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학술대회를 마치고

by 윤여경

지난 6월13일 두시 첫 한국디자인사학회 학술대회가 있었습니다. 영광스럽게도 저는 첫 발제를 하신 최범 샘의 토론자로 참여했습니다. 한재준 선생님께서 학술대회에서 토론했던 내용 정리를 부탁하셔서 제 발언내용을 소개하려 합니다.


오래전 저는 최범 샘을 통해 디자인에 새롭게 눈의 떳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전문분야와 산업에 한계지어진 디자인 관점에서 벗어나 문화와 생활로 확대된 디자인 관점을 얻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은 아쉬웠습니다. (학회 부회장이신) 안영주 선생님 및 몇몇 분들과 최범 샘을 고문으로 모시고 공부를 지속하기 위한 모임을 꾸렸습니다. '디자인인문연구회'라는 공부모임입니다. 몇년간 이 모임을 함께하면서 또 많은 것을 깨닫고 배웠습니다. 작은 공부 모임이었는데 이렇게 학술대회를 통해 발제자와 토론자 그리고 사회자로 만나니 반갑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최범 샘은 최범 샘답게 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일종의 '디자인 역사철학'이라고 할까요? 다소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누군가 언젠가 어디서든 꼭 해야만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일찍 원고를 받은 저는 공부하는 마음으로 몇차례 원고를 읽고 메모했습니다. 제 발언시간은 길어야 10~15분이었지만 최소한 한두시간 이야기할 내용을 갖고 참여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발제 내용이 무겁고 넓고 깊은 생각을 요구했거든요. 생각을 하면서 문득 이런 내용이 디자인 분야의 학술대회에서 다뤄진다는 것이 참 초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제가 아는 디자인 분야는 늘 눈앞의 현상을 쫓기에 급급해 뒤를 돌아보거나 멀리 생각할 여유가 없었거든요.

첫 발언은 선생님의 마지막 발언을 이어 '담론과 실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디자인 분야는 대부분 '실천'이 대세였습니다. 담론이 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실천적 역량을 키우기 위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어디는 어떤 스타일로 한다더라" "누구는 어떤 디자인방법을 쓴다더라" "요즘은 이런게 트랜드라더라" 등등 실천을 위한 담론은 대부분 외국의 주목할만한 사건과 트랜드를 되도록 빨리 우리나라에 소개해 적용해 보려는 노력이었죠. 이런 접근은 단시간에 한국디자인 분야의 역량을 키우는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덕분에 현재 한국디자인 분야의 위상은 대단합니다. 한국디자이너들도 예전처럼 선진국 디자인의 답습에 그치지 않습니다.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이미 선도하는 자리에 있기도 합니다. 학술대회 한켠에 민본 선생님이 참여하시는 모습을 보았는데, 이번에 홍대에 오신 민본 선생님은 '애플'에서 글꼴 작업을 주도하셨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와 '뉴욕' 글꼴은 모두 민본 선생님 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참 신기하지 않나요? 서양 사람들의 자랑인 '애플'을 대표하는 알파벳 글꼴이 한국사람(디자이너)의 손에서 탄생했다는 것이. 그걸 맡긴 사람이나 만든 사람이나... 세상은 참 묘하게 흘러갑니다. 아무튼 BTS와 기생충에 앞서 이미 한국기업과 한국디자이너들은 세계적인 활약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정도면 실천적 역량은 어느정도 갖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서양디자인을 잣대로 삼아 우리의 줏대를 세워왔다면 이제는 한국디자인 역량을 기반으로 한국디자인도 나름의 잣대를 차릴 때가 온 것입니다. 실천을 넘어 담론이 필요한 때가 온 것이죠. 이런 점에서 올해 한국디자인사학회의 출범은 아주 의미있는 사건입니다. 코로나 여파로 첫 학술대회가 온라인으로 열리고, 학술대회 신청자가 200명을 훌쩍 넘었으며, 현재 접속자도 140여명에 다다릅니다. 뭔가 거대한 전환을 위한 파도가 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이 파도를 타고 있는 것이고요. 사정상 학술대회에 참여하지 못한 분들도 곧 이 파도에 합류할 것이라 기대합니다.

