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과 '모'의 차이에서 비롯된 철학적 상상

by 윤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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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점(포인트)'와 '선(라인)'을 갖고 서양사람들의 철학을 상상해 본다. 서양사람들에게 모든 것은 '점'에서 비롯되어 '선'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선'은 '점'들의 집합이다. 이때 '점'은 주체이고 '점들'은 '주체들'이다. 이 주체들은 서로를 객체로 대한다. 이 상호 주체들 혹은 상호 객체들이 모여서 하나의 선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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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점(포인트)'와 '선(라인)'을 한국말로 하면 '모'와 '금'이다. '모'는 '금'과 '금'이 만나는 지점에 만들어진다. 그래서 한국사람에게 인식의 시작은 '모'라기 보다는 '금'이다. 즉 한국사람의 인식의 시작은 주체나 객체의 '점=모'가 아니라 모든 것이 관계된 자체, 쉽게말해 함께 있는 그 자체에서 비롯된다. 이런점에서 '금'은 '함께성'을 의미하며, 이 함께성은 주체(점)들의 집합인 서양의 '라인(선)'과는 상당히 다른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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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서양의 '점'을 사람으로 치면, '독립된 존재로서의 사람'에 해당된다. 반면 한국의 '모'는 '함께성을 담지한 존재로서의 사람'이다. 서양사람들에게 주체란 '점'이고 관계는 점들의 집합(선)이다. 그래서 서양사람들에게 주체가 있어야 관계가 생기기 때문에 주체성이 없으면 관계성 혹은 함께성도 불가능하다. 반면 한국사람에게 주체란 '모'이고 함께성(선)이 만나는 지점이다. 그래서 한국사람은 함께성이 없으면 주체도 없다. 그럼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주체가 먼저인가, 함께가 먼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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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자. 과연 내 주변의 모든 것과 완전히 동떨어진 주체라는 것이 가능할까? 아니면 '나'라는 주체는 한국말 그 자체에서 말하듯 어딘가에서 '나온 존재'이기에 주변의 모든 것들과 동떨어진 주체라는 개념 자체가 불가능할까? 이 질문은 다시 이렇게 물어 볼 수 있다. 과연 '점'이란 개념과 '모'란 개념 중 현실에 좀 더 가까운 개념은 무엇일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 '점'이란 개념, '점'에서 비롯된 '선'이란 개념, '선'에서 비롯된 '면'이란 개념, '면'에서 비롯된 '입체'란 개념들이 모두 의심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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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선면'은 디자인에 있어 아주 중요한 개념이다. 이 추상적 요소들은 구성을 위한 가장 기초 요소로서 여겨지기 때문이다. 나아가 '구성주의'로 비롯된 '구조주의'(사실 이 표현도 언어학에서 비롯되었지만)조차 그 바탕이 아주 허술한 개념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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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추상적 요소와 구성, 구조가 디자인개념의 근간이며 현대 생활문명의 근간이다. 그렇기에 나는 '점-선-면'을 '모-금-겉(속)'으로 대체하는 한국말의 인식이 굉장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다. 어쩌면 빈약하고 허술하게 지어진 현대문명의 구성과 구조를 근본적으로 보강할 수 있는 개념이 '모'와 '금' 그리고 '겉과 속'의 개념 속에 내포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걸 찾아야 한다. 만약 찾게 된다면 디자인의 개념과 방법뿐만 아니라 문명을 인식하는 생각조차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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