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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러 생각

양극화와 신분제

by 윤여경

나는 최근의 사건들과 현재 코로나19로 일어나는 사회적 현상들을 이념이나 이익, 정파나 당파적 다툼보다는 이 사회가 어떤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지 그 징후나 증거로 보는 경향이 있다. 나는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화두로 '양극화'를 꼽는데, 현대 사회의 양극화 현상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는 생각이다. 이제 남은 것은 누가 앞서고 누가 뒷서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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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의 끝은 신분제이다. 근대화의 가장 큰 성과로 신분제 파괴를 꼽는다. 사람들은 앞에선 신분제를 혐오하지만 뒤에선 신분제를 옹호한다. 앞과 뒤를 고루두루 살핀 결과 사람들은 민주제 보다 오히려 신분제를 더 선호하는 듯 싶다. 문제는 내가 어떤 신분에 속하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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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이다. 상위 신분의 비율을 몇%로 유지하냐이다. 과거 고대 그리스 폴리스에서 시민은 약 10%정도였고, 조선시대 양반계급의 비율도 약 10%였다. 이 비율을 적절하게 유지해야 신분제가 유지된다. 너무 많으면 신분제의 의미가 퇴색되고, 너무 적으면 혁명의 위협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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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능력있는 사람들을 신분으로 흡수하는 장치도 필요하다. 문제는 어떤 능력이냐인데... 조선사회는 잘 알다시키 '사농공상'의 순서로 신분이 매겨졌다. 조선사회에서 글자를 아는 사람이 높은 신분이었지만 다른 사회는 그렇지 않았다. 과거 유럽사회는 힘센 사람이 제일 높은 신분이었고, 글자를 아는 사람이 두번째 높은 신분에 속했다. 몽골제국에서 '사'는 11번째나 12번째 계급에 속했다. 내 기억으론 기생 보다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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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는 급격히 신분제로 나아가고 있다. 이미 초기 신분제에 진입하지 않았나 싶다. 문제는 누가 상위 신분에 속하냐이다. 최상위 신분은 이미 정해졌다. 바로 '재벌집안'이다. 그 아래 신분을 차지하기 위해 정치인과 고위직 관료가 힘 겨루기를 하고 있다. 언론은 이 둘 사이에서 누가 자신들에게 유리할지 저울질하고 있다. 현재 검찰과 정부, 정치권의 갈등은 이런 흐름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아마 적절한 선에서 타협될 것이다. 어짜피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니까. 이들 사이에 누군가의 편을 들고 있다면, 잠시 멈추고 자신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떤 집단이 나에게 유리할까?" 하긴 이미 본능적으로 알고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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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현상은 요즘 진료거부하고 있는 의사들이다. 지금 의사들이 저렇게 극렬하게 나오는 이유는 자신들의 집단 규모가 위협받기 때문이다.(신분은 %의 문제니까) 현재의 규모에서는 당연히 제법 상위계급으로 편입될 것인데, 숫자가 늘어나면 그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환자? 응?" 이들에게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은 '환자'가 아니라 '사회적 지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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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현상은 정규직이다. 하위직 공무원이나 중기업 이상의 정규직이 되면 최소한 중위계급은 보장된다. 물론 코로나19와 같은 상황에서는 앞을 장담할 수 없지만, 일단 안정감이 생긴다. 나는 그 심정을 이해한다. 대학을 늦깍이로 졸업하고 취업으로 어려움을 겪을때 내 기분이 그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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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제가 오면 어떻게 될까? 부와 명예, 즐거움과 건강 등 상위 신분이 거의 모든 것을 독점한다. 이런 점에서 신분전쟁은 제로섬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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