미국 실용주의 철학의 대부 리처드 로티는 담론의 장을 꾸리려면 먼저 이론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담론은 여러사람의 함께하는 대화입니다.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먼저 각자 이야기거리가 있어야겠죠. 각자의 이야기거리가 바로 이론입니다. 이론은 이성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이성이란 한국말로 '생각하기'입니다. 지금까지 실천적 담론에 있어 각자의 이야기는 '디자인+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거리는 '디자인+경험'에 기반한 '디자인+생각'입니다. 앞으로 이어질 디자인담론(대화)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디자인경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먼저 디자인생각을 차려야 할 것입니다. 경험과 생각으로 차려진 디자인 이야기(이론)가 있어야 '대화=담론'의 장인 한국디자인사학회도 의미가 생길 것입니다.

최범 샘의 발제 제목의 '디자인사 연구의 과제와 방법 : 왜, 무엇을, 어떻게'입니다. '왜'는 인과관계를 찾는 과정이고, '무엇을'은 대상을 찾는 과정이고, '어떻게'는 방법을 찾는 과정입니다. 하나하나가 아주 집중된 논의를 요구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30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이 내용을 모두 언급하기는 어렵습니다. 보통 선생님은 발표시간을 많이 초과하시는 터라 함께하는 토론자로서 많이 긴장했는데 선생님은 기적적으로 시간에 딱 맞추어 필요한 말씀을 잘 요약해 주셨습니다. 고수의 내공이 느껴졌다고 할까요.




"왜 디자인사 연구가 필요한가?"

선생님은 이 질문을 던지고 외적요인과 내적요인으로 구분해서 이야기하셨습니다. 외적요인은 '사회적 인정'입니다. 어떤 분야에 대해 알고 싶으면 당연히 그 분야의 역사를 읽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학문'이라고 여겨지는 대부분 분야에서는 이미 '역사'연구가 당연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국디자인분야에서는 '역사연구'를 전면에 내세운 학회나 단체를 쉽게 찾기 어려웠죠. 이런 점에서 디자인사학회의 존재만으로 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디자인에 대해 알고 싶다면 아마 가장 먼저 한국디자인사학회의 문을 두두리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만큼 역할과 책임이 무겁습니다.

내적요인은 디자이너들의 역사의식입니다. 일종의 시간감각이라고 할까요. 제가 요즘 자주 언급하는 최봉영 샘은 일찍이 '통統'과 '가家'를 중심으로 집단 이론을 세우고 한국사회를 분석하셨습니다. 디자이너라는 직업도 이어지는 '통'이 있고, 모여 있는 '가'가 있습니다. 현재 한국디자인 공동체는 통의식보다는 가의식에 가깝습니다. 쉽게 말해 역사의식이 다소 부족한 직업공동체에 가깝다고 할까요? 역사의식이 있다면 멀리 독일 바우하우스에 닿아 있습니다. 물론 디자이너로서 한발은 그쪽에 담고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한국사람으로서 다른 한 발은 한국에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디자이너의 역사의식은 반쪽에 머물러 있습니다.

조선 유교 사회의 통의식은 '종묘' '문묘' '가묘'에서 비롯되듯 '통'의식은 일종의 계보입니다. 내가 속한 분야의 조상을 찾고 기리는 마음이죠. 이런 통의식이 바로 내적인 역사의식입니다. 하지만 과거 유교사회처럼 무조건 조상을 기리는 것을 어리석고 위험합니다. 우리의 다른 한 발이 새로운 문명에 다아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되죠. 그래서 비판적 통의식이 요구됩니다. 왜 나는 남의 나라 문명을 그대로 따라야 하나? 왜 나의 다른 한 발은 이모양 이꼴이 되었을까? 서양과 한국에 동시에 담긴 양쪽 발을 서로 견주면서 상호 비판적이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앞으로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미리미리 생각해 두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비판적 통의식입니다.


