을 제시해 줄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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