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새로운 기준

by 윤여경

오전에 아이랑 킥보드 놀이를 하면서 최봉영 샘과 통화를 했다. 정신없는 와중에 몇가지 중요한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문명'과 '한국말에서 논리의 흐름' 그리고 겿씨말 '이'가 어떤 경험과 연결되어 있는지 등등. 이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한국문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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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지만 한국'문명'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문명을 구분한 헌팅턴은 동북아 문명은 중국문명과 일본문명으로 구분하고 한국문명은 토인비의 의견을 따라 중국에 속한다고 보았다. 지리적 위치도 그렇고 지난 1500년 동안 한국의 지배층과 지식인들이 주로 한자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한국문명이 중국문명권에 속한다고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왜 굳이 따로 분류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탈아입구를 추진한다해도 문명이라는게 그렇게 쉽사리 바뀌는 것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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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한국문명'이란 근거가 있을까? 지리적 위치와 문자라는 강력한 근거가 있는데 과연 한국과 중국을 문명적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 최봉영 샘이 얼마전부터 문명 이야기를 하실때부터 이런 고민을 했다. 만약 한국만의 독자적 문명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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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문득 베트남 생각이 났다. 한국처럼 중국과 지리적으로 붙어있는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만큼이나 오랜시간 한자를 사용하다가 프랑스 식민지가 되면서 알파벳으로 바꾸었다. 문자란 것은 이런 것이다. 그냥 바꾸고자 하면 쉽게 바뀌는 것이다. 사실 한국도 한글이 없었다면 금방 일본 가나를 썼을지도 모른다. 해방이후에는 알파벳을 사용했을지도 모르고, 아무튼 한국사람들에게는 한글이라는 신박한 문자가 있었다. 한자에서 한글로 바뀌기 까지 얼마나 걸렸을까. 불과 50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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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가 이렇게 쉽게 바뀔때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말'이다. 말이 바뀌려면 그 말을 쓰는 사람이 모두 사라져야 한다. 식민지가 되더라도 몇세대가 지나야 말이 바뀔 것이다. 최소 200년은 걸려야 한다. 그만큼 말이란 것은 바뀌기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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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은 문화보다 큰 상위 개념이다. 만약 문자가 아니라 말로서 문명을 구분한다면 한국문명은 그 구조상 중국문명보다 일본문명에 가깝다. 이 구조에는 몽골과 말레이시아, 인도동북부 사람들이 포함된다. 교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의 문명 카테고리에 묶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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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착어가 하나의 큰 문명이라면 하위 카테고리 작은 문명은 각 민족 혹은 국가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로 구분될 것이다. 한국문명이라면 한국말에 해당된다. 이 한국말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시기에는 몽골말이 많이 섞이고, 어떤 시기에는 중국말과 한자어가 많이 섞이고, 어떤 시기에는 일본말이 많이 섞이고, 어떤 시기에는 미국말이 많이 섞인다. 지금 한국말은 여러말들이 마구마구 섞여 있는 상태다. 선생님과 통화하면서 '한도 끝도 없이'라는 표현을 듣고, 선생님이 같은 의미인 한자(한限)와 한국말(끝)이 반복되는 점이 재밌다고 하셨다. 이것은 문화다. 문화란 한국말에 어떤 문명의 말이 섞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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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말을 듣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역사의 과정에서 수많은 말이 섞이는 것이 '문화'의 영역이라면, 바뀌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은 한국말은 '문명'의 영역이 아닐까. 바뀌는 말들이 문화 변화의 증거라면, 바뀌지 않는 말들은 문명이 유지된다는 증거가 아닐까. 그렇다면 한국말 속에 한국사람만의 문명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한국말 바탕에 있는 경험을 드러냈을때 다른 문명과 다른 인식구조를 가지고 있다면 한국문명을 또 하나의 문명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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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문명(civilization)과 문화(culture)를 잘 구분하지 않는다. 역사적 서술 속에서조차 잘 구분 되지 않는다. 그래서 <고대문명교류사>를 쓴 정수일 교수처럼 문명단위의 역사를 다루는 학자들은 문명, 문화에 대한 자신만의 개념 구분을 밝힌다. 나 또한 과거 두 개념을 구분하려 노력한 적이 있기에 개념구분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있다. 그런데 말을 갖고 문명과 문화의 구분하면 또렷해진다. 변하는 말은 문화이고, 변하지 않는 말은 문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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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코로나 이후 세계가 다시 좁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20세기 문명론은 헤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함께 살아갈 필요가 없어지면 굳이 문명을 구분할 이유도 없으니까. 그렇다고 문명론이 의미없지는 않다. 어쩌면 미래 문명론은 토인비와 헌팅턴의 구분처럼 지리와 문자가 아니라 새로운 기준을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 코로나로 오프라인 세상은 분리되고 있지만 반대급부로 온라인 세상은 급속히 가까워지고 있다. 디지털로 연결되는 세상에서 새로운 문명론을 구상한다면 그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기존의 '지리'적 구분보단 '말'로서 문명을 드러내는 시도를 하는 최봉영 샘의 접근이 더 유효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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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문명의 기준이라면, 기존 문명의 기준이었던 '지리'와 '문자'는 바뀌는 말의 근거로서 문화의 기준이 된다. 이렇게 문명과 문화의 분명한 기준을 가지면 애매모호한 말로 문명과 문화를 구분할 필요가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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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은 지역과 문자기록의 차원이 아니라 사람이 말로서 세상을 보는 관점의 차원으로 바뀌어야 한다. 말이 문명의 기준이 되면 기존에 폭력적으로 구분되었던 문명의 구분이 완전히 재편되어야 한다. 자신들만의 고유한 말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문명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대 문명의 숫자는 이 시대 말의 숫자와 같게 된다. 그 말을 쓰는 사람이 한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그 말의 마지막 문명인이 되는 셈이다. 이 문명론이야 말로 21세기에 걸맞는 문명론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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