"디자인사 연구의 목적은 무엇인가?"

'무엇'이라는 한국말은 '무리' '물음'과 바탕을 함께 합니다. '무엇'을 물어본다는 것은 바로 '무리'를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이라는 질문에 대답하려면 '무리짓기'를 해야 합니다. 역사 또한 무리짓기 과정의 다름아닙니다. 역사는 어떤 결과에 대한 원인을 찾아 무리를 짓는 행위입니다. 그렇다고 다짜고짜 원인을 찾아 무조건적으로 나열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역사가 아니라 수집입니다. 심지어 수집가도 나름대로 이유를 갖고 수집을 하듯 수집조차 나름의 목적과 이유가 있기 마련입니다. 하물며 역사가는 어떻겠습니까. 수집가보다 훨씬 더 많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역사가의 그 생각은 바로 '목적'입니다. "내가 왜 역사를 쓰려는 거지?"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면 역사는 커녕 역사를 구성하기 위한 자료 수집조차 불가능합니다.

"역사가 중요해" "역사가 필요해" "역사는 넘 좋아" "역사는 멋져"라고 말하는 것은 역사가의 태도라기 보다는 역사를 읽는 독자의 태도입니다. 내가 어떤 분야과 사건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당연히 역사가 필요하니까요. 반면 역사가는 위와 같은 태도를 넘어 자신이 어떤 것을 역사적 목적으로 삼을지 먼저 고민해야 합니다. 어떤 사건을 주목하고, 그 사건의 가치판단을 하고, 그 사건이 어떻게 되었으면 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가령 정치의 역사를 쓰려는 사람은 자신이 주목하는 국가와 정치체제가 무엇인지 가치판단을 해야 합니다. 만약 민주주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하면 역사가의 시선의 자연스럽게 '고대아테네'와 '프랑스혁명' '미국독립'에 머무를 것입니다. 한국의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이 사건들을 가져와 한국의 실정에 맞게 재구성하게 되겠죠. 이렇듯 역사가는 그냥 역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적을 정당화하기 위해 역사를 쓰는 것입니다. 앞선 글에서 은유했듯 무작정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목적지가 있는데 어렵게 역사를 쓰는 사람에게 목적이 없을리 없죠.

선생님은 디자인사의 목적을 두가지로 구분해 소개하셨습니다. '정당화'와 '성찰'입니다. 정당화를 위한 역사는 일종의 보수적 태도입니다. "우리가 이정도 했으니 얼마나 대단해!"라며 자화자찬하는 역사죠. 물론 이런 역사는 반드시 있어야만 합니다. 이런 역사가 있어야 현재 자신의 존재에 있어 자부심과 자존감을 가질 수 있고, 남들에게도 존중 받을 수 있으니끼요.

그러나 정당화의 역사는 유용한만큼 위험하기도 합니다. "나만 멋져"라는 뽕에 취하고 미치면 그 이상의 미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말에서 '미치다'는 '밑에 갇히다'입니다. 정당화의 역사는 사람들을 역사의 밑에 가두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정당화 역사는 위험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문을 열어놔야하죠.

그 문을 여는 역사가 바로 '성찰'의 역사입니다. 정당화의 역사가 필연성을 추구한다면, 성찰의 역사는 우연성을 주장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은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라 우연히 이렇게 된거야. 그러니까 정신차려야해!"라고 말하는 태도죠. 이런 역사의식은 현재에 취하지 말고 변화할 것을 요구합니다. 때론 현재 자체를 크게 부정하고 완전히 새로운 혁명을 꿈꾸기도 하죠. 과거 독재나 전제정권에서 민주주의나 사회주의 역사를 쓰는 것은 그 자체로 크게 위험한 행위였습니다. 쓰는 것을 넘어 읽고 생각하는 것조차 금지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성찰의 역사가 없으면 그 사회와 분야는 크게 후퇴하거나 추락합니다.

