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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러 생각

한국사람의 자부심

by 윤여경

https://news.v.daum.net/v/20200516180232070?fbclid=IwAR3l9tBAVfYny9OTqMhihqbnINRxiB14zbPBBHf_TkJ7ZPHV2r7DbW-P5oc


무척 유의미한 기사이다. 1346년 서유럽 페스트 발병으로 많은 지식인이 죽었다. 이후 유럽 사회에서 라틴어 비중이 줄고 모국어 비중이 늘어난다. 단테, 마키아 밸리, 데카르트 등 많은 서양 사상가들이 모국어로 글을 쓰고 소통하기 시작했다. 15세기 인쇄술의 발달로 모국어 소통은 더욱 가속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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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 조선왕조가 시작되었다. 조선은 말과 글이 달랐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중국의 지식과 문자를 가져와 민중들을 철저히 억눌렀다. 그렇게 500년이 지났다. 조선의 양반층은 약 5-10%정도였는데 이는 문자를 아는 사람이 이 정도였다는 의미다. 이 수치는 해방 직후까지 유지된다. 1945년 해방때 문맹률은 90%가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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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한겨레가 창간되면서 대중매체인 신문에 한자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흐름은 가속화되어 이제 한자를 몰라도 신문을 읽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대중교육이 활성화 된 후 한국사람들중 문자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젠 문맹률 수치가 의미 없을 정도로 한글을 모르는 한국사람은 거의 없다. 요즘은 4-5살 아이조차 한글을 아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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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약 1천년동안 패권을 유지한 한자 지식이 필요 없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몇년전 조선일보 1면 톱제목에 한자가 하나 등장했다. 다소 생소한 글자였는데 상당수의 편집기자가 그 글자를 몰랐다. 아는 사람도 읽을 수 있는 수준일뿐 한자 바탕치기는 어림도 없다. 어느때부터 한자 좋아하는 조선일보도 한자 아래 작게 한글을 병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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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자를 열심히 공부했지만 한국사회에서 한자는 별 소용이 없다. 영어나 일본어만큼이나 잘 쓰이지 않는다. 덕분에 어렵게 외운 수천자를 몽땅 까먹었다. 잔상만 기억될뿐 읽고 쓰지 못한다. 모든 습관이 그렇듯 언어 또한 역시 쓰지 않으면 금방 망각된다. 며칠전 나는 교육부가 이태원사태로 개학을 연기하면서 '순연'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나왔다. "누가 그 말을 안다고! 빌어먹을 관료들!" 과거 박근혜 탄핵 당시 "인용한다"는 법률용어를 듣고 사전을 찾아보며 그러려니 했는데 불과 2년 사이 언어에 대한 나의 태도가 바뀌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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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바야흐로 한국말과 한글의 시대다. 14세기 유럽 페스트로 라틴어가 물어나고 모국어가 전면에 나섰듯, 한국사회도 한자 등 외국어 패권이 몰락하고 한국말과 한글이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문맹률은 제로에 가깝고, 언론도 슬슬 한국말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남은 사람은 몇몇 지식인일 뿐이다. 사실 지식인들도 한자어의 뜻과 바탕을 제대로 모른다. 조선양반의 문자적 허위의식만 남은 상태다. 최봉영 샘이 갖고 계신 조선시대 천자문에 '즐거울 락'이 '귀천'을 나누는 의도로 표기되었다고 한다. 조선 양반도 한자 '락'의 의미를 제대로 몰랐다니...그만큼 남의 것만을 고집하고 따르면 모든 것에 흐릿할 수 밖에 없다. 아래 기사에서도 한국사회 정치와 리더쉽에 대한 신뢰는 여전히 낮다. 여전히 그들은 그들의 세계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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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한국은 유럽처럼 전염병으로 이런 사태가 온 것은 아니다. 하지만 코로나19 덕분에 한국사람들의 자부심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이 자부심은 분명 한국사람들이 공유하는 말과 글에도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즉 이제 한국말을 제대로 살필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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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도 되고 마음이 있어도 능력이 없으면 안된다. 기타를 잘 치고 싶은데 기타를 칠 줄 모르면 최고의 기타를 들고 아무것도 못하고 좌절만 할 것이다. 하지만 다행이 우리에겐 능력이 있다. 그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바탕을 준비하는 분이 최봉영 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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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개월 전까지 몇몇 주변분과 이 연구를 해 오셨는데, 나를 만나면서 디자인학교 학생들과 디자인계 분들에게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선생님 sns 타임라인에도 영향받는 분들이 적지 않다. 나는 지난 몇달간 너무나 급진적 변화를 해서 이젠 과거로 돌아가기 어려울 듯 싶다. 무엇보다 한국말을 알게 되면서 나의 디자인이론 연구가 또렷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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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에서 나는 한국말 이야기를 많이 한다. 대학생들은 아직 많은 것이 차려지지 않은 터라 반응들이 폭발적이다. 그들은 나의 수업에서 디자인와 한국말을 연결해 나름의 자부심을 얻어간다. 세종이 만든 한글의 의미도 새롭게 이해하고 있다. 자신이 늘 쓰는 말과 글에 자부심을 갖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학생들의 에세이를 통해 확인한다. 그래서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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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를 읽으면서도 그런 줄거움을 느꼈다. 한국일보에 한국말로 쓰여진 한글을 읽으며 한국사람들도 한국사회에 자부심을 갖는다니 이 얼마나 즐겁고 기쁜 일인가. 15세기 인쇄술이 모국어 말과 글의 확대에 기여했듯, 21세기 디지털이 한국말과 한글의 확대에도 큰 기여를 할 것이다. 디자이너들은 이 흐름을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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