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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러 생각

'인간'과 '사람'

by 윤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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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도 콘의 <숲은 생각한다>를 읽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생각에 잠기게 하는 글귀가 나온다. 소개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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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마코 화산 기슭에 있는 사냥 캠프의 초가지붕 아래서 엎드려 누워 있는데, 후아니쿠가 내개 다가와 경고했다. "반듯이 누워 자! 그래야 재규어가 왔을 때 그 녀석을 마주 볼 수 있어. 재규어는 그걸 알아보고 너를 괴롭히지 않을 거야. 엎드려 자면 재규어는 너를 먹이감으로 여기고 공격한다고" 후아니쿠의 이 말은 재규어가 우리를 마주 응시할 능력이 있는 존재, 재규어 자신과 같은 하나의 자기, 즉 '너'로 본다면 우리를 가만히 놓아둔다는 뜻이다. 그러나 재규어가 우리를 먹잇감, '그것'으로 보게 된다면, 우리는 죽은 고기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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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뭉치말에는 흥미로운 관점이 등장한다. 첫번째 눈에 띄는 말이 '너'이다. 한국말 '너'는 '너머'의 줄임말이다. 이쪽 '나'의 너머에 있는 저쪽이 '너'이다. 즉 '너머의 너'는 나와 마주하고 있는 '너'이다. 두번째는 '너'와 '그것'의 구분이다. 마주하는 '너'와 달리 '그것'은 마주하지 않고 있는 대상이다. '너'는 마주하고 있기에 존중받지만, 마주하지 않고 있는 대상 '그것'은 존중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재규어는 '그것'을 먹잇감=고기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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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최봉영 샘을 만난뒤로 나는 말과 글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가장 먼저 바꾼 말은 '인간'이다. 한자어 '인간' 대신 '사람'이란 말을 쓰기 시작했다. 왠지 '인간'이라는 말이 인간미가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냄새가 안난다고 할까. 이젠 '인간'이란 말은 글의 맥락을 신중하게 검토한 후에 사용한다. 대개는 '사람'이란 말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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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말은 '살다' '살리다'와 바탕을 함께한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이란 말을 쓰면 사람이 '마주하는 너'로 느껴진다. 반면 '인간'이란 말을 쓰면 사람이 '마주하지 않는 그것'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인간'이란 말을 쓰면 사람을 함부로 대해도 좋다는 허락을 해주거나 받는 느낌이다. 마치 재규어가 사람을 그것으로 대하듯이. 하지만 '사람'이란 말을 쓰면 그게 안된다. '나'와 '너'가 함께 마주하고 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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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태도다. 콘이 책의 첫구절에 이 사례를 넣은 것으로 보아 그가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아마 그는 이 사례가 이 책 전반을 요약한 것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400페이지 중 고작 한단락을 읽었는데 왠지 책을 모두 읽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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