정당화와 성찰의 역사는 모두 필요합니다. 저는 한국디자인 분야에는 두 역사의식이 모두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밀도입니다. 한국디자인역사에서 정당화는 모두 서양디자인에 가깝냐 머냐의 문제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성찰도 그런식으로 이루어지죠. "그거 외국에도 있는거야?" 없으면 "에이~"하면서 외면하는 실정이니까요. 한국의 디자인의 역사라고 여겨지는 것들도 초기 외국유학자들과 외국의 문물에 기준을 두고 판단됩니다.

두번째는 근거부족입니다. 근거는 다름아닌 '해석'입니다. 자료들은 잔뜩 있는데 이걸 해석할 관점이 빈약합니다.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할까요? "이것 봐 멋지지 않아?"라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걸 소개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왜 그것이 의미가 있는지, 앞으로 어떤 것을 주목해야 하는지 등등의 설득력이 있어야 합니다. 모두 해석의 영역입니다. 선생님은 이 해석 문제를 다음 챕터 '어떻게'에서 다루십니다.


"디자인사 연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는 '방법'에 해당됩니다. 디자인사 연구방법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죠. 저는 이 주제는 쉽게 토론될 수 없는 내용이라고 말했습니다. 졸저인 <역사는 디자인된다>는 사실 역사철학을 다룬 책입니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여러 역사철학과 방법론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역사연구 방법에 엄청난 뿌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역사연구방법을 거론하기 시작하면 "학문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까지 나아갈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거론하고 토론하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운동이 필요합니다. 물론 시간도 많이 필요하고요. 선생님은 이 큰 주제를 4가지로 요약하셨습니다. 하나하나 모두가 많은 대화를 요구합니다. 이번에는 맛보기 정도로 간략히 제목을 해석하는 정도만 다루어 보겠습니다.

1. 역사는 해석이다. -> 날것은 역사가 아니다.

2. 제도의 역사를 넘어서야 한다. -> 제도의 역사가 전부는 아니다.

3. 진보사관을 지양해야 한다.

4. 연구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역사는 크게 3개의 층위로 구성됩니다. 자연환경이나 언어처럼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최하층이 있습니다. 이 층은 큰 변화가 없습니다. 바로 위에 구조변동이 일어나는 층이 있습니다. 그리고 맨 위층에 현상변화가 있습니다. 역사는 주로 2층 구조와 3층 현상을 다룹니다. 3층 현상은 역사라기 보다는 일종의 구조 변동의 원인을 찾기 위한 사료로 이용됩니다. 그래서 현상은 날것에 해당됩니다.

'날것'은 바로 역사구성을 위한 사료입니다. 요리에 비유하면 요리재료죠. 선생님은 한국디자인사는 날것=재료에 그쳐 있다며 요리=해석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리를 하려면 어떤 요리를 할 것인지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김치를 하려면 김치에 필요한 재료들이 요구되듯, 역사구성에도 목적이 있어야 여기에 맞는 사료를 수집할 것입니다.

한국디자인사는 대부분 제도와 사람으로 구성됩니다. 물론 제도와 사람은 아주 중요합니다. 선생님은 디자인역사가 여기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주장입니다. 제도와 사람은 전문분야에 한정된 역사입니다. 제도와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 사회적 요구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회적 요구가 무엇이었는지 밝히는 역사도 필요하겠죠. 이 필요성을 의식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정치학의 예를 들어보죠. 정치학은 크게 3가지로 구성됩니다. 정치제도, 국제정치, 정치철학입니다. 이 3가지에 모두 역사가 있습니다. 제도의 변화를 다루는 역사, 국제정치의 변화를 다루는 역사 그리고 정치에 대한 생각 변화를 다루는 역사입니다. 사실 정치제도와 국제정치, 정치철학 관련 책을 보면 대부분 역사책처럼 서술됩니다. 정치철학책도 일종의 지성사나 사상가에 가깝습니다. 사실 '역사'는 '역사학'이라는 하나의 분야이기 보다는 여러분야가 공유하는 바탕이라고 볼 수 있죠.

