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와 객체에 대해 이제 조금 이해가 될 것도 같다. 주체와 객체는 그 자체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둘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원인과 결과의 순서에 따라 주체와 객체의 상호성이 달라지는데, 인과관계 순서는 동사의 위치에서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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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말과 중국말(주체+동사+객체)
주체 다음에 동사가 오고 그 뒤로 객체가 오면 주체의 행동이 원인이고 객체는 결과가 된다. 이런 상황에선 자연스럽게 주체의 능동성이 중요하다. 객체는 주체가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달린 수동적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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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과 일본말(주체+객체+동사)
교착어는 주체와 객체가 모두 나열되고 동사가 맨 뒤에 온다. 그래서 인과관계에서 주체와 함께하는 객체가 모두 원인이 되고 마지막 동사가 결과로 나타난다. 이런 상황에서 능동과 수동의 구분에 모호하다. 그래서 교착어 마지막애 등장하는 동사는 영어의 동사와 많이 다르다. 때문에 최봉영 샘은 이를 '풀이말'이라 이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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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감
원인과 결과에서 능동과 수동이 명확하게 구분되면 책임은 전적으로 주체의 몫이 된다. 그래서 무조건 주체가 중요하다. 주체는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해야 하는 유일한 존재다. 반면 능동과 수동의 구분이 모호한 교착어는 주체와 객체가 책임을 나누어 갖는다. 그래서 주체의 책임감이 떨어진다. 그 이유는 결과를 내기에 앞서 주체는 객체를 함께하는 대상으로 존중하고 고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체와 객체는 서로 책임을 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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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디말과 낱말
한국말과 영어/중국말과 가장 큰 다른 점은 말의 구성요소다. 영어는 낱말(단어)로 구성되는데 한국말은 마디말로 구성된다. 그래서 영어의 낱말의 순서가 중요하고, 한국말은 마디말의 순서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가령 영어는 'school to go I"라고 쓰기 어렵지만, 한국말른 "학교에 간다 나는"이 어색하지 않다. 그래서 이미 주체와 객체가 모호해진 한국말에서 인과관계의 순서 또한 중요하지 않게 된다. 즉 한국말은 주체와 객체 그리고 풀이(동사)를 모두 함께하는 상태로 여긴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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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철학의 흐름은 새삼 객체성을 주목하고 있다. 객체들에게 새로운 주체성을 부여하려 한다. 만약 진정 그럴 마음이라면 이분들께 권하고 싶다. "한국말을 배우세요. 안되면 일본말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