디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디자인제도사만 아니라 디자인트랜드 변화도 있고 디자인생각을 다루는 디자인지성사도 있어야 합니다. 의식주 문제를 다루는 생활사, 문화사도 있어야 하고요. 사실 할 것이 한두개가 아닙니다. 이런점에서 우리에게는 아직 많은 기회가 있다고 봐야겠죠.

'진보사관'은 여러 논란이 제기되는 부분입니다. 이 문제는 역사학계조차 의견이 분분합니다. 19세기에는 진보사관이 인정받지 못했고, 20세기는 진보사관이 주류를 이루었고, 21세기는 다시 진보사관이 후퇴하는 분위기입니다. 지금은 아예 '진보사관' 개념을 재정립하려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최범 샘이 지적하신 진보사관은 중세의 천년왕국이나 20세기 마르크스주의적 진보사관입니다. 이를 역사주의라고 말하는데 역사가 '탄생-성장-죽음'으로 구성되어 역사가 마치 사람과 같은 생물처럼 여겨지는 경우를 말합니다. 한국 디자인사도는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기술됩니다. 선생님이 예를 드셨듯. 초창기-혼란기-육성기-성장기-도약기라고 말하죠. 마치 디자인현상 변화를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 발달하는 과정으로 여기고 있죠.

역사철학자인 크로체가 말했듯 사실 모든 역사는 현대사입니다. 현재의 입장에서 과거를 보기 때문에 현재 결과를 규명하는 방식으로 역사가 기술되기 마련이죠. 이런점에서 역사가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구성하지 않으면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으니까요.

개인적으로 진보사관에 대한 저의 소견을 밝히면, 진보사관은 현재에 머무르면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현재에 갇힌 역사는 역사가 아닙니다. 역사가는 항상 현재가 아닌 미래에 시선을 두어야 하죠. 과거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거쳐 미래의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개연성 있게 규명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가가 할 일이죠. 독자들은 역사책을 읽으며 역사가가 가르키는 미래 즉 목적을 함께 바라보며 그 역사가의 가치판단을 평가할 것입니다. "와 진짜 그렇네" 아니면 "뭔 개소리야"라는 판단을 내리겠죠. 그래서 역사가는 보통 두가지 관점으로 평가됩니다. 자신이 설정한 목적과 이를 증명하는 사료들의 개연성입니다. 현재를 정당화시키려는 역사가는 현재가 미래에도 지속되리가 주장할 것이고, 현재가 꼴보기 싫은 역사가는 미래는 반드시 바뀔 것이라 주장할 것입니다. 대놓고 주장은 안해도 과거의 사실들을 통해 그런 냄새를 풍기겠죠. 이런점에서 과연 '진보사관'이 아닌 역사가 있을까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지양止揚'도 '역사를 가볍게 생각하는 것을 그치고(止) 더 큰 논의로 나아가야 한다(揚)'는 취지에서 말씀하신 것이라 생각됩니다.


서양디자인사와 한국디자인사

마지막으로 한국디자인사를 어떻게 볼 것이냐입니다. 이는 최범 샘이 말씀하신 연구기반에 대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사실 한재준 샘이 요청하신 글은 이 내용에 관련한 것입니다. 저는 굳이 칠판을 공유하고 도식을 그려가며 한국디자인에 대한 저의 소견을 이야기 했습니다. 아무래도 제 직업이 인포그래픽 디자이너라. ㅎㅎㅎ

우리 주변을 둘러보세요. 조선시대의 것이 얼마나 있나요? 먹을 것외에 옷이나 주거 등 생활방식은 모두 서양에서 온 것들입니다. 우리는 이것들을 통틀어 '디자인'이라 말합니다. 이 디자인들은 한국이나 중국, 인도가 아니라 서양에서 비롯된 것들입니다. 우리만 그런게 아닙니다. 아메리카, 아프리카, 중국, 인도 심지어 북극에 가도 비슷한 환경을 접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서양문명이 디자인한 생활방식을 채택했습니다.

디자인이 종교라면 우리는 모두 서양디자인종교로 개종한 셈입니다. 서양의 생활방식을 믿고 이루며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이런점에서 서양디자인사는 디자인의 보편적 기준입니다. 그래서 디자인에 보편적 역사가 있다면 마땅히 인상파에서 몬드리안, 바우하우스를 거쳐 다국적 기업에 이르는 서양디자인사에 그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서양의 것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말과 한글, 한국음식과 일부 습관은 여전히 한국만의 고유한 특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말'의 경우는 수천년동안 한국사람들이 쓰던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세종께서 일찍이 '한글'을 잘 차려놓으셔서 근대에 들어와 표음문자가 대세를 이룰때 우리는 바로 세종이 미리 차려놓으신 '한글'을 채택할 수 있었습니다. 베트남의 경우 '한글' 같은 체계가 없어 결국 한자를 버리고 알파벳을 채택했죠. 발음을 표기하는 문자시스템에 있어 히라가나보다는 알파벳이 훨씬 유익하거든요. 또 많은 사람들이 이미 그걸 증명했고요. 음식이야 당연히 말할 것도 없죠. 쩝쩝.

그래서 디자인 역사는 서양'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도' 있습니다. 한국에도 있는 디자인역사는 두가지로 쪼개집니다. 적극적으로 서양의 디자인을 받아들인 측면과 아직 서양의 방식이 미치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그 이유가 있겠죠. 그래서 이 측면은 한국'만'의 디자인사로 여길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디자인사는 모두 서양의 디자인을 얼마나 받아들였는지 살피는 지표였습니다. 서양디자인사를 잣대로 놓고 우리가 얼만큼 가까이 갔냐 따져보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이것대로 중요합니다. 하지만 다른 측면 "왜 우리는 서양의 디자인을 받아들이지 못했는지"도 중요합니다. 왜 우리는 한자를 버리면서 그 좋은 알파벳을 문자로 가져오지 않았을까? 왜 우리는 창씨개명을 한 경험이 있는데 영어이름을 전면적으로 수용하지 않았을까? 왜 우리는 한국말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왜 우리는 그 맛있는 파스타와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지 않을까? 왜 우리는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을까? 왜 우리는 여전히 높낮이말을 쓸까? 등등 이런 것들은 모두 디자인관점에서 살펴볼 것들입니다.

저는 서양디자인사가 들어와 밀어버린 한국디자인사도 흥미롭다는 생각입니다. 현재 한국디자인사에는 "왜 한국디자인은 자생하지 못하고 실패했을까?"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없습니다. 20세기 초 서양의 마지막 예술가와 장인들은 계급의 몰락과 산업혁명으로 살아남기 위해 몸무리쳤습니다. 예술가는 전통적 기준과 자존감을 잃었고, 장인들은 공장식 대량생산에 밀려 일자리를 잃었죠. 한국은 달랐을까요? 19세기 말 개항되면서 한국도 똑같은 과정을 겪었을 것입니다. 한국의 마지막 장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은 어떤 노력을 했고, 그 결과는 왜 실패했을까요? 우리는 마지막 장인들을 그냥 '인간문화재'라는 말로 대충 그냥 퉁쳐서 넘어가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요.

최범 샘은 이미 서양디자인을 수용하는 한국디자인사의 큰 줄기를 마련하셨습니다. 의식주에 있어 '의'는 19세기 말 갑오경장에서 시작됩니다. 상투를 자르고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습니다. 한복을 양복으로 갈아입고 모던뽀이과 모던껄이 됩니다. 서양을 옷을 입고 한국의 밥을 먹고 초가집과 기와집에서 90년을 살았습니다. 1970년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면서 주거방식의 변화가 시작됩니다. 초가지붕과 기와지붕이 치워지고 철근과 콘크리트가 그 자리를 대체합니다. 넓은 기왓집이 사라지고 높은 빌딩이 들어서죠. 의와 주는 바뀌었지만 음식은 여전합니다. 우리는 김치찌게를 즐깁니다. 그만큼 음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반증이죠. 한국말은 말할 것도 없고요.

저는 최범 샘께 한국디자인사에 있어 자생적으로 디자인을 확립하는데 실패가 원인과 그 증거를 여쭤보았습니다. 조선사회에서 미술은 딱히 직업이 없고, 양반계급의 사치와 유흥이었기에 만약 한국디자인사를 새롭게 쓴다면 미술보다는 공예에 방점이 찍힐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국디자인에 있어 서양디자인에 밀려 실패한 점이 있다면 공예적 실패일 것이고, 서양디자인에 있어 밀리지 않고 살아남은 점이 있다면 이 또한 공예적 성공일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저는 한국공예를 전면적으로 다시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선생님은 신중하셨습니다. '좀 더 생각을 해보자'라는 취지로 답변하셨죠. 한재준 샘께서 몇가지 신라와 고려, 조선의 사례를 들어 이것들 또한 한국디자인의 역사로 가져올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최범 샘은 그것 또한 역사가의 판단에 달려 있다며 신중한 태도를 취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역사가로서가 아니락 역사평론가로서 최선의 대답을 하신 것입니다.

저와 한재준 선생님의 질문은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입니다. 앞으로 한국디자인사학회가 나아갈 방향이기도 합니다. 저는 한국디자인사학회에 사명이 있다면 지금까지 한국디자인사가 주목하고 진행해 왔던 태도에 갇히지 말고 과감하게 문을 열고, 아니 벽을 허물고 디자인사 밖으로 나오는 것이란 생각입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한국디자인계는 이미 그럴 역량을 충분히 갖추었습니다. 지난 세월을 부정하고 서양디자인을 딛고 다시 일어나 인정을 받았습니다. 전세계의 디자인분야에 새로운 디자인의 방향을 제안할 자격을 얻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실천적 역량에 기반한 담론입니다. 담론을 위해 한국디자이너들은 나름의 생각을 해야할 것입니다. 나아가 자신을 생각을 적극적으로 공유해야 합니다. 디자인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감하게 디자인분야를 개방하고 다른 분야들와 적극적으로 교류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한국디자인이 나아갈 방향, 목적을 함께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이 과정은 곧 한국디자인 역사를 새롭게 주목하고 한국디자인 역사를 새롭게 써내려가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한국디자인사학회의 첫 학술대회가 온라인으로 진행되어 너무 좋았습니다. 편리했습니다. 유익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은 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채팅으로 질문하는 것도 신박합니다. 동시간에 질문이 가능했고, 말을 글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질문도 잘 정리되어 전달되었습니다. 대답하는 사람 또한 질문을 보며 대답할 수 있어 좋았을 것입니다. 저는 무엇보다 단상이 없어 좋았습니다. 단상이 없으니 발제자와 토론자의 권위가 상실되었습니다. 덕분에 좀 더 수평적으로 대화가 오갈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시도와 새로운 환경은 혼란을 일으킵니다. 질의 응답과 수평적 대화가 잘 오고가기 위해서는 섬세한 콘트롤이 필요합니다. 이런점에서 이번 학술대회를 준비하신 한국디자인사학회 분들께 고마움을 전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가했음에도 학회분들의 노고 덕분에 큰 혼란없이 제시간에 무사히 학술대회를 마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학회 관계자로서 또 참여자로서 너무 뿌듯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강조하는 마음으로 다